난장
홍성담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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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장, 난장입니다. 세상에 어쩜 이리도 질서가 무너질 수 있으며, 선한 마음을 지닌 뭇 백성들이 도무지 감당을 못 할 만큼 불의(不義)한 만행이 일상처럼 벌어지다뇨. 죄악과 증오가 온 누리를 가득 채우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정의를 외칠 마음도 먹지 않고, 참혹한 죽음이 사태를 이뤄도 책임 지는 자 하나 없습니다.

"세상이 이모냥으로 썩었는디 뭐하러 싸우는겨? 그냥, 좋은 것이 좋지 않다냐."

이 소설, 아니 대설(大說) 속에 나오는 목소리는 위악(僞惡)의 반어(反語)로, 위선과 횡령과 눈가림과 사술과 범죄와 살상에 둔감해져 버린 우리 비겁한 소시민들을 호되게 질타합니다. 마치, "양심도 정의감도 배알도 애저녁에 갖다버린 니네들, 밥음 뭐하러 먹고 X은 뭐하러 싸냐? 차곡차곡 썩은 양분을 뱃 속에나 젱여 둬!"라며 나무라는 것 같습니다.

왜 국민 앞에 약속한 바를 지키지 않고 떳떳지 못한 자리보전을 하러 드는가. 왜 무고한 어린 노동자의 건강과 생령과 땀을 모독하고 소수의 더러운 잇속만 싸고 도는가. 사십여 년 전 뜻있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식언의 독재자더러 이제 그만 물러나고 민중 대동의 세상을 열자며 거리로 분연히 쏟아져 나왔습니다. 권력은 이에 대해 피 묻은 몽둥이, 살점 떨어지는 칠성판을 들이대며 화답했습니다. 이미 천도(天道)가 무너지고 인륜이 능욕당하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구타당하고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습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눈가리고 아웅 식의 재판을 거쳐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내 나가기만 해 봐라. 고것과 세상에 다시 없을, 거한 정사를 나눌 터이니."

여기서 정사는 육욕과 배설에의 본능이라기보다, "생명"을 향한 몸부림입니다. 거대하고 때 묻고 눈 멀고 이성을 잃은 권력은, 정직하게 살아 숨 쉬며 쌕쌕 호흡을 고르는 맑은 동화 작용을 놓고, 그저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오른다는 듯, 총을 겨누고 칼로 저며냈습니다. "죽음, 죽음,.... " 오로지 죽음만이, 실성을 한 표독한 야수가 탐하는 바였습니다. 시인은, 화가는 말합니다. "내 허벌나게 그걸 뿜어댈 것이여!" 정사(情事)는 이제 생명과 부활과 정의와 심판을 위한 화려한 제의요, 둘만이서 벌이는 열락의 군무입니다.

그 시절로부터 사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어디선지 모르게, 무슨 곡절로 죽었는지도 몰라 구천과 이승 사이를 떠도는, 한맺힘은 고사하고 아직 자기 감정의 빛깔도 짐작 못 할 어리디어린 넋들이, 찾아옵니다.

"너희들 어디서 온 것이냐? 그 젖은 옷은 뭐다냐? 감기 들어."

이번에는 물 냄새가 납니다. 물은 물인데 냄새가 이상합니다. 누군가가 절로 좔좔 흘러야 할 물줄기를 콱 막아 놨습니다. 아니고서야 세상에 물처럼 이치에 순응하는 게 또 어디 있다고, 이처럼이나 불순하고 폐색된 기(氣)가 풀풀 묻어나올 리 없습니다. 거 참, 누군지 힘 한 번 좋고 마음 한 번 단단히 비틀렸습니다. 어디 몹쓸 짓을 할 데가 없어 물길에다 이런 장난질을 친답니까?

난장입니다. 참으로 난장판입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인력으로 막아내지도 못할 재앙이 사태처럼 몰아닥칠 때, 우리는 차라리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이놈의 썩은 세상, 아예 밑둥부터 콱 뒤집어져서 못된 모리배놈들 도적놈들 씨를 말리는 수밖에 없다. 난장판의 도둑질, 난장판의 학살, 난장판의 부역(附逆)울 탈탈 태워 죽이려면, 우리 민초들도 난장의 한판 굿으로 대거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작고 미미한 개인의 사연인 소설을 떠나, 이제 온 민중이 거대한 역사의 바른 물줄기에 합류하는, 입을 모아 개벽을 외치는 대설이 폭발합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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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하고도 신들린 듯한 화자의 어조에 넋을 잃고 읽어내려간, 말 그대로의 대설이었습니다. 후기에 보면 저자 홍성담(물론 우리가 잘 아는 그 화가이십니다) 선생을 직접 만나뵌 소회가 살뜰히 정리되었는데요. 대한민국 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신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나 유장한 말솜씨에 웅대한 넋을 담은 분이라시네요. 어떤 사람이 손끝으로 화필을 놀려 그윽한 뜻을 전하는 재주도 하늘이 점지해야 가능한데,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언자처럼, 민중과 궁중 사이를 오가며 지혜의 변설을 즐기던 즉흥시인처럼, 말과 글의 재능 역시 출중하기란 참으로 드물게 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다분히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언어도단이라는 느낌까지 드는 이 규정은, 그러나 도무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현실에, 필사적으로 아름다움과 질서를 부여하려는 선한 민중의 희구를 여실히 담은 외침이고 실천입니다. 영화 <판의 미로>를 보시면 이 유파의 정신과 지향점이 어디인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 주 전 열린 미국 영화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휩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시선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 스페인 현대사를 언제나 주시합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체제의 폭압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김지하 시인, 그의 정신을 예술로 실천으로 계승한 홍성담 화가(대설가), 우리 민중은 그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우리가 인간임을 재삼 자각하며, 행여 역사의 바른 물줄기가 엉뚱한 진로를 틀어 무고한 생명에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게, 고개를 곧추세우며 정의와 빛과 태양의 자취를 좇습니다.

난장(亂場) 속에 꽃 피는 희망과 정의와 사랑의 아득한 외침이 바로 이 책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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