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투자 바이블
안훈민 지음 / 참돌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금리가 너무 낮습니다. 고도의 성장기를 질주해 왔던 한국이니만치 두 자리 수가 안 되는 건 이자로 쳐 주지도 않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장노년층에서는 1~2%를 운위하는 작금의 실정이 도무지 꿈만 같습니다. 1990년대에 일본은 이미 "제로 금리, 마이너스 금리"를 운위했습니다만 그게 먼 나라의 기이한 변고인 줄로들만 아셨겠죠. 파생상품이다 선물이다 하는 건 단지 남 사정으로만 여겨 왔던 계층, 심지어 은퇴 노인들까지도 요즘은 ELS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지금 수준의 이자 수준으로는 도무지 견딜 수 없기에, 기웃거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떤 분들 말을 들어 보면 이게 그렇게 위험하니 절대 하지 말랍니다. 사정은 급하지만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구 말을 들어야 바른 선택일까요.

 

안훈민 선생은 본인 자신이 성공한 투자가로서 남부러울 실적과 이력, 평판을 쌓아 왔고, 현재로선 PB처럼 특정 고객 집단을 상대로 어떤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입장도 아닙니다. 실력과 내공 가득한 분이 어떤 거래상의 제약 때문에 구애 받음 없이 자유롭게 풀어 주는 설명이니, 권위와 신뢰를 동시에 갖춘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분야 불문하고- 이 이렇게나, '맞는 말'만 골라서 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감탄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투자에 크게 성공한 입장이라면 일단 당장의 수익 상황에 연연하고 조바심칠 일이 없기에, 즉 절박한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예컨대 두 세기 전 로스차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역정보"를 흘려 경쟁 투자자들에게 집단 빅엿을 먹일 이유가 없죠. 실력 있는 고수는 (자기 입장이 있기에) 바른 판단을 하고서도 일일이 타인에게 정직한 분석과 진단을 내놓지 않고 결정적 사항은 (왜곡하지는 않더라도) 감추는 수가 많은데, 이 책은 ELS에 대해 현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거의모든 것을, 정말 필요한 것만 골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ELS는 일단 고정된 수익을 보장하여 지급합니다. 언제? 기초자산 가격이 오를 때만입니다. 이를 발행한 금융기관에선, 해당 기초자산의 시세가 아무리 폭등, 속등(續登)한다 해도, 처음에 정한 비율 외에 고객에게 더 주지 않습니다. 이건 주식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에는 "아 차라리 직접 사 둘 걸"하며 큰 아쉬움이 드는 경우입니다. 반면, 만약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 원금 전부 혹은 일부분을 날리는 게 이 ELS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이렇게만 설명을 하면, 1) 올라도 약이 오르고(극히 일부밖에는 내 주머니에 들어 오는 게 없음) 2) 일정 가격대 이상으로 떨어지면 돈을 원금까지 날리는 상품이니, 뭐가 되어도 고객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 오는, 천하에 몹쓸 녀석만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유수의 대기업도 재테크 수단으로 고려할 리가 없죠.

 

일단 이론상으로는 지수건 종목이건 개별주식이건 뭘 기초자산으로 해서도 ELS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이라고 해도 마케팅이 잘 안 되면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냉정한 시장 중심의 체제에서, 경우의 수대로 ELS를 찍어낸다고 해서 그게 소화되라는 보장은 없죠. 지금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는, 즉 금융 원리와 투자 요령에 훤한 전문가급 고수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될 만한 ELS는, 지수형과 적립형 ELS가 대부분입니다. 이 책 서론, 본문, 결론에서 수시로, 그리고 명확하게 제시되는 안훈민 선생의 결론도 "잘 모르겠거든 지수형 적립형만 하라. 그래도 안전할 것이다."입니다. 왜 그런가? 이런 ELS 상품들이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코스피는 여태 그처럼 큰 폭으로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원금 손실 상환"이 이뤄진 예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물론 안 저자는 대단히 신중하고, 또 정확성을 기하는 분이라, "현 시점까지는 그렇다"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바뀌는 사정이 궁금하다면, 자신이 운영하는 네이버카페에 가입해서 업데이트 사항을 확인하라고 합니다. 한번 찍어낸 책을 통해서는 입장 변경을 다시 할 수 없으므로,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겠죠?

 

그러니 위에 적은 2), 즉 가격 폭락시 원금을 다 날리는 악몽은, 현실적으로 그리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일단 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럼 1)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그 기회 비용을 "직접 투자한 상황"에 기초하여 매기지 말고, 은행 정기예금 따위에 넣고 미미한 저수익을 올릴 경우와 대조하면 그게 정답이라는 겁니다(책에 이런 말은 없습니다만 책을 읽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다는 거죠). ELS가 뜨는 근본 이유는, 종래 제도권 표준 금융상품의 메리트가 너무 줄어들었다는 그 상황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미 선진국이라서" 더 이상 고도성장의 호시절이 다시 찾아 오기 힘든 한국에서는, 이제 다른 기대를 가질 수도 없는 겁니다.

 

ELS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금융기관은 국민에게 봉사를 하기 위해 이 상품을 만든 건가? 물론 그렇지는 않죠. ELS를 찍을 때 해당 기관은 일단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 하에 설계를 합니다. 투자한 고객에게는 일부만 떼어줘도 자기들에게 남는 게 있을 만큼요. 발행기관이 진짜 노리는 건, 기초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을 때, 이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그  헷징의 이익을 보기 위함이죠. 저자도 책 내내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머리를 짜내고 짜낸 결과가 이 ELS의 발달입니다. 기본적으로 기관의 헷징이 주된 동기이며, 이런 기법은 이후 중국에 수출해도 될 만큼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첫째 코스피가 변동성이 떨어지고 "박스피"라는 오명을 쓰는 건, 상승요인이 좀 생길라치면 이 ELS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니 추가탄력을 못 받는다는 거죠. 반대로, 하락의 국면에서도 ELS에서 빠진 자금이 유입되니, 시장에 불안요인이 있어도 제때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겁니다(저자는 이 위험을 "안 좋을 때 집중적으로 펀치를 맞고 바로 쓰러질 수 있다. 평소에 조금씩 맞아두는 것만도 못함"이라고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자본시장의 체질 건전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게 ELS"라는 거창한 언사도 등장하는 거겠구요.

 

ELS에 대한 오해나 유언비어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오해도 어느 정도 이 상품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할 수 있긴 하겠습니다만... 오르지도 못하고 적당히만 내린 상태에서 기준가격(이걸 knock-in이라고 합니다. 이 "낙-인"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일부 혹은 전부를 날리는 거죠) 위에서 알짱알짱대면(확 떨어지든지 하지는 않고), 기관은 고의로 매도함으로써 가격 속락을 유발, 결국 투자자가 원금을 잃게 조작한다는 겁니다(그래야 기관이 이익). 이게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모럴 해저드"의 아주 전형적 예입니다. 모럴 해저드의 속성상 이를 방지할 방법은 "일일이 캐고 적발"하는 수동식 노가다 말고는 없죠. 이러니 대중의 오해에도 일단 어느 정도 타당성과 근거는 있는 셈입니다. 배임의 유인은 충분합니다.  다만 안 저자는, 한국의 현실(금융당국의 감시나 일반 소비자의 회의 어린 주시 등)상 기관이 ELS에서 조작을 할 여지나 조건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책 서두에 소개된 어느 기관 솜씨의 홍보 문구 "성적이 85점 이하로 떨어지면 용돈을 줄이고... " 어쩌구 비유는 진짜 엉터리 같은 소리죠. 발행기관과 고객은 다소 이해상충의 여지가 있습니다(소위 에이전트 이슈). 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아이가 시험 잘치는 게 어디 남 좋으라고 시간 내어 고생하는 거겠습니까? 일반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정반대로 왜곡하는 셈이죠. 안 저자는 점잖게 돌려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사례는 해당 직종 종사자조차 ELS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이런 투자전문가에게 들어야, 어떤 어설픈 이념상 왜곡이나 현실에 맞지도 않는 인문 담론의 엉터리 개입을 피하고 거를 수 있습니다. ELS에 관심 없는 분도, 이 책에서 국제 원자재나 소재 가격의 전망을 담은 파트만이라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왜 이렇게 유가가 곤두박질치는지, 사우디 등 중동국가와 미국 사이는 왜 긴장이 높아지면서도 바로 파탄에 이르지 않는지, 속이 시원할 만큼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화폐와 실물, 또는 금, 은 따위와의 상관 관계 역시, 간단한 몇 마디로 그 본질을 꿰뚫어 주고 있습니다. 역사 공부하면서 금본위제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면, 역사책 몇 권 몇 챕터가 구구절절하게 빙빙 돌려 늘어놓는 설명보다, 이 책 불과 몇 문장이 더 칼날같이 맥을 잘 짚어 주고 있으니 참고할 일입니다. "보험은 은행에서 가입하고, 그보다 더 나은 건 인터넷이다" 등 당연한 상식인데도 일반인이 아직도 낯설어하는 팁을, 근본원리에 대한 명쾌한 해설로 해결하는 것도 이 저자만의 장기입니다. 버릴 게 없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