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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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아동용 애니메이션에는 왜 그렇게 잔혹하고 (간혹)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 걸까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함께 컨텐츠를 시청하던 학부모(특히 어머니)들이 기겁을 하고선 방송사에 항의전화를 하는 경우도 많고, 이런 시행 착오를 거친 기간이 길기에 현재는 "한국형 아동물"의 모범적인 유형이 정착했으며, 해외에 수출까지 하는 현황입니다. 어쨌든, 아동용 외산 컨텐츠에는 우리 한국인 상식으로 종종 이해가 안 될 만한 "현실성"이 개입합니다. 비단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들뿐 아니라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 등의 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화 홍련" 설화에도 간악한 범죄나 무고, 낙태 등의 소재가 끼긴 하나 이건 예외에 속하죠.

음... 여튼 이 소설의 주인공 엘라 신데델라, 혹은 에밀리아 파우스트는 아직 젊은 여성이고,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필자"이기도 한데 그녀의 장기는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게 잘 되리라고 낙천주의에 빠지는 캐릭터로는 우리가 잘 아는 폴리애나가 있습니다만, 이 엘라는 그녀와는 좀 다릅니다. 폴리애나는 낙천적 기질로 어느새 주위의 부정적 기류까지를 바꿔 놓는 개성이지만, 엘라는 사실 대책 없는 몽상가에 가깝습니다(적어도 이 소설 중반부까지는 말입니다). 필립 드렉슬러라고, 그녀보다는 훨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키 크고 반듯한 성품의 신참 변호사가 그녀의 약혼자가 나오는데, 이 청년 역시 엘라의 비현실적인 성격에 은근 불안감을 느낍니다. "넌 언제나 딴세상에 가 있는 듯해."

폴리애나는 거짓말쟁이는 아닌데, 엘라는 사실 거짓말을 아주 자주 합니다. "잘하는" 편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혼자서는 스스로의 거짓말 실력과 순발력에 매우 감탄하곤 합니다. 거짓말이란 꼭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이유 말고도, 이걸 하는 당사자부터가 매우 피곤하게 되는 정신 작용입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게 어디 ATP를 좀 소모하는 활동이겠습니까.

p184에도 오스카 드 비트 씨가, "과연 그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병적인 거짓말쟁이인지"를 재어보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거짓말이 체질이다시피 몸에 밴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사악하고 타락한 윤리 기준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죠. 엘라는 그럼 어떤 유형인가. 공교롭게도 둘 다입니다. 즉, 거짓말을 아주 자주 하지만 믿을 수도 있다는 뜻이죠. 이런 유형도, 우리 주변에 많지는 않으나 종종 발견이 됩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순간의 어색함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꽤 자주 합니다. 자신딴에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도 달래고 남도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인데, 대개 현실감각도 떨어지는 게 보통이라 상대는 그 거짓말을 금세 눈치챕니다. 이런 이들이 거짓말에 집착하는 건, 사실은 본인이 큰 매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고, 그런 마음에 안 드는 현실이 자신의 노력 덕에 어느 정도는 유리하게 바뀌었으먼 하는, 어린이 같은 심리 때문입니다. 소설 마지막의 슈페히트 박사 말처럼 "주술적 사고에 집착"하는 경향이죠.

이렇게만 생각하면, 이른바 엘라 형 인생에게는 아무 희망도 출구도 안 보이는 암울한 미래만 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즉, 이런 유형이 흔히 빠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태가 아닌, 그래도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나도 남도 함께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과 진정성"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왠지 격이 안 맞을 것 같은 변호사 필립(그래서 계속 갈등하는 겁니다. 이 여자와 결혼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이라는 근사한 신랑감도 꿰찬 거고, 나중에는 OOOO과도... (내용 누설이라 여기서 줄입니다)

엘라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젊은 여성이고, 어느 정도는 (이런 유형의 다른 맴버들과는 달리) 외모도 봐 줄 만한 타입 같습니다. 엘라가 모든 사연들을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는 강박에 빠진 건 그녀의 모친에게서 받은 영향입니다. 책에 나온 사정을 보면, 과연 그녀로서는 그럴 만도 했겠다 싶습니다(이런 타입이 독일에서는 별나게 취급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어머니 상이니 참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몽상가라도 자신만을 위한 몽상에 빠지지 않고, 행복한 몽상을 남과 공유하며, 자신의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여튼 곤경에 빠진 남 생각을 할 줄 아니 그녀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눈치 빠른 우리 독자들은 이제 소설의 중간까지만 읽어도, "그래서, 제목에 걸맞게, 엘라는 과연 남 아닌 자신의 인생은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까?" 같은 포인트를 확실히 짚고, 더 몰입하며(가뜩이나 몰입감은 원체 좋았습니다만) 페이지를 넘겨 갈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 의도 그런 체제가 맞긴 한데, 우리는 여기서 다른 의문 하나를, 엘라나 작가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라는, 이 기막힌 '부딪힘' 사고 이전에는, 과연 행복했던 여성일까?" 나아가, "6년 전 가정관리사(흠)로 필립을 만나기 전에는 어땠을까?" 같은 궁금함도 말이죠. 객관적으로 보아, 엘라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 자신은 p343에서처럼 자신의 [무려]국가 공인 자격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지만) 특별한 기능이나 재능, 지식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콧대나 기대치만 높고, 척박한 현실은 그것대로 부정하려 드는 여성, 답은 이미 나온 것 아닐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미 제 결론은 위에서 내렸습니다만), 엘라는 심지어 현실로부터의 위험한 해리 상태(예를 들어 p250에 "툭하면 멍때리는"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에서조차 행복했고, 그녀의 행복감은 근거도 있었습니다. 친구 코라와도 언제나 티격태격이지만 우정은 진심이며 상대의 마음 깊은 곳도 살필 줄 아니, 그저 몽상가 타입만은 아닙니다. 이른바 소셜 클라이머나 골드 디거처럼 돈이나 지위만 보고 남자를 낚으려 드는 타입도 아닙니다. 필립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계급(헌데 이런 친구도 OOO에 대면 그저 소박한 변호사라고 스스로 털어놓는 대목이 나올 정도네요 쩝)이지만 엘라는 눈치 안 보고 마음에 품은 생각 다 까놓습니다. 이런 점에서, 남 눈치 보며 거짓말로 둘러대기 잘하는 "진짜 이기적인 거짓말병 환자"하고는 달라도 크게 다른 셈입니다.

소설 속에는 유명한 영화 여러 편이 언급되는데 그 중 작품의 기조와 밀착한 소재 겸 비유매개는 <라라랜드>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입니다. 특히 p221에서는 엘라가 자신을 홀리 고라이틀리(A 헵번이 연기한)와 동일시하며 그 유명한 H 맨시니(공교롭게도 극중 오스카 드 비트 씨의 아들과 이름이 같네요)의 <문 리버> 전곡을 다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쎄요. 홀리보다는 더 착하고, 덜 이기적이고, 생활 수단은 더 부족하지만, 그래도 몽상가라는 점에선 닮았네요. 아니 어쩌면 남성인 폴 바작에 자신을 감정이입한 걸까요?(둘 다 시시한 글쟁이라는 점이 공통...) 설마.

엘라가 유쾌한 성격이기에 이야기도 내내 우습고 흥겨우며 간간히 시사와 연계된 농담도 나옵니다. p188에선, 지금 기억이 온전치 못 한 오스카 드 비트 씨에게 장난을 걸며, "글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지 뭐에요?"라고 하는데, "기억은 잃었어도 이성을 잃지는 않은(자신의 표현입니다. p179)" 오스카는 바로 의도를 알아채고 화를 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는 행복한 환상에서 곧바로 깨어나야 하는 그 불쾌감을 당신은 지금 내게 선사한 거요!" 어쩌면 이 역시 "엘라 식의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기" 기술입니다.

주인공인 엘라가 그 생계를 위한 직업과 별개로, 일단 독자 앞에 내세워지는 신분이 "인기 블로거"이다 보니 소설의 구성도 현실과 웹상의 공간을 자주 오갑니다. 엘라가 포스팅하는 새로운 글들은 사건 국면 전환이나 중대한 심경의 변화를 독자에게 고지하고, 현실에서 직접 마주하는 인물들 말고, 닉네임 뒤에 숨어 엘라와 갈등하거나 우애를 다지는 이들도 따로 있는데, 그 중 누구는 나중에 정체가 드러나고, 좀 드러났어야 했을 누구는 끝까지 미지의 커튼 뒤에 남는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p506에서는 중간쯤에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된 문장이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엘라가 숨도 안 쉬고 급히 말하는 대사라서 그렇다고 친구 코라가 (우리 독자들에게) 가르쳐 주네요.

배경은 우리 시대의 독일이다 보니 지방색이 생생히 드러나는 대목이 많습니다, p336의 토이펠스브뤽이라든가, 오스카 드 비트 씨가 맨발인 상태로 발견, 아니 엘라와 조우된 어느 곳이라든가.... 꼭 우리말 번역본에서뿐 아니라, 현대 독일인들은 마치 우리 한국인들이 그러듯 일상에서 영어를 많이 섞어 씁니다(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회화에도 능하다는 게.....). p285의 "번아웃" 같은 건, 실제로 미국인들만큼이나 독일인들이 일상에서 자국어처럼 쓰는 단어이며, 너무 자주 써서 자신들도 과장이나 남용이라며 반성까지 합니다.

p179를 보면 "그런데 제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묻는 등, 엘라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만 같아도 알고 보면 냉정한 현실적 계산이나 추론 능력도 발동시키는, 의뭉스럽고 약은 구석이 많습니다. 하긴 우리 독자들도 마찬가지, 어디 사람을 한 카테고리에 온전히 몰아넣고 판단할 수가 있던가요. 그러면서도 남을 재단할 때는 가차없고, 자신을 향해서는 "다중적 매력을 갖췄다며" 너그럽게 봐 줄 걸 요구하죠. 어찌보면 행간에 뜻을 따로 담아 소통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나중에 발뺌할 구석도 마련하는 엘라는, 서브텍스트(p538) 토킹의 대가입니다. 다시 결론 내겠습니다. "신데렐라보다 엘라가, 더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 자격증, 국가 공인(p34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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