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즈니스의 모든 것 - 소설로 읽는 중국 비즈니스 매뉴얼
김민혁 지음 / 청동거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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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말이 가장 실천에 옮기기 힘듭니다. 본래 그렇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위태롭지 않다." 이 말은 누구나 다 알듯 중국의 고전 <손자병법>이 그 출전입니다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좌우명으로 삼기에 너무도 하중이 큰 금언이자 원칙입니다.



제가 소화한 이 책의 형식, 내용, 주제, 용도는 딱 저 한 줄의 금언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을 보죠. "중국 비즈니스(비록 이 책 본문 중에서 자주, 비'지'니스로 오기되지만)의 모든 것". 그렇다면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드는 예비 구매자, 독자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사업 한번 크게 벌이는 데 관심 있는 층이겠습니다.

1) 중국 시장의 특성과 중국인의 습성, 심리 구조를 파악하고("知彼"),
2)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나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소를 분석하며("知己"),
3)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 전술을 구사하되 요행을 좇지 말고 正道를 걸어라("百戰不殆").

요약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이 저렇게 추상적이면 읽는 이에게 별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 책 내용은 너무도 구체적이고, 너무도 실용적인 데다, 너무도 현지 감각이 뚝뚝 묻어 떨어지며, 중국 현지에서 열심히 현업에 종사하다 아예 비즈니스의 비의와 인생 사는 핵심의 원리까지 달통하신 저자의,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재미까지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알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그 담긴 컨텐츠뿐 아니라 전달하는 형식의 묘미까지 깊이 고민한(만약 별 고민 없이 바로 이런 책이 쓰여졌다면 진정 천재겠네요), 저자의 살뜰한 성의가 어느 독자에게도 와 닿을 만한, 멋진 책입니다. 저자가 고민하고 성의를 기울여도 독자가 별 준비 안 된 처지라면 결국 소통이 실패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독자조차 정신이 버쩍 들게 할 만한, 뭘 고민하고 뭘 실천해야 자신의 위치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각성시킬 그런 메시지와 정보를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 평범한 건 진정 "제목"뿐입니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사업가, 상인, 기타 아이템 보유자들은 "이 광대한 시장을 잘 공략해야지" 하는 일념과 의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물어 보면 그 나름 아는 것도 많고, 남들 하는 만큼은 계획도 섰습니다. 과연 진출한 이들 중 몇이나 성공해서 그 자리를 지키거나, 쏠쏠한 수익을 챙겨 돌아올까요? 대부분은 그저 의욕만 앞서다 실패할 뿐입니다. 이 책 본문에도 나오듯, 1990년대 초만 해도 "아, 13억 인구한테다 젓가락 하나씩만 팔아도 그게 어디여?" 같은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았습니다. 저자는 "아마 지금은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없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이런 말은 사업의 기초만 모르는 게 아니라, 아예 세상이 무슨 이치로 돌아가는지 캄캄하게 모르는 사람이나 할 법한 말입니다. 지금뿐 아니라 그때도 마찬가지고, 중국 아니라 어느 지역이라 해도 사정이 같아요. 시장이 뭔지 장사가 뭔지, 아니 아예 사람이 뭔지도 모르는 절망적 무지의 소치죠.


저자는 중국뿐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의 원칙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현지인을 대할 것을 거듭 권합니다. 그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지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오해, 왜곡 없이 수용하는 능력을 CQ라고 저자는 칭합니다. IQ, EQ 다 중요하지만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특히 CQ가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1) 한국인들끼리 모여서 "에이, 중국놈들은 이게 글렀다는 거야." "아휴, 그건 양반이지. 난 이런 것도 겪었다고." 같은, 한국식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현지의 행태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게, 가장 심각한 부적응자의 징후라고 지적합니다. 2) 중국인은 이러이러하다면서 개개인을 특정 집단에 거칠게 귀속 규정하는 태도 역시, 현지에 적응 못하고 사업을 접는 실패자들의 전형적 태도라고 말합니다. 한국 사람이라 해도 취향, 정치적 성향, 입맛, 용모, 빈부 차 등 천차만별인 개성인데, 어느 누굴 두고서도 그저 "한국인"이란 한 마디 규정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저자의 일침은, 중국식 풍토와 사고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그들의 땅에서 돈은 돈대로 벌고 싶은 이중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만만디"라는 한 마디로 중국인의 행태를 요약하던 때도 있었지만,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고 억만장자도 부쩍 증가했으며 무엇보다 전체 GDP가 이미 일본의 그것을 능가해버린 지금, 느긋하고 나사 풀린 태도를 경제 최전선에서 쉽게 목도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자는, 어떤 유형의 하급직에 이런 기강이 해이한, 그저 제 할 일만 최소한으로 해 놓고 조직 문화에 덜 기속되려는 "한가하고 나태한" 마인드가 분명히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타입도 함께 다독이고 설득도 하고 때론 기합도 넣어가며 끌고 갈 것인지 아닌지는, 업체의 현황과 조건, 특성에 따라 신중히 판단할 일이라고 하는군요.



중국인과 접촉할 때 "꽌시"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흔히 접하죠. 저자는 물론 이 "꽌시(關係. 관계)"가 중요하지만, 꽌시로 흥하다가 꽌시에 뒷발 걸려 망한다는 점도 잊지 말라고 따끔히 지적합니다. 리베이트의 수수가 일상화된 현지의 풍토와 관행에 기겁하고, 이런 불법을 근절하려는 한국 간부의 지시에 반발하며, "중국은 리베이트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중국을 전혀 모르는 이가 어떻게 관리직에서 현실에 안 맞는 조치를 강요하는가?" 같은 항변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내놓는 하급직도 흔히 본다는 거죠. 저자는 양회(兩會. 물론, 정협과 전인대를 가리킵니다) 같은 대규모 정치 행사에서 부정부패 이슈가 거론되면, 따끔하고 광범한 현지 사정을 통해 이런 관행을 뿌리뽑는 절차가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적발된 외국인은 현지인보다 더 가혹한 제재를 받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한국에서라면 차마 못 할 일을 중국이라고 태연하게 저지르지 말자는 거죠. 사업이나 현지 적응을 위한 지혜 이런 걸 떠나, 사람 사는 도리와 원칙으로서 맞는 말입니다.

다만 저는, 저런 당국의 조치가 예컨대 공산당 고위 당국의 청렴성, 도덕성, 공정성 등을 담보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말단에서 암암리에 생성되는 부정한 "꽌시"를 주기적으로 소탕, 리셋하는 건 오히려 상층부 권력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정말 힘이 센 "꽌시"는 소멸하지 않는데, 이런 연줄은 일개 외국인이 어떤 빈틈을 파고 들기 어렵죠. 사정과 단속은 하위직이나 외국인들에게 "주제파악"을 시키는 공산당 고위층의 연례 행사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대응 방식은, 기존의 "꽌시"에 미련스레 집착하지 말고, 효용이 다한 "꽌시"를 제때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잘 갈아타는 정보력과 시세 감각입니다. 저자께서는 "결국 대형 마트의 새 구매담당자가 우수한 제품을 매대에 배치하겠다며 다시 거래를 트자고 자발적으로 찾아왔다"고 하시지만, 그게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게 아니네요. 그 사람도 좀 시간이 지나 보십시오, 바로 뒷돈 달라고 눈치를 준단 말입니다. ㅎㅎ



이 책은 놀랍게도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소설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잖아? 나는 나한테 필요한 정보만 쉽게 찾아 소화하고 싶은데." 뭐 이런 반응을 보일 분들한테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1) 목차는 사항별 색인처럼 되어 있어서, 관심 있는 토픽을 앞 차례에서 찾아 그 페이지로 가면 "에피소드"와 함께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나와 있을 겁니다. 사례 형식이라 더 이해도 빠르겠고요. 2) 이 책은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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