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겹다 - 그러기에 아직 늦지 않았어, 마야 로드 에세이
마야 (Maya) 지음 / 뮤토뮤지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책에 담은 인물만큼이나 책이 예쁜, 뭐 그런 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가수 마야 씨는 지금부터 13년 전 새로 취임한 어느 대통령이 첫번째 맞이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초청가수로 나와 열창하여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졌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녀는 그 몇 년 전부터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진달래꽃"이라든가, "쿨하게" 같은 드라마 주제곡이 인기를 끌어 유명해졌고, 대학 축제 등 라이브 무대에 오르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미 얻어낸 가수였습니다. 이런 그녀가 정부 공식 행사에까지 초청된 이유는, 그녀의 고향이 아마도 당시 대통령의 근거지에 멀지 않았던 점도 있었겠지만, 마치 예전 1960년대 미국의 조언 바예즈처럼 빼어난 가창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스타일 속에 모종의 "저항 정신"이 밴 것을 이심전심으로 알아본 이유도 없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이후에도 마야 씨는 SBS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인 <도전 1000곡> 같은 데 단골로 출연해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인지도가 높습니다. 지금도 저희 어머니마저 마야 하면 누군지 바로 알아보실 정도입니다(그녀가 출연한 방송회분은 재방송도 자주 되더군요 신기하게). 이후 그녀는 방송 출연은 뜸했지만 이런저런 행사에서 자주 라이브 연주를 가졌고, 그녀의 진가는 현장에서 그 생동감 넘치는 무대매너라든가 숨도 안 차하며 미친 고음을 정확하게 뿜어내는 경이로운 솜씨를 체험, 목격해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외모까지 빼어나니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밖에 못하겠네요.

여튼 그녀는 최근에 음반도 뜸하게 내고 무대에도 자주 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팬은 물론 일반 대중도, 그렇게 아까운 재능과 여건을 지닌 분이 지금 뭐하는지 궁금해할 정도죠. 못내 아쉬웠던 분은 이제 이 책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의 제목 "나보기가 역겹다", 그 부제 "그러기에 아직 늦지 않았어"는 모두 그녀의 발표곡 가사 일부를 따온 것입니다(전자의 경우 소월 시의 한 구절이기도 하죠). 저는 제목의 문구가, 단호하게 "종결 어미 -다"를 취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왠지 지나가듯 명곡의 한 소절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쿨하게 툭 내던지듯 "정말 내가 봐도 역겹구나" 같은 방황과 자기 회의, 총체적 회고를 표현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역겨워" 혹은 "역겨워서" 등으로 말꼬리를 흐렸다면 모르겠는데, "-다"는 우리말에서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 맥락이 무엇이건) 단호한 언술일 뿐이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물며 발화자가 마야 씨라면요.

책을 받아든 팬들은 일단 그녀의 "책"이기에 안 펼쳐들 수 없겠지만, 페이지를 넘기기 전 뭔가 걱정부터 됩니다.

"이렇게 예쁜 얼굴이 대체 어디가 역겹다는 건가요? 아무리 자신의 얼굴에 대고 하는 말이지만요."

심미적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뭔가 중대한 정신적 고비를 맞이한 건 아닌지, 그래서 앞으로 그녀를 무대에서 못 볼 수도 있다는 폭탄 선언이나 담긴 건 아닌지, 예쁘고 반가운 책을 받아들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연 책을 열어 넘겨 봐야할지.

책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까. 마야의 담담한 자기 표백이 반, 그녀가 직접 찍은 사진이 반. 여튼 편집도 곰살맞게 일일이 자신이 정규 앨범 꾸미듯 손수 했을 것 같은 정성어린 외관입니다. 텍스트 부분만 보면 큰 줄기는 여행기입니다. 여행을 하며 자신이 만난 풍광과 사람들과 자신을 사진에 담았고, 여행이 으레 그렇듯 참다운 자신과 다시 만나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어언 마흔이시라는군요. 누가 믿겠습니까)을 담담히 들려 주는 내용입니다.

들려 주시는 사연은 물론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건 아니고, 산문시의 주인공이 모호한 구름 속에 화자로서 반은 환상, 반은 현실에 몸 담근 채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심상과 대화하라는 것이겠습니다만, 어떤 건 "이분이 실제로 이런 생을 사셨던 건가" 싶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일단 그녀는 예상과 달리(?) 지방 출신이었고, 타고난 가인으로 예술가로 혜성처럼 데뷔한 게 아니라 연습생 시절을 오래 거쳤다고 하는군요. 훈련을 거쳐 데뷔한 분들도 물론 실력이 빼어나지만, 마야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놀라운 생동감과 카리스마를 보면, "배우지 않고 타고난 대로 그냥 통하는 사람"이 뭔지 바로 깨달음이 올 정도죠. 그런 줄 알았던 그녀가 그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니, 다른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데뷔가 가능했다는 건지 아찔해지기만 합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바를 냉혹한 진실은 인생에서 무참히 배반하기도 합니다. 안정되고 튼튼한 줄 알았던 길은 어느 순간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함정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어느 순간 기로에 섭니다. 자신의 지난 생, 화려함과 불안과 실망과 환희가 교차하는(이런 분은 그저 꽃길만 걸어왔을 것 같은데) 그 모든 모멘텀을 여행과 함께 회고하는 마야 "작가"는, 남들 눈에 더 띄고 덜 띄고의 차이만 있을 뿐 유한한 생을 사는 모든 영혼이 통과하는 희로애락의 지점 그 행로는 거의 같음을 우리 독자들에게 깨우칩니다.

그녀를 무대에서 더 자주 만났으면 좋겠지만, 이제 그녀는 이런 예쁜 책을 내는 작가라든가, 공연 기획자 같은 올라운드 크리에이터로 변신, 제2의 인생을 꾸려 나갈 생각 같습니다. 우리는 보다 성숙한 그녀가 더 다양한 컨텐츠로 우리와 소통해 준다기에 서운해할 이유가 없겠고요. 다시 이 책의 부제를 보죠.

그러기에, 아직 늦지 않았어.

"그러기에"의 내용은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다 다르겠죠. 하지만 열정과 사랑을 잃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격려이자 치유입니다. 작가, 크리에이터로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곁에서 응원해 주겠다는 "저자 김영숙씨"의, 다소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도사님 같은 모습을 보며, 우리 독자들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습니다.

"그럼요, 늦긴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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