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타이쿤 환상의 숲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임근희 옮김 / 이모션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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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본디, 가문의 배경이나 번쩍이는 학벌 같은 것의 도움 없이, 그저 밑바닥에서 일어서서, 자신의 타고난 재치와 약삭빠름, 대담함, 번득이는 한순간의 영감 같은 것만 믿고 힘차게 거리를 누비며 거부(巨富)를 그러모은, 업스타트 제왕들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한 세기 전에 활동한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는 건,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런 자수성가형 야심가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낸 데에도 한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라스트 타이쿤>은 미완성작입니다. 한국어 역자와 편집자 에드먼드 윌슨의 평가에 따르면, 작가에게 불과 몇 주의 시간만 더 주어졌어도 대작 하나가 멋진 모습으로 완성되어, 문학사상 금자탑 하나가 우뚝 세워졌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작가 사후 신속히, 그리고 꼼꼼한 성의가 기울여져 탄생한 이 판본만 보아도,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드라마, 그 속에 녹아 있는 사회에 역사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이 점은 중요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채 보이지 않던 개성이요 성취라서입니다) 등을 충분히 음미하고 그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따라서 까뮈의 <최초의 인간>과는 경우가 다르게, 완성작이 주는 것 못지 않은 감흥과 들뜸을 완독 독자들에게 충분히 안겨 줍니다. 사십 년 전 이미 영화로도 한 번 만들어졌으며(작품이 쓰여진 때로부터는 대략 삽십 년 후였습니다), 최근 TV 미니시리즈로도 새로 제작이 이뤄진다는 소식입니다. 오히려 미완성작이기에, 열성과 상상력을 동시에 지닌 독자들에게는, 오픈된 여백에 마음껏 뛰어들어 인물들의 품평을 하고, 나 같으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겠다는 식으로 "참여"를 할 여지마저 던져 줍니다. 특히 편집자 E 윌슨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사후 그가 남긴 원고와 메모, 집필 계획 등을 모두 모아 자신의 해설과 함께 이 책에 실었는데, 독자로서는 "일류 소설가의 작업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하는 생각에, 미처 못 채워 온 호기심을 마음껏 달랠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먼로 스타입니다. 그의 이름 철자는 Stahr이지만, 발음이 유사하기에 읽는 이들은 이 "신동" 제작자가 주체로 행하는 동작, 주어로 기능하는 문장에서 일일이 "하늘에 뜬 찬란한 별"로 동일시하는 (자발적) 착오마저 저지릅니다. 비단 독자만의 과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를 경계하거나, 그를 두려워하거나, 그를 지독히 혐오하여 죽이려 들거나, 그에게 굴복하거나, 그를 존경하거나, 그를.. 사랑하거나, 여하의 입장 차이에 관계 없이, 그를 항성 삼아 주위의 궤도를 도는 행성, 위성과도 같은 위치를 잡고 있습니다.

먼로 스타의 직업은 영화 제작자입니다. 이 소설에서 (한국어 번역본에서도 물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프로듀서"입니다. 한국의 어느 방송국 PD가 미국에 업무차  방문했는데, 자신의 신분을 "producer"로 소개한 명함을 내미니까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보더랍니다. 이렇게 젊고 행색도 캐주얼한 차림이 무슨 producer냐는 거죠. 미국에서 producer라고 하면 어디까지나 대자본을 갖고 영화 산업을 운영하는, 혹은 개별 기획을 발주하는 사업가이지, 고용된 director, 연출 감독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이도 지긋할 뿐더러, 거동시에는 리무진과 스포츠카를 편의에 따라서 골라 몰 재력이 되어야 하며, 이 책에 잘 나오는 묘사처럼 유능한 스탭, 재주꾼들을 상황에 따라 고용하고 부리고 지휘하며 "짜를" 수 있는 독재자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보다 남들의 재능을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단, 남들의 무능에 대해서도 가차없다는 게 함정).



영화 제작자란 명함을 내밀며 행세할 수 있는 저명인사가 미국 전체(동부, 서부 통틀어)에서 몇 되지도 않지만, 사업가 중에서도 "프로듀서"라고 하면 대단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사업 감각도 좋아야 하고, 큰 조직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 조율, 관리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 외에,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그 꿈과 기호를 (환상 속에서나마) 충족시켜 주는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가와 예술가 노릇을 모두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재능과 자질이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먼로 스타가 하는 일(비즈니스)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타 씨의 나이가 몇이냐 하면 서른 일곱입니다. 남 밑에서 일하는 처지라면 이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혹 프리랜서라고 해도, 이미 크리에이티브가 시들어 갈 때입니다. 그러나 먼로 스타는 제작자, 회장님입니다. 남들 애써 노력해서 이제 중역 명찰을 달아 볼까 고민하는 나이에, 그는 수백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수십만 명이 버는 급료 상당액을 한 손으로 주무르며, 수천 만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할 수 있는 위치라는 뜻입니다. 이러니 그가 나이 서른 일곱에 "신동"이라는 소릴 듣지 않겠습니까. 비록 자신에게 작업을 거는(그 반대가 아닙니다) 대학교 3학년 여학생 세실리아 브래디에게는 "손을 대기에 난 너무 늙었어."라며 의뭉을 떨지만 말입니다.

미완결작이니 장담은 못 해도, 먼로 스타 회장님은 정말 세실리아 브래디(교차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는 대목에서 나레이터이기도 합니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려서 여자로 안 보이기도 하고, 진성 워커홀릭이라 일이 애인인 이유도 있습니다. 그의 라이벌이자 일시 동업자인 세실리아의 부친 브래독 브래디와는 이 점에서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도 않고, 오로지 탐욕과 야수적 적개심에만 움직인 채, 이 주인공 스타를 파멸시키려 획책합니다. 브래디 씨의 이런 약탈자 기질은, 훨씬 나이 어린 비서와 밀통하다 딸 세실리아에 들켜("아빠 어디 아프세요? 왜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시고 기운도 없어 보여요?") 망신을 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라지만(그리고 자신을 딸로서 지독히 아끼고 자랑스러워 한다지만), 이런 비열하고 부족한 남자,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알아차렸기에, 세실리아는 반발심에서 (자신보다 훨씬 연상인) 먼로 스타에게 접근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너무도 아릅다운 눈빛, 일에 몰두할 때 꿈꾸는 듯한 특유의 표정" 운운하는 걸로 보아, 진짜 한 남성으로의 매력에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와일리 화이트와 사귀고 있긴 하나(스타 회장은 신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남자는 2순위일 뿐입니다.

사업상 라이벌이자 감정적 원수인 자의 딸과 묘한 관계에 놓인다는 설정은, 이 소설이 나오고 십여 년 후에 발표된 에드나 퍼버의 장편 <자이언트>에서 베네딕트와 링크의 관계와도 비슷합니다. 물론 1) 베네딕트가 누대의 지주 명문 가문 출신인 반면, 브래디와 스타는 둘 다 밑바닥 출신이라는 점, 2) 먼로 스타는 순수한 마음을 아직 잃지 않은 영혼이고, 브래디는 구제불능으로 타락했다는 점에서 <자이언트>와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업판에서야 아직 어린(?) 나이라서인지, 스타의 마음씀씀이나 감정의 동선이 참 순진한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는 직원이나 거래 상대방에게 직선적 어조로 면박을 주기도 하고, 현장에서 한창 작업 중인 감독(스탭 레벨이 아니고 무려 감독입니다- 레드 라이딩우드- 이름도 참...)을 바로 짜르고 현장에서 대체 감독을 바로 불러들이기도 하합니다("찍던 씬은 마저 찍고 갈게요.""아니, 다른 감독이 벌써 들어와서 찍고 있습니다. 당신 코트는 내가 여기 가져 왔으니 다시 들어갈 필요 없소, 미안하게 되었네요. 다음 기회에 같이 일합시다.").

작가의 생리도 훤히 깨치고 있어서, 능률을 못 발휘한다 싶은 작가(보통 2인 1조로 돌립니다)가 보이면 바로 다른 팀을 투입합니다("작가로서 지나친 압박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건은 쉬시고 집에서 몇 개월 정도 쉬며 부담 없는 창작에 먼저 몰두해 보십시오."). 이렇게 소모품으로 부려지는 "작가(원어는 writer입니다. 이 단어는 author와는 구별되죠)"와는 달리, 영국 본토에서 모셔 온 진짜 작가(author)에게는 그 대접이 깍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제작자가 왜 제작자인지, 영화 따위라며 애써 경멸하려 드는 구세대 인사에게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어때요? 이러면 관객이 정말 다음 씬이 궁금해서 계속 보지 않겠습니까?" "대체... 그런 솜씨가 있으면서 왜 당신은 내게 페이를 지급하는 거죠?(직접 쓰면 될 것을- 진심 탄복해서 하는 말입니다)"

경영자는 (이 소설에서 스타 본인의 입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무엇이 어디에 있고 그게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용인술입니다. "내가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구(그래서 자기가 사장이라는 뜻)." 하지만 그는 경영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예술가 못지 않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먼로 스타를 대신할 사람은, 이 헐리웃 바닥에 거의 없습니다. 밑바닥에서 숱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하고 이치를 터득한 자라, 사람들 마음을 파악하고 급소를 찌르는 일에 아주 능합니다.

이 소설은 이런 영화판의 비사, 생리만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공황 이후 극심해진 빈부 격차, 그로 인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지식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예리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이런 대목에서는 "(스스로 인정하듯)배운 게 없는" 먼로 스타가 나설 수 없고, 부친에 대한 반항심에서 리버럴로 기우는 듯한 세실리아가 역을 맡아, 상류층이 바라보는 좌경화에 대한 경계, 혁명에 대한 공포, 속물스러운 동류 계급에 대한 거리두기 등 모순된 감정의 복합을,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공황을 미국 신흥 부유층이 주도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규정하는 작가 피츠제럴드 본인의 견해도 은근 짙게 묻어납니다. 이무렵 경제적으로 대단히 고전하던 그에게(더군다나 지식인이었던 처지로), 혁명 분자들의 이런저런 주장이 그에게 결코 남의 사정이 아니었겠죠. 먼로 스타는 스스로를 "러시아에 대해 지극히 공정한 태도"를 유지한다고 평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도 같을 뿐입니다. "이 사람은 다른 배역은 안 되고,... 뭐랄까 몰락한 러시아 귀족 역을 맡기면 딱이겠군.""사실입니다. 망명 귀족이에요..... 단, 소신이 공산주의라 그 역은 절대 안 맡겠다고 합니다."....." 이런 장면에서 독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 이 작품의 원제는 The Love of the Last Tycoon입니다. love of 가 빠진 건 영화제목에서만 그렇습니다. 세실리아는 일방적으로 스타를 좋아했지만, 스타 씨가 좋아한 여성은 따로 있습니다. 죽은 처와 너무도 닮은 캐슬린 무어가 바로 그 대상입니다. 영리하고 빈틈없는 그는, 누가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아내와 닮은 배우 하나를 고용한 것 아닌가 처음엔 의심합니다. 헌데, 예리한 그의 눈으로도 보면 볼수록 캐슬린은, 자신의 the one 그 자체였습니다.... 쿨한 콜걸(나중에 정체가 밝혀지죠) 에드나의 친절한 소개로 캐슬린을 만나게 된 먼로 스타는, 그녀와 하룻밤 진한 정사를 나누고 지속적 관계를 맺으려 하나 여의치 않습니다. 소설의 애정 관계는 이처럼 밀도를 잃지 않은 다각적 양상으로 이어지는 게 또한 빼어난 점입니다.

연예인처럼 화려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몸담은 체제와 사회에 언제나 한 발 물러서 지식인적 냉정을 지키려 했던 스콧 피츠제럴드. 미완인 상태로도 워낙 웅대한 스케일과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한 작품이기에, 거진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읽어도 여전한 몰입감과 감동을 줍니다. 한국어로 이 작을 드디어 접할 수 있는 게 행운이었고, 상세하고 친절한 역자 후기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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