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파워 - 새로운 시대의 권력,
천훙안 지음, 신노을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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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권력이 이상하게도 제 힘을 못 쓰고, 그 대신 국지적인 기반의 소소한 세력들이 알게모르게 실속을 챙기는 요즘입니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자그마한 집단의 도발에 뾰족한 수를 못 찾고 갈팡질팡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런 데가 있는 줄도 잘 모를 영세한 기업이나 정치 결사가 큰 수익을 올리거나 역사의 향방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Size does matter."라는 말이 한때 불변의 진리로 통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빙하기를 맞은 거대 공룡처럼 제 한 몸을 감당치 못해 민망한 방황을 일삼습니다. 세상이 운용되는 근본 원리가 바뀌어 간다는 뜻입니다.

엊그제 마무리된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우도 좌도 아니면서 좌절한 근로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고, 무엇보다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어느 정파가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의석을 휩쓰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현상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저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미미하게 제 목소리를 낼 뿐이었으나, 어느새 그 작은 파장이 모이고 모여 대세를 흔들어 놓기까지 하는" 우리 주변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하켄은 현대 사회에서 조직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변용을 겪고 있다고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조직에는 타조직과 자기 조직이 있는데, 타조직의 구성원은 그저 피동적으로 움직일 뿐이며, 조직의 이해와 자신 개인의 목적을 조화롭게 매칭시키지 못합니다. 반면 자기 조직은, 조직의 일이 곧 내 일이니 창의력과 의욕이 매 순간 당사자의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게 또 당연합니다. 예전 공산주의 국가에서 텃밭과 협동농장의 소출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였는지를 지켜 보면 이 점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월급쟁이들의 고달픈 신세를 wage slave라고 자조하는 말이 있는데, 체제는 자본주의라도 정작 직장에 소속하여 일하는 절대 다수의 사무직종 종사자들이 주인 의식을 못 느낀다는 건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구글 같은 곳에서, 누가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오너"이며 누가 부림 당하는 "아랫사람"인지 한번 살펴 보십시오. 이곳이야말로 자기 조직의 이상에 수렴해 가며 구성원들에게 현대적 혁신의 의지를 이끌어내는 집단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회사 와서 일은 안 하고 백날천날 딴생각만 하는 분자에게는 타조직이건 자기 조직이건 책상이 마련될 리 없습니다.

저자는 성공적인 마이크로 파워가 발휘되는, 자기 조직의 모범적 사례로 조조의 인재 운용 pool을 듭니다. 원소의 장막에서 천하의 인재들은 소모적인 대립만 거듭하거나, 윗선에서 과감히 부여되지 않는 권한의 한계로 인해 포스트에 헌신하지 않고 내내 겉돌았습니다. 반면 조조는 아랫사람에게 한번 업무를 관장시키면 전권을 주다시피했으니 참모들이 신이 안 날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타조직과 자기 조직의 극명한 차이입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변혁적 리더십과 거래적 리더십을 상황에 따라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적용한다"는 말로 정리합니다(p55). 한국사에서는 이방원이 일으킨 무인정사(제1차 왕자의 난)과 유사한, 당 태종을 권좌에 올려 놓은 거사였던 "현무문의 변"에서, 이세민의 책사 방현령의 공로는 실로 컸습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어느 조직에서건 "내집단"이란 게 따로 있어, 리더가 이런 코어 섹터를 따로 둔 후 적절히 운용하여야 목표가 효율적으로 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에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나, 조직에 활기가 떨어지고 타성과 관행에 젖어 움직인다면 형식적 프로토콜이나 어설픈 명분론은 차라리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내집단 옹호론"은 타당합니다.

이 책은 픽션과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례를 끄집어 내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어떤 무리든 간에 오합지졸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춰 고도의 성과를 내며 전진할 것이냐의 갈림길은, 리더가 그 집단을 그저 집단에 머무르게 하느냐 아니면 진정한 유기체와도 같은 "팀"으로 재조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을 하며 그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예를 듭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각각의 이유에서 반사회분자, 조직에 융화될 수 없는 이들이었고, 삼장법사는 이들을 통제할 초능력 따위를 갖춘 인물이 아니었으나, 분명한 목표의식과 불굴의 의지를 지녔기에, 세 "제자"는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점은 문예로서의 텍스트를 이해할 때에도 무척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p83에, 그저 집단이기만 한 무리와, "진정한 팀"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계 굴지의 기업을 세워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경영자 저커버그의 저력과 재능, 비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죠. 개인적으로 저는 그저 셰어홀더의 자리로 물러나 젊은 인생의 갖은 기쁨을 누리는 데 몰두하지 않고 구태여 CEO의 현업을 지키는 그의 태도가 참 돋보인다는 생각인데요(실제로 닷컴열풍이 불었던 18년 전에는 이처럼 한번 대박을 친 후 카리브해에서 유유자적하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커버그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 주의를 돌립니다.

"경영자인 저는 첫째 분명한 목표를 설정합니다. 둘째로 우리 회사가 하나의 팀으로서 온전히 돌아가게 보살핍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그의 언급은 저자가 이 책을 쓴 취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어지는 경영자의 소명은 다시 세 가지가 제시됩니다.

1) 수평적 경영을 지원한다: 상명하달식 시스템은 반드시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고, 타조직의 타성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저자는 그러나 단서 하나를 다는데, 질서가 문란해질 만큼 수평 방식을 일관해서는 또 곤란하다는 겁니다. 하긴 이렇게 방만하고 놀자판 회사가 되어 버리면 적당주의 요령주의 무능자만 살 판이 나겠지요.

2) 혁신의 문화와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역시 십여 년 전부터 모든 경영서가 일관되이 독자에게 경각시켜 온 사항입니다. 일은 놀이와 일체가 되는 수준까지 가야 하며, 차원 높고 성과의 질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은 즐거운 마인드로부터라야 창출될 수 있다는 게 이제는 상식으로 통합니다. 물론, 놀이를 통해 일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지한 사원이라야 이런 인센티브가 통하겠으며, 태생부터 분위기를 흐리고 부정적 기조를 확산시키려 드는 자에게는 애초부터 설 땅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리를 깔아주고 놀아 보라고 하면 제대로 놀지도 못합니다.

3) 기업의 문화와 잘 맞는 직원을 채용한다 : 당연한 말 같아도 이게 막상 조직에 적용해 보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신규 채용시 전 직원이 거의 모두 심사에 참여하다시피하는데, 이건 첫째 이 기업에서 수평적 업무 문화가 일찌감치 조직 전체에 스며 있어야 가능하며, 둘째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갖고 조직의 모든 활동에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거대 규모의 종업원을 고용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슬림화만을 추구하는 것도 조직의 건강성을 해칩니다. 이게 성문화, 화석화한 매뉴얼에 의해 움직인다면, 매 순간 조직에 엄습해 오는 난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습니다. 융통성과 기민함이야말로 마이크로 조직의 혁신과 생존 비결입니다.

책은 후반부에서 주로 젊은 독자층을 겨냥하여, 우선 첫번째 직장을 어디로 골라 몸닫을지를 고민하라고 조언합니다. 경력의 시초점은 결국 그 사람 인생의 전체 경로를 규정하다시피하죠. 목표의식이 분명치 않고 너절한 도피자의 이론이나 페티시처럼 숭배하는 인간은 어느 조직에서건 반드시 도태되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록펠러가 사회 첫 걸음을 뗄 때 몸담았던 공장 관리자의 역할에 특히 초점을 둡니다. 몇 방울이면 충분할 용접을, 수십 방울을 흘려 가며 원가가 낭비되는 현장을 보고, 그는 즉시 시정을 모색합니다. 이런 노력이 어디 용접 공정에만 한정되었겠습니까? 타성에 젖지 않고 모순과 낭비 요소를 귀신 같이 발견하는 그의 눈은, 몸담는 직장마다 연간 수억 달러를 절감하면서도 고도의 성과를 내는 원천이었습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업무에 임하며 생생한목표를 발견하고 성취하는 조직이야말로 마이크로파워의 참된 진원입니다. 40년 전쯤에 일본의 칸반시스템, 저스트 인 타임 방식 등의 고안은 세계 경영계에 충격을 주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역시 마이크로파워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런 조직에서는 점차 중간관리자의 할 일이 없어지는데, 한국사회 원하청 구조에서 중간책들이 저지르는 수없이 많은 "갑질" 물의를 보면 아직 우리가 갈 길이 참으로 멀다고 하겠습니다. 중간관리자뿐 아니라, 오너도 없고 부하직원도 없는, 모두가 대등한 자격에서 신 나게 일하고 이윤을 나눠 갖는 조직이야말로 미래형 직장의 수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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