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이 아닌 해암으로 다스려라 - 현명한 암치료 선택을 위한 통합의학 가이드
윤성우 지음 / 와이겔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어디 저 외딴 산골에서 혼자 요양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려 애 쓰고, 자신의 지난 과거와 화해하면서 암이 저절로 나았다는 회고가 자주 나돕니다. 물론 그 중에는 못 믿을 과장이나 허풍도 많지만, 여튼 암이란 질병이 그 암만 집중 상대해서 격파한다고 금방 낫거나, 원상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는 질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설사 암이 나아도 몸의 다른 기관이 망가지거나, 얼마 안 되어 재발하는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서구식 현대의학이 취한 전략은 "항암" 즉, anti-cancer treatment인데, 이게 기본적으로는 대증(對症) 요법이라 사람의 몸 근본에서 싹트는 어떤 병인을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거죠. 하긴 그렇게 따지면 거의 모든 현대의학의 치료법이 (외과시술을 비롯해) 대증요법인데, 총체적 불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드러눕는 게 고작 아닌가, 뭐 이런 반론도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암이란, 뭔가 다른 병들과는 접근을 달리해야 할, 마음가짐이라든가 스트레스 많은 환경, 체질의 근본 요인과 관계 있는 병 같습니다. 제가 1년 몇 개월 전에 읽은 책 중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도 담은 게 있는데, 이게 성격이라든가 암을 키우는 체질 따위를 의미하는 걸로 밝혀질지 더 지켜 봐야 하며, 만약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복이 어려운지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겠지요.

이 책은 한국에서 한방의학 분야에선 최고의 권위를 지닌 윤성우 박사님이 지은 책입니다. 그간 통합(통합이라 함은 양방, 한방 학제간 연구) 암학회 등에서 확고한 명성을 남기셨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명의로 소문난 분이시죠. 이번에 대중을 위한 안내서로는 이 책을 처음 펴내신 셈인데, 첫째 체계적인 정보와 자기성찰적(객관적) 관점, 둘째 일반인이 알기 쉬운 설명, 셋째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유병 과정 해설과 대응에 대한 충고 등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이 염두에 두는 첫째 전제는 "한방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은 큰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온화하신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과 어투는 책 어디에서건 괜한 대립적 언사를 자제하십니다. 한방은 귀납적으로, 다양한 임상 체험과 구체적 처방의 경과를 보고 오랜 시간 지혜가 축적된 의학이지만, 서양 의학은 자연과학에서의 확고한 성과, 의심할 수 없는 법칙(주로 화학 관련이겠습니만)을 토대로 "연역"되어온 학문 체계라는 겁니다. 귀납과 연역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고, 상호 보완적으로 진리 탐구에 병용되어야 할 방법론입니다. 의학이란 환자를 위해 적용되고 발전되어야 할 수단이지,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지식과 요법인 양 통용될 수 없다는 거죠.

한방이 본디 성격과 기질, 마음가짐의 요인을 강조하긴 하지만, 서양 의학도 예컨대 막 실려온 환자에게 "절대 안정 요망" 같은 추상적 당부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자께서는 "비록 후천적 요인이 암 발생의 8, 90%를 차지한다고는 하나, 아직 이론적으로 명확히 환경 요소와 병발의 인과과계가 구명된 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저자께서는 서양 의학계의 최신 동향 중 일부를 소개하며, psycho-neuro- endocrino- immunology라는 신 분파를 거명합니다. 앞의 psycho-라는 접두사가 중요한데, "정신"이 신경, 내분비, 면역을 일괄하여 영향을 끼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분야입니다. 마음가짐의 어떤 상태가 특정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며, 이것들이 인체에 어떤 총체적 영향을 남기는지 밝히는 게 목적입니다. 그렇고 보면 윤 박사님 같은 분들의 업적이 서양 의학에 일정 부분 자극을 준 게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더 인체와 의식에 스트레스를 안긴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막연한 스트레스라는 개념에 상당히 적절한 병인 포섭을 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황기(黃芪. 두번째 글자는 "단너삼 기" 자 입니다)란 약재는 이미 서양 의학에서도 채택했다고 합니다. 논문(<Cancer Letters>에 수록)에 의하면 직접 암세포에다 독성 효과(cytotoxic effect)를 내는 게 아니라, 이런 암세포의 확산을 막는 정지 효과(cytostatic)를 보게 하는 처방으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다만 이 역시 저체중자에게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효능 중의 하나로, 한방이 취하는 태도가 양방과 어떻게 다른지를 단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약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책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항암은 말 그대로 암과 맞서 싸우며 암의 덩어리를 파괴, 소멸시킨다는 겁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침투해 온 병원체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가 타당해도, 어쩌면 나의 타고난 체질과 지속적인 습관이 몸 안에서 만들어낸, 내 몸의 일부나 다름 없는 게 어쩌다 혹을 키워 암이 되었다면, 이런 상대를 놓고서는 "잘 달래어 스스로가 무장 해제를 한 후 몸의 원 성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 발본색원 처방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암과 싸우지 말고 화해하며 같이 살 생각할 하니 낫더라"는 고백을 하는 것도 많이 들었습니다.

양한방 협진시스템도 많은 권위자들이 환자에게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저자께서 몸 담는 경희대에 잘 마련되었다고 하시는데요. 경희의료원이 이런 통합적 접근을 선구적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잘 발전시켜 온 내력이 있기도 합니다. 반면 "한방 단독 치료"의 유효성 역시 저자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방법 중 하나로 권하시는데요. 한방에서는 본디 종기를 "반쯤만 죽여 놓은 후" 나머지는 살려 놓은 채 체질의 강화에 보다 주력하는 방법을 취한다는 겁니다(역시, 항암이 아닌 해암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전략입니다). 적극적으로 암을 공격하는 걸 "공법", 반쯤 죽여 놓은 후 약해진 신체의 기를 살리고 체질을 보강하는 걸 "보법'이라고 붕른다는데, 저자의 결론은 "단독 한방 치료가 더 적용확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보완의학, 대체의학, 통합의학 등에 대해 저자는 엄격한 준별을 행합니다. 특히 대체의학은 아직 허황하고 위험한 부분이 많으며, 검증 없이 통용되는 각종 약재도 그 복용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의술은 인술(仁術)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저자분의 여러 충고, 특히 마음가짐이 바르고 남 탓을 하는 잡된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는 말씀은, 사람 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환자의 몸이 낫는다는 원칙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병이 낫는 건 그게 기적이 아니라, 결국은 당사자 자신이 병을 키우기도 하고 낫우기도 하는 거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