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시공간과 물질
김항배 지음 / 컬처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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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종래의 무지와 몽매를 넘어 이성과 계몽의 시대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그 시선을 우주로 향해 돌린 놀라운 회심과 각성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광막한 우주를 바라보기 전까지, 인간은 자신이 속한 좁은 지구 위의 물리계에 대해서조차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물리계는 고사하고, 사람은 자그마한 "자기 자신의 바른 실체"에 대해서조차 온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우주의 바른  모습을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수천 년 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마따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게 되었다는 건, 천문학과 물리학에 대한 정확한 소양, 인륜과 도덕에 대한 바람직한 천착, 이 둘이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심도 있게 시사 받는 듯만 합니다.

"교양의 완성은 (자연)과학"이라고도 하죠. 불과 지지난 세기에만 해도 칸트(이 책에도 여러 번 인용됩니다)나 마흐 등 일류 철학자들은 철학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당대 최고 수준의 자연과학 연구를 선도한 두뇌들을 겸했습니다. 인문과 자연과학은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였고, 이제 통섭의 시대를 맞이하여 다시 하나가 될 운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도, 뉴턴 식 해석의 고전 물리, 천문, 나아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내면화가 이제는 거의 필수라고 하겠습니다.

물고기는 자신이 속한 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수면 위에는 자신을 노리는 성정이 난폭한 맹금류들, 평화로이 공중을 유영하는 여타의 생명체들, 여유로운 구름, 작렬하는 태양, 혹 환하게 빛날 때라면 보름달 등이 그 눈(말 그대로 "어안"이죠)에도 비치겠습니다만, 수면 안에서 바라보는 형상들이기에 바깥 세상이 얼마나 아찔한 다층 구조를 지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층(높이)는 고사하고, 물고기의 소박한 눈에는 그 모든 게 수면 위에 반짝이처럼 고정된 2차원 형상으로만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왜곡, 단순화가 어디 어류의 지적 회로 안에서만 벌어지겠습니까? 어리석은 잡초, 거름 같은 벽지의 무지렁이가 갇혀 있는 초라한 우물 안 세계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유사 이래 수천 년 동안, 인간 역시 "천구"라는 단조로운 프레임으로, 감히 계측과 연산의 시도조차 못 할 광대한 우주를 힘들여, (그나마) 부정확하게 간추려 왔습니다. 별들이 천구라는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그 각각이 먼 거리, 상상도 못 할 먼 거리를 두고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진리에까지 비로소 착상이 미친 후에야, 인간은 그때까지 설명 안 되던 모든 수수께끼와 모순에까지 과감히 이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해명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미신, 기만, 환각, 광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주 물리학(과 그 인접 과학)은 그저 물리계에 대한 기술적 정보, 지식의 집합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의 해방자 구실을 해 준 프로메테우스였던 셈이죠.

별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편의에 따라 정한 것입니다만, 오래 전부터 "겉보기"에 따라 정해 둔 서열(물론 숫자로 표시됩니다)이 있고, 그 별이 품은 에너지에 따라 실제로 발하는 "밝기"가 따로 있습니다(후자는 "절대 등급"이라고 부르죠). 별이 실제로 얼마나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느냐와는 무관하게, 인간은 자신의 터전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면 제 주관에 따라 그 별을 희미하다며 낮은 등급을 매기고, 그 반대로 제 눈에 밝으면 덩달아 등급도 높였으니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죠. 허나 인간은 또한 위대하기도 한 게, 제 눈에 비치는 현상이 그 실체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기특하게 어느 순간부터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천문학적 수치"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별과 우리 지구가 떨어진 거리"를 염두에 두고부터, 그 아찔한 수치를 (계산을 해 내기는커녕) 그저 응시하는 단계부터도 머리가 아찔해졌기에, 네이피어라는 천재적인 이가 logarithm이란 유용한 개념체계를 고안해 냈습니다. 모든 수를 10의 거듭제곱으로 표현한 후, 밑에 있는 10은 잠시 잊고 그 거듭제곱 수치만 따 와 대신 활용하기 시작한 거죠. 예를 들어 10,000처럼 길게 쓸 게 아니라 이에 로그를 취해 4(즉, 10,000이 가진 0의 개수)로 간단히 표기하자는 겁니다. 23,145 같은 숫자도, 소수점 아래를 주욱 늘어놓으면 4와 5 사이의 자기 고유의 값으로 대신 쓸 수 있고, 다른 숫자와 겹치지도 않으니(함수 중에서 이런 걸 일대일대응이라 부르죠) 아주 유용한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천체의 겉보기 등급과 절대 등급의 관계식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성 그 위대한 진보를 확인하는 뜻깊은 공식이라 저도 다시  손수 워드로 써 보았습니다. (참고로, 위의 식에서 로그의 밑이 10인데 0으로 잘못 인쇄되었습니다. 다른 곳은 다 맞는데 거기 하나만 틀렸더군요. 로그는 밑에 0이 올 수 없죠. 분모가 0이 못 되는 것처럼)

천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딘가(물론 태양이지만)를 중심으로 부단히 도는 중이라면, 다른 별을 관찰할 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위치가 바뀌므로, 이른바 연주 시차라는 게 생깁니다. 그런데 케플러가 "신처럼 믿고 의지했던" 티코 브라헤는, 가뜩이나 태양 중심 모델이 마뜩지 않았던 차에, 연주 시차마저 제대로 측정되지 않으니 이런 발상의 전환에 대해 내내 내키지 않아하는 태도를 견지했죠(이뿐 아니라 그는 행성의 원궤도 공전설도 데이터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기각했는데, 케플러가 타원궤도로 수정하여 바른 이론을 완성했습니다).

무지렁이들만 모여 사는 폐쇄적인 공동체였다면, 권위자 티코 브라헤(사실 관측과 자료를 다루는 능력에 있어 불세출의 인물이었으니요)의 벼락 같은 호통에 다들 다른 생각이나 이견을 접고 말았을 겁니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딴 목소리를 내면 이단자, 공감 무능력자로밖에 몰리기밖에 더했겠습니까? 연주 시차가 제대로 측정 못 되었던 이유는 다른 게 없었고, 별이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다는 사정뿐이었습니다. 여건이 열악하니 현상이 바르게 계측되지 않았고, 인지가 부실하니 지혜에의 바른 인식도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죠. 이 책에는 이 외에도, 광행차, 연속 스펙트럼 등을 정확히 캐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집요하고 성실한 노력이 있었는지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주론을 바르게 이해하고 접근하다 보면, 현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이 도달한 첨단 지점까지도 천착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주물리학에는 그만큼, 물리학과 그 인접 분야의 최신 성과가 모조리 동원되다시피한 최고 두뇌와 지성의 향연이 벌어지는 셈입니다. 아니, 양자역학은 극미(極微)의 세계이고, 우주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덩치 큰 수치와 차원이 지배하는 공간(약간 어폐가 있습니다만 일단 편의상 이 말을 쓰기로 하죠) 아닌가? 이런 상식적인 의문에 대해 저자는 "... 초기 우주는 고에너지, 고온의 물질들로 가득 차 있었고... (p225)", 팽창 이전의 구조는 우리가 지금 양자역학을 통해 해석하고 예측하는 극히 좁은 공간에서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가정으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을 베풉니다.

p267 이하에서부터는 그 유명한 파동/입자의 딜레마를 다루며, 도대체 왜 "측정 행위" 자체가 물질(혹은 운동)의 상태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저자 고유의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이 시도됩니다. 이어 힐베르트 공간과 이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정식(적분식)이 제시되는데, 특이한 건 이 벡터식에서는 "크기"가 무의미하고, "방향"이 같으면 다 같은 "상태"로 취급된다는 거죠. "상태'라는 말은 이 맥락에서 특유한 의미를 갖습니다.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방향은 무시되어도 크기(절댓값)가 같으면 동류로 취급되는데(그 이전에, 벡터에서 방향과 크기는 개체를 분별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여기서는 정반대이니 흥미를 돋웁니다.

우리가 학부 때 선형 대수학의 용도가 그리 넓은 줄 모르고 심드렁하게 배웠습니다만, 벌써 이런 과정에서도 기저(베이시스)를 잡아 모든 상태를 선형 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 보십시오. 결국 진리는 아무리 저 아득한 경지에 놓였다 해도, 기초 도구와 프레임으로 (아주 번거롭겠지만) 환원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수학적 도구를 충분히 활용하되, 교양인의 직관과 선이해의 틀을 충분히 존중하며 "상식"에 부합하는 친절한 안내를 시도한다는 점이 매우 빼어나고 유익합니다.

pp. 308~309에는 궤도 에너지의 반지름과 양자화를 나타내는 공식, 또 쿨롱 포텐셜과 해밀토니언 방정식을 써서 그 유명한 슈뢰딩거 명제를 수학적으로 풀어 보이는 대목이 나와 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기초만 배우면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해 볼 수 있는 레벨이고, 물리학은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대로) 말로만 풀어 쓰면 반드시 놓치는 대목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파인만 같은 천재(어학과 수학 모든 도구를 능란히 쓴)는 이는 물리학을 수학 없이 그저 말로만 해명하려는 시도를 했고, 듣는(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반의 반의 반만 따라가는 수준이었다면 이 시도는 대성공이었을 터였지만, 수학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게 인간의 언어라는 사실만 확인되고 말았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차피 피해 다닐 수 없는 수학이라는 (정말 유익한) 도구를 텍스트 안에 최대한 정합성, 적실성 있게 편입하여, 현대 우주 물리학 그 성과를 왜곡 없이 가장 근사하게(아무래도 대중서에는 한계가 있고, 정확한 건 교과서로 배워야 하니까요) 우리 일반 독자들에게 안내해 준다는 점이겠습니다.

p555에 보면 초기 우주가 복사 지배 시대라는 점을 착안(혹은 가정)하여, 이를 프리드만 방정식에 대입한 후, 시간- 온도 관계를 구하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이 역시 인간의 범상한 물리계 체험(그나마 머무는 시간이 길지도 못한)이 그 기반 한계를 이루는 상상력으로는, 엄청난 고압 고온이 배태한 에너지를 짐작도 못 하는 것이고, 인간이 짐작 못하는 경지를 이처럼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서 그 어림이나마 더듬는다는 자체가 이성의 위대함을 간접 증명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각박한 한계의 벽을 매번 넘음으로써(비록 앞에 더 높은 허들이 즐비하게 남았다고는 하나), 미약하고 하찮은 존재가 점점 더 궁극에 수렴해 가는 도상에서 의의를 찾는 것입니다. 바른 인식과 지성의 도야는, 자연 과학의 정수를 공부할(혹은, 그저 엿보기만 할) 때에 비로소 그 실낱 같은 계기를 잡아챌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교양의 완성은 바로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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