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여인 - 한일 역사기행
곽경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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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한 연령대의 신사 몇 분이,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이국 땅을 찾아가서 깊은 고찰과 상념에 잠기는데, 마침 현지에 사는 묘령의 여인이 홀연 나타나, 영감과 각성의 계기가 되는 알찬 조언을 베풀어 준다.... 예전 서양 문학 여럿에서 보아 익숙한 설정만 같습니다만, 현역 건축가이신 저자가 일본 오사카를 방문할 때 직접 겪은 바입니다. 물론 그 주제는 중세 유럽 어느 백작의 낭만적 고성(古城)에 얽힌 사연이거나 한 건 아니고,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전체에 큰 비극의 역사를 남긴 한-중-일 3국의 근원, 현재, 전망에 얽힌 것입니다. 미래지향 프렌드십을 공동 정책 과제로 삼은 게 불과 십 몇 년 전 일인데, 부분적으로는 일본 우경화 바람, 부분적으로는 중국 패권 행보의 본격화 때문에, 이제 동아시아 3국의 관계는 근 한 세기 들어 최악의 긴장, 대립, 불안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조어대에서 어느 나라 군대 사이에 무력 충돌이 빚어진다 해도 아주 많이 놀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국 때문에, 도대체 수천 년 전 고대에, 특히 한반도와 현해탄, 일본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후손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긴 모습으로만 보면 특히 서양인들 눈으로는 구분이 안 갈 만큼 닮았는데, 왜 이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대고 안달인 걸까요. 특히 열도에 사는 저들 겨레는, 역사를 통틀어 일정 주기를 두고 반도를 향해 탐욕스런 시선을 두며 그 침략의 호기를 수시로 노려 왔습니다. 저자는 이런 역사의 이면에는 일본 열도 안에서, 풍신수길로 대표되는 반(反) 한반도 성향의 세력과,  성숙한 의식으로 국제 평화를 보다 배려해 온 그 반대 진영 간의 역학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형성되었는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과 연합하여 반도의 패권을 노리고 여, 제 양국을 멸망시킨 게 신라의 소위 삼국 통일인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건 백제라는 정치 단위가 산둥 반도 일대, 한반도 남서부, 그리고 규슈, 시코쿠, 간사이 일대에 걸쳐 큰 세력을 형성한 제국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열도의 백제 세력은 언제나 반도 일부에 대해 모국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런 외교 관계를 기반으로 "내지"로부터 선진 문화의 유입, 이식을 지속적으로 이뤄 왔는데, 그것이 대륙의 이질적 세력과 결탁한 신라 측의 대반격을 통해 최종적으로 파탄이 났다는 거죠. 신라가 통일한 반도는 열도의 백제 세력에게 망국의 한을 심어 준 엄청난 트라우마의 진원으로 인식되었고, 이때로부터 열도의 일부 정치 세력이 항구적으로 반(反) 반도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겁니다.

 

열도의 주민 구성은 본디 도래인과 피지배 토착인이라는 이원적 성격 뿐 아니라, 그 지배층 내부적으로도 백제계와 신라계라는 서로 대등한 이중의 레이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중 후자를 대변하는 도쿠가와(德川) 세력이 최종적으로 열도의 패권을 장악했을 때  동아시아에는 평화가 정착되었고, 한반도에서 파견된 통신사 일행은 장기간에 걸쳐 열도 전역을 순방하며 융숭하고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조선 측에는 "향후 가능할 전쟁 도발 움직임을 미리 시찰하며, 통신사가 받는 대접 자체가 전란에 대한 진사(陳謝)의 표현"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덕천 막부로선 막대한 접대비를 번 측에 부담시킴으로써 반란 예방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풍신수길이 쌓은 오사카 성 뿐 아니라, 먼 규슈의 변방, 아니 그 어느 다른 지방이라도, 현지에 쌓은 성주의 본성, 외성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듯 철옹성의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축조된 어느 성곽도 이런 구조가 아니며, 심지어 왕이 거주하는 궁궐도 그저 야트막한 담장을 둘렀을 뿐입니다. 이는 어리숙하고 권위가 부족한 체제의 약점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안정적 중앙집권 체제를 그 이른 시절부터 구축한 조선만의 장점을 보여 주는 거죠. 반란의 우려가 적을 뿐 아니라, 혹시 누가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그 행위의 정당성이 확보되기가 어려웠기에, 어차피 투철한 방비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겁니다.

 

메이지 유신은 기본적으로 쿠데타였으며, 비현실적 대박을 노리고 무리수를 둔 간사이 세력이 요행히 주류로 재등장한, 일본 현대사 그 비극의 물꼬를 튼 변칙적 사건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묘하게도 백제 왕녀의 현신으로 보이는 이쓰코 여사도 이런 저자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합니다(결국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완전한 파멸을 맞았기에). 나아가 폐쇄적 성벽을 쌓고 배타적 지역 할거에 몰두하며, 씨족과 주군의 복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항쟁을 일삼음이 무려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역사를 두고, 저자는 영주마다 마련한 독특한 가문(家紋)까지, "정부와 사회보다 사(私)의 권익을 앞세운 전근대성"의 예증이라며 통박합니다. 오히려 이 점에서 조선이, 유럽과 일본보다 더 근대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주장에 이쓰코 씨는 처음에 반발하다, 나중에는 저자의 견해에 설복되고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본 강점기에 조선 문화에 대한 미학적 연구를 대단히 화려한 문장 속에 담아 발표한 문필가죠. 이 사람은 1980년대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는데, 동대문 남대문 등의 철거를 막아 문화 유적의 보존에 기여했다는 게 그 사유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여러 논거를 들며 柳宗悅의 주장이 허구에 가득한 궤변임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건축가로서 지닌 독자적인 관점을 통해, 아마츄어에 가까운 야나기 씨의 억지 논변(조선 건축 곡선의 미라든가 비애의 표현 등)을 논파하고 있습니다.

 

한일 비교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김슬옹 박사의 평처럼, 이 책은 상대 화자를 (백제 왕녀의 화신인) 이쓰코라는 신비의 여인으로 설정하여, 특히 한국 독자에게 흥미진진한 서사 구조를 베풀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학생 시절(서울대 건축과) 읽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에서도 역시 화제작이었으며 처음부터 일어로 쓰여진) 그 책을 이 "오사카의 여인"도 읽었던 터라,  두 사람 간의 대화는 더욱 심도 있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건조한 문화 논의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흥미로운 배경과 장치가 여럿 깔려 있으므로, 문외한인 독자도 쉽게 책장을 넘기며 몰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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