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 - 따뜻함이 필요한 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지음, 류시화 옮김 / 푸른숲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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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게 벌써 20년이 지났던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 만큼, 신선한 제목과 감동적인 내용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고전이죠. 고전이라는 게 별다른 책이 아니라, 독자가 그 책을 읽고 난 전후가 확 달라진, 그러면서도 그 느낌과 깨달음이 내면에서 옹골차게 익어갈 시간의 깊이가 제법 생긴 책이라면 다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로서는 조금 낯선, "닭고기"와 "수프"가 함께 어울린 말인 데다, 구체적인 메뉴와 "영혼"이 얼핏 우스운 듯 의미심장하게 배합된 어구가 의외로 감동적인 내용을 감싸는 제목이라 더 친근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일단 화제가 되는 도서는 주제 분야 불문하고 주변 모두가 읽어대던 분위기여서 제 친구나 지인 중 과연 이 책을 안 읽은 이가 있을까 싶은 추억의 아이템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첫 만남이 훈훈하고 다정한 책이었다 해도, 2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다면 "깨끗한 좋은 인상이 계속 간직되라고 그저 책장 속에 묵혀 두는 게" 더 바람직한 선택일 수도 있었습니다. 초판, 원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책을 내시는 분들도 이렇게 개정판까지 낼 때에는 독자의 그런 삼가는 마음, 주저하는 심정은 다 고려에 넣지 않았을까, 우리가 (새) 책을 펼쳐 읽을 때는 그 정도 믿음은 갖고 "서빙"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이 작고 예쁜 책을 다 마친 후 그런 소박한 바람이 배신당하지는 않았다며 뭔가 꽉 차올라오는 듯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완 또 다른 벅찬 감정이 이렇게 생기기도 쉽지 않겠고요.

다들 기억하시는 것처럼 감동적이고 먹먹한 사연들을 잔뜩 만날 수 있는 그런 꾸림새를 가진 책이죠. 그때만 해도 이런 짤막하면서도 울림 깊은 사연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던 시절인데, 잡지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처럼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포맷이 인기가 좋았고요(지금으로 치면 <좋은 생각>정도의). 헤밍웨이는 단 아홉 단어(영단어 기준)로도 속 깊은 사연이 전달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유명한 예가 "개인 광고: 아기 용품 팝니다. 한 번도 안 신어 본 새 신발이에요."죠. 처음 읽었을 때는 무심하다 잠시 후에야 이야기 뒤에 숨은 맥락을 깨닫고 마음이 짠해지는 그런 강력한 힘, 글쓴이의 진정성만이 담고 전달해낼 수 있는 감동이라고 여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에피소드가, 마치 우공이산이란 동양의 고사에서처럼, 개인적으로 무의미한 노동을 할 뿐이라 본 어떤 노인에게 핀잔을 주는 무심한 나그네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일견 냉정하면서도 합리적인 어투로 변하지 않는 현실을 노인에게 상기시키는 그의 말은, 알고 보면 실용주의와 세상의 철칙을 빙자하여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타성에 젖게 하며 주어진 여건에 체념적으로 순응케 만드는, 알고 보면 우리 자신 속에 스며든 나쁜 타자적 기제를 상징합니다. 이런 목소리의 지시를 따르고 있으면, 오히려 일상 속에서 무의미하게 진행되는 루틴에 거역하는 모든 작은 발버둥이 다 해롭고 무가치한 것으로 잘못 단죄되기 일쑤이겠습니다. 만약 그런 지시에 따른 행동과 몸가짐만 세상에 만연했다면 도대체 사회의 발전이나 사람 사이의 따끈한 연대가 어찌 가능했을까 하는 반발이 정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뭉텅이로 던져지듯 주어진 존재 같은 건 없다. 그런 말을 하는 너 자신부터가 객관적 가치와 무관하게 너 자신을 감싸고 돌며 맹목적으로 생존에 집착하듯, 저 숱한 생명들도 너만큼이나 일일이 개별성과 자기애에 몸부림치는 존재들이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는 언제 읽어도 마음 속에 뜨거운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가 이 기이하고 애착 많은 생을 부여 받아, 잘 되든 못 되든 각양각생의 도전과 성취, 좌절과 행운 속에 부대껴가면서 분명 실감하는 건, 남에게 사랑을 받기보다 내가 불꽃 같은 열정으로 다른 무엇, 누구를 사랑할 때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거의 동의 안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누구에게 아낌 없이 사랑을 쏟아주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부여 받은 생명이 그래서 존귀하구나 하는 본원적 깨달음까지 안겨 줍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서 깨달음과 환희, 그리고 실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순환을 이루는 예가 이것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느낌은 못 배우든 많이 배웠든, 마음이 악하든 선하든, 어리석은 집착과 고집에 갇혀 사람이 제 한계를 벗어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차별 없이 온기를 안겨 줄 어떤 영감인 듯도 싶네요.

소년 토미의 이야기는 처음 읽을 당시에도 우리들에게 뭔가 대리만족이라도 주는 듯 대견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열정과 매력으로 가득찬 소년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얘야, 난 많은 사업체를 갖고 있고, 나중에 널 고용할 수도 있어."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쯤이면 제가 자립해서는 아저씨를 고용할 건데요." 이런 짧은 대화에서도 우리는 미국 사회가 무엇에 의해 서열(그런 게 필요하다면)이 주어지며, 개인의 성취와 존경받는 정도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눈치챌 수 있죠. 이때 이 미담의 배경으로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어쨌든 현재까지 생존해 있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어느 개인이 겪는 모든 소통과 인연의 흔적은 결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드물게 주어진 작은 기회 앞에 머뭇거리지 말고 자긍심으로 첫 발을 대담하게 내딛어야 행운까지 그를 도와 줄 수 있다는 진리도 재확인이 가능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 무엇에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이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저도 랭스턴 휴즈의 단편들을 지금 읽는 중입니다만,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소년은 파도타기에 미친 아이입니다. 엄마에게 "뇌물"을 주면서까지 자신이 소중히 돌보는 "과업"에 헌신하길 바라는 이 소년은, 그대상이 무엇이든 내 모든 걸 헌신하고 오롯이 투입할 수 있어야 내 존재의 충만함, 실감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모두들과 닮아 있습니다. 이 책이 빼어난 점은 그저 감동적인 미담으로만 채워진 게 아닌, 뭔가 잊고 있었던, 그러면서도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던 그 뭉클하고 뜨거운 박동과 피의 전파를, 내 살과 내 영혼 속에서 다시 느낄 수 있게 돕는 동기 부여적 사연을 잔뜩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올 때만 해도 치킨 메뉴가 지금처럼 온갖 레시피가 다 개발된 형편은 아니었는데요, 갖가지 변종과 얄팍한 유행이 본연의 내 취향까지 잊게 만드는 요즘, 이 단순하면서도 살가운 사연의 모음은 순정판 고유의 담백함과 높은 영양가(?)로, 원기와 진정성 담긴 응원을 가뜩 불어 넣어 주는 친구처럼 반갑고 은사처럼 감사하게 독자의 등을 토닥여 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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