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차이나 - 급변하는 중국 시장, 현지 기업에서 답을 찾다
김도인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도 잘 나와 있듯, 중국이 문호개방, 산업화에 본격 진력한 건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계기였습니다만, 이미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한국(남한)에서조차 현지 진출의 단꿈에 부푼 이들이 많았습니다.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던 데다 엄연히 적성국이란 인식이 건재했는데도 재계, 정계, 심지어 교육계 인사까지 중국 한 번 안 다녀온 이들이 없을 정도였는데요. 특히 사업가들은 벌써 그때부터 다들 습관처럼 입에 올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당 젓가락 하나씩만 팔아 넘겨도 대체 얼마냐?" 여기서 젓가락이라 함은 가장 척박한 시장에서 이문조차 덜 남기고 파는 장사의 대유겠습니다.



그때로부터 벌써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또 사업실패를 겪고 초라하게 귀국한 이들이 주변에 엄청 보이는 현실이지만, 중국을 향한 시선이라면 아직도 저 "젓가락 타령" 단계의 인식에 머문 한국인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 놀러오는 관광객들의 초라한 행색, 거칠고 무례한 매너 때문에(중국에 다녀온 우리측 관광객들이 현지인들로부터 받는 인상도 대개 비슷하지만) "미개인" 정도로 쉽게 낮잡고 말기까지 합니다. 거기까지는 뭐라 할 일이 아닌데(사실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시장은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쉽게 공략할 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낙관론이 팽배한 현실(아직까지도!)에까지 이르면, 여기서부터는 심각한 인식 교정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읽으면 딱 좋을 유익한(그러면서도 읽기 쉬운) 가이드가 있다면 바로 이 책이겠습니다.

일단 사업가들이 유념해야 할 건, (책 저자께서 한 마디로 잘 정리한 대로) "중국 시장은 크고(그래서 일단 설렙니다), 그러나 어렵다."입니다. 왜 그럴까요? <택리지>를 저술한 실학자로 우리가 잘 아는 이중환은 이런 글을 남긴 적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비록 땅이 좁으나 지형이 변화무쌍하고 풍습과 인속이 다양하여 결코 작은 고장이라 할 수 없다..." 한국에 이런 말이 적용될 것 같으면, 위도, 경도상 엄청난 범위에 걸쳐 뻗어 있으며 풍속과 기후는 물론 인종 분포마저 다양한 "대륙"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아래의 인포그래픽 컷을 보십시오.



중국은 한 개의 단일 시장이 아니라, 십여 개의 외국으로 구성된 복잡한 리그에 가깝습니다. 단일 통화 유로를 쓴다고 유럽 28개국(EU)을 같은 개성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중국 시장의 실정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저기보다 만만하지 않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성공한 가전제품, 인테리어, 심지어 주방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들은 중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곤 했습니다. 애플이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루기 전 피처폰 시장에서도, 만약 잡스의 놀라운 혁신이 한 5, 6년 뒤에만 이뤄졌어도 삼성전자가 세계 패권을 노키아로부터 빼앗는 국면까지를 우리가 다 지켜 봤을 겁니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느라 디자인, 성능 양 면의 혁신에 그 가진 역량을 다 쏟아부어야 했던 기업들의 실력이, 하도 호되게 단련되다 보니 해외 어디서도 다 통할 지경이 되었던 겁니다. 연예기획사들이 주도하는 한류 열풍은 또 어떻습니까. 독한 시장에서 자란 기업이 그 살인적인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이만큼이나 고생한 보람도 생기는 거죠.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워진 시장"(과거 한국 시장이 저처럼 장난 아니었던 것과 비슷하게)인 중국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에게선, 뭘 배워도 배울 게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음, 중국에 진출한 P&G라든가, 이베이라든가, 아디다스라든가, 다임러 AG(주식회사) 등으로부터 배우란 소리구나."라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대부분이겠죠. 여기서부터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가치가 달라지는 대목인데요. 저자는 "(물론 그런 기업들로부터도 여전히 뭘 배워야 하겠지만) 중국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정말 시장에서 살아남거나 대역전극을 펼쳐 승자로 현재 군림하는 중국 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우리 자존심을 뭔가 건드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또 서푼짜리 자존심(대부분 근거도 빈약한)과 거액의 성공을 냉큼 바꿀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건 어지간한 거짓말쟁이나 바보 아니고선 다 순순히 인정하겠죠. 불공정하다기보다 "쉽지 않았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게 (한국에 돌아온 실패한 사업가들뿐 아니라) 구미의 외자 기업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된 건 첫째, 중국인들이 개방, 개혁, 경제성장 초창기에 외국 기업들을 향해 과감히 시장을 내어 주고 도박에 가까운 시도를 한 게 보기 좋게 먹혀든 결과입니다. 그들은 외국 기업들이 어떻게 시장에 연구, 접근하고, 현지인들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제조, 유통시키는 지 면밀히 관찰했습니다(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갖가지 첨단 기술과 노하우도 엄청 빼돌리고 훔쳤습니다. 우리도 과거 일본으로부터 더 고난도의 도둑질을 했으므로 뭐라 욕할 형편도 못됩니다만). 그들이 배운 건 이뿐이 아니라, 거대 조직(회사)를 관리하는 경영 기법도 포함됩니다. 한 십 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입을 모아 하던 말이 "특히 한국 기업에서 배울 건 그 기막힌 인사(인적 자원) 관리 기법이다"였습니다. 이에는 노사관계 관련 테크닉(....)도 포함되는데,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성 노조로부터 호되게 단련된 한국 대기업들이니만치 당연하다고도 하겠네요.

"바다의 상어와 강바닥의 악어가 바다에서 싸우면 당연히 전자가 이긴다. 하지만 무대가 양쯔강이라면 승부는 모르는 거다." 이 말은 전자상거래 시장을 놓고 세계 굴지의 기업, 또 당시만 해도 중국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1인자 이베이를 향해, 고작 초라한 학원 영어강사 출신 마윈이 자신만만하게 내놓았던 십여년 전의 출사표입니다. 외국 애널리스트들이나 미디어뿐 아니라 중국인들조차 저 사람 근거도 없이 큰소리만 친다고 비웃었습니다. 타오바오왕(淘宝网, 도보망. 우리식 한자로는 淘寶網이라고 씁니다. 이렇게 쓰면 어떤 중국인은 "아니 왜 고대문자를 쓰고 그러세요?"라고 또 눈이 휘둥그레져 반문하겠죠)은 이른바 C2C 섹터에 과감히 도입한 결제 시스템입니다.

마치 에스크로처럼, 개인간 직거래에서 벌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중개판매자인 알리바바가 보증하겠다는 안전장치입니다. 우리가 지금 포털의 모 카페라든가 이런저런 대형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빈발하는지 살펴 보면, 이 시스템이 얼마나 소비자들로부터 환영 받았을지 상상할 수 있죠. 현재 한국의 예스24라든가 알라딘 중고책방하고는 또 좀 다른 시스템인 게, 이런 곳에서는 벤더가 업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도보망의 성공을 발판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마련한 알리바바는, 중국 대중 보편으로부터 사랑받는 플랫폼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그렇다고 손쉽게 한번 다진 1위 자리가 마냥 지속되는 게 아닙니다. 이 책은 날카롭게도, 1위와 2위의 순위 교체가 특히 최근 몇 년 들어 얼마나 빈번히 일어나는지까지도 통계수치로 제시합니다. 진짜 무서운 건 이런 부분입니다. 외자기업이 슬슬 피로감과 한계를 느끼고 철수할 때, "이 중국은 관청의 개입, 편파 행정, 외국인 혐오감정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며 불만을 내뱉는 모습이 그리 많지는 않다(있긴 있습니다)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어리석어도 돈은 정직하고 똑똑하다는 게 진리입니다. 시장이 그토록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다면 어떤 외국 자본도 다 나름 판단을 하고 승산을 점친 후 결정을 내리겠으므로, 실정이 그렇다면 이 못된 중국 시장에 다시는 속아서 안 들어오겠다는 게 대세로 정해집니다. 현실은 그게 아니라, 중국 기업 서로간에도 피터지는 경쟁이 벌어지며, 밀린 기업은 외국 것이건 중국 기업이건 실력이 없어서 밀렸음을 그네들도 잘 알기에 꾸역꾸역 들어오는 거죠. 중국 당국도 이를 잘 알기에 선을 넘지 않고, 오히려 더 자본주의적 색채로 시장을 다루고 있고 말입니다.

중국 기업들의 혁신은 마케팅이나 제조 섹터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혁신의 궁극은 조직의 혁신, 경영 기법의 환골탈태까지 가 봐야 그게 진짜 혁신이라고 평가하겠는데, 이 책은 하이얼(海爾) 그룹의 장루이민張瑞敏(장서민. 이 상서로울 "서" 자는 한국 인명에도 많이 쓰이는 글자인데 유독 중국에선 발음이 "루이"네요) 회장의 예를 들며, 아예 그룹 해체에 가까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총수나 기조실은 그저 "벤처 캐피탈" 정도의 역할에 머물고 나머지는 모두 현장에서 뛰는 계열사들에게 전적인 재량권을 주는 방식으로, 충격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특히 오너로서는 더욱 더 힘들고 거부감 느끼는) 권한 배분을 단행한 건, 뭐 배경은 다릅니다만 최근 한국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와도 어찌보면 궤를 같이하는 겁니다(저는 꼭 이게 정치적 상황에 떠밀린 결정이라기보다, 재벌 해체라는 생색도 낼 겸 전부터 검토하던 옵션을 이번에 단행한 거라고 봅니다. 최근 증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한번 보세요. 돈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더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려면 종전의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거죠. 소니가 왜 저 모양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자명합니다. 여튼 경영혁신의 과감한 도전이 이 정도까지 이르렀으니, 누가 중국기업의 도약과 변신과 비전에 대해 그저 짝퉁이라며 비웃을 수 있겠냐는 거죠.



매킨지 등 유수의 국제 컨설팅 섹터에서도, 재벌 포함해서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기업이 꼭 본받고 교훈을 챙겨야 할 벤치마킹대상으로, 바로 이런 중국 기업들을 꼽는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참 앞서가던 우리가 어느새 대세에서 밀려, 규모도 자금력도 기술도 부족해지는데다 하물며 경영 기법이나 민첩한 기업가 정신마저 뒤떨어지게 되었다는 건 다소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들이 "숙명적인 내수 시장의 협소함"을 못내 한탄하는 것도, 기업을 호되게 단련시켜 줄 거대한 소비 대중의 사이즈가 그만큼이나 천혜의 조건이었음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굴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근거리에 중국을 두고 여튼 최근까지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경제권이기도 합니다. 반한 혐한 감정이 위험수위를 넘은 게 요즘지만, 동시에 한국만큼 친근하고 많은 의식, 문화상의 공통기반을 가진 외국도 (중국인들에게는)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배울 건 과감히 배운다는 자세로 시장과 경제 현실에 대응하면, 우리에게는 위기보다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 책은 다른 중국 관련 대중서와 달리, 풍부한 사례를 소개하되 저자가 구축한 분명한 맥(脈), 맥락 속에서 설명을 해 내가기 때문에, 사례 소개로 그치는 다른 독서와 달리 다 읽고 나면 독자 머리 속에 뭔가 전략의 틀이 잡힌다는 게 뚜렷한 장점입니다(인문 고사를 적절히 예거하기 때문에 잘 읽히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책은 읽다 보면 저자의 주장이 어째 앞이 다르고 뒤가 또 다르다는 당혹스러운 느낌이 없는 게, 분명한 틀을 잡고 주장과 사례를 개진, 설명하기 때문이죠. 또한 저자가 본래 광고 홍보 섹터에서 일한 분이라, 특히 중국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먹혀 들어간 브랜드들을 놓고 자세히 풀어 주는 후반부도 저자의 장기가 드러나서 유익했습니다. 일반 사업가들도 앞으로 성공하려면 (꼭 중국 시장이 아니라도- 물론 향후 중국 시장을 빼고선 어느 다른 시장을 운위할 구석도 없긴 하지만) 어떤 감각을 키우고 어떤 영역을 공략, 주목해야 할 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