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2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긴 분량 내내 무거운 분위기로 끌고 가다 드디어 이 2권 끝에서 마무리가 되긴 하네요. 1권 리뷰에서 말한 대로, 고아원 출신인 여러 성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날아온 의문의 편지를 받고 그 발신자의 신원, 그 와중에서 알게 된 수수께끼의 다른 인물 그 정체 등을 캐고, 아울러 자신을 낳아 준 친부모가 누구인지, 오랜 세월 동안 베일에 갇혀 있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습니다.

템포가 빠른 북유럽 스릴러 주류와는 달리,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과거, 그리고 그 객관적 시련이 인물들에게 남긴 깊숙한 상처를 지층 조사하듯 더듬느라 진행이 상당히 더딘 편입니다. 고아라는 수치스러운 정체성, 그리고 추한 외모, 밝지 못한 성격, 이 모든 것들이 빚은 상처를 보듬느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들의 발버둥을 일일히 살피고 그 배경을 분석하느라, 남 일(가상의 세계에 불과한)을 구경하는 독자조차 진이 다 빠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그 수가 적지도 않았던 모든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이 한 지점에서 여튼 모두 제 가닥을 찾아 깔끔하게 정리되는 데서 뭔가 마음이 풀리긴 합니다. "깔끔하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겠으나(당사자들 입장에서야 그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겠냐는 점에서), 여튼 이들도 진실 앞에 눈을 감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가졌으며, 또한 한 사람(혹은 그 이상)의 죽음이 과연 자연사인지 다른 원인이 개입했는지를 규명할 때에는 이게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를라나 페터 등의 비중이 줄고 이 2권은 수사네, 아스거 등의 어린 시절 회상, 그리고 새로 파헤쳐진 사실이 독자 앞에 와락 제시됩니다. 수사네는 보기 드물게 미인형인 외모인데, 1권 리뷰에서 말한 것처럼 용모가 예쁜 아이는 그나마 좋은 조건의 양부모를 찾는 데 시간이 덜 걸린다는 장점이 있죠. 수사네를 입양한 이들은 작은 농장을 가꾸는 부부였습니다. 덴마크는 특이하게도 반도 우안에 위치한 섬에 수도도 있고 번화한 도시들이 위치하지만,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유틀란트 반도에는 이처럼 농업, 낙농 등의 기능이 맡겨져 있죠. 도시와 농촌 간의 이런 괴리는 이 소설에서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 의식, 혹은 이유 모를 친밀감(드물지만)을 형성하는 근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소설은 별 것 아닌 듯 흘리며 지나가는 말 중에 제법 깊숙한 복선을 깔아 두는 게 습관이더군요.

사생아라는 게 꼭 버려진 아이만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마땅히 법적으로 엮여져야 할 두 남녀 사이에서 자라지 못한 모든 아이, 혹은 풍요롭고 명예스러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모든 것 가졌으나, 자신의 정확한 출생을 알지 못한 아이(이게 누구일까요?)까지 다 포함하는 의미더군요, 이 소설에서는 말이죠. 1권에서 뜬금없이, 막달렌의 이야기를 하면서 프레데릭 7세가 나오길래 뭔 의미일까 했는데, 그 양반이 생전에 상궤에서 벗어난(왕족치고는) 행각을 보인 점이나 후계를 못 남긴 사유 등이, 작가는 다 그런 껄끄러운 기억과 유별난 결벽 심리, 혹은 수치심 등이 다 먼 이유가 되었다는 분석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사만다는 결국 자신이 사생아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사만다와 운명의 켤레쌍곡선을 그리며 강한 생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는(이라기보다 그냥 외모빨로 잘 풀리는 듯도 한?ㅋ) 수사네의 선택이 이 2권에서 이야기의 주된 흐름을 형성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2권(3, 4부)가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두루두루 담지 못한 면이 있어 불만이 좀 있었구요.

1권에서 "늪지의 바보(눈알이 빠지는)"에 얽힌 끔찍한 비밀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면(텍스트 묘사인데도 정말 징글징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네요), 여기서는 좀 미니어처화한 카나리아의 끔찍한 생애가 등장 인물,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기 드 모파상의 <여인의 일생>에서도, 여러 새끼를 낳는 암캐와 그 중 한 마리 마사크르의 화소가 특징적인 사건이었듯 말입니다. 생명을 세상에 배출하는 산모의 모습은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활동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한데, 아이들은 큰 짐승도 아닌 카나리아의 출산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독자인 저 역시, 작가의 묘사가 생생해서인지 괴물처럼 큰 알을 낳다 건강이 나빠지고(이미 포태 기간 중에 심각한 질환이 발생한 듯), 기형의 알과 시름시름 앓는 "산모"를 동시에 폐기, 안락사시키는 부녀(?)의 단호한 행동을 보고(읽고)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네요. 양아버지 안톤은 마음이 여리고 선량한 인물이지만, 어쩌면 삶의 가장 추악한 진실에 대해 일찍부터 그 다루는 방법을 깨우치고 득도한 듯 담담하게 비루한 일상을 사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그는 경제적으로야 넉넉한 형편입니다. 단지 화려하고 주목 받는 인생을 내심 꿈꾸었던 아내의 존경을 못 받은 일개 촌부, 농장주였다는 의미에서일 뿐입니다.

결국 원하고 갈망하던 이성에게 선택되지 못하고, 안정된 현실을 보장해 줄 평범한 남자에게 머물렀던 여인의 맺힌 오랜 한이, 자신과 사랑하는(어쨌든) 가족 모두의 삶을 파괴하고 말게 된 거죠. 카나리아를... (스포일러라 생략)... 에는 그만큼 큰 의미가 숨어 있었다는 게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작가, 바람둥이는 수사네의 통렬한 비난처럼 결국 허풍쟁이에 불과했는데도, 그녀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비련에 너무 많은 것을 투영했던 겁니다. "누가 진짜 사생아인가? 우리 중 누가 출생이라는 최악의 시련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가?" 어떤 축복은 그 실체를 알고 나면 최악의 저주로 판명나기도 합니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 인식, 시초에 잉태된 죄의식 때문에, 작가는 현대 덴마크의 일견 풍요로워 보이고 아름답게 조성된 문명의 여건 뒤에 온갖 추악한 모순과 괴물들이 숨어 모두의 영혼에서 고뇌를 잠재울 날이 없다고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옳다면 우리는 예정된 스케줄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부품에 불과하다. 닐스 보어의 해석이 옳아야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확인되는 셈이다. 왜 전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려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모습을 바꾸고 접근을 거부하는가?" 외모가 추한 마리는, 그새 온갖 신산과 아픔을 겪고 다시 콩슬룬(이 소설의 주무대가 된 고아원입니다)에 돌아온 수사네와 황홀한 동성 섹스를 치르고 나서(소설에선 대단히 간접적으로 돌려돌려 묘사하지만 결국 성적 체험을 뜻하겠네요. 전 1권에서도 막달렌과 마리가, 신체적으로 불가능하겠으나 그런 관계가 아니었을지 추측했습니다) 튀코 브라헤를 향해(이 사람들은 고인과 대화하는 게 주특기) "우주의 신비를 당신보다 내가 더 확실하게 풀었다!"며 환호합니다(그럼 브라헤는 한번도 못해 보고 죽기라도 했단 소리? 이렇게 체험과 자산이 빈약한 사람이 어쩌다 한 번 맛을 보면 세상 천지에 자기만 해 본 양 방방 뛰게 마련이죠 ㅋ) 아그너가 부각되면서 물리학, 천문학 토픽이 자주 등장하는데, 호일, 구스, 호킹, 칼 세이건 같은 이들의 이름과 주장이 소설의 테마 그 외연을 확장하며 독자에게 많은 암시를 남깁니다. 참고로 닐스 보어와 그 학파의 입장에 붙은 이름이 "코펜하겐 해석"이듯, 덴마크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인류에 남긴 업적이 큰 많은 학자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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