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 아시아 총서 14
류원빙 지음, 홍지영 옮김 / 산지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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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많은 느낌이 교차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책은 그 부제가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입니다. 이 문구만 보면 이 시기(즉 1980년대)에 엄청나게 많은, 양질의 중국 영화가 생산되었다는 뜻 같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양산된 중국 영화를, 마음의 눈이 열려 있는, 자격 있는 팬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제 가치를 평가한 시기라는 뜻 같습니다. 하지만 제3국 출신의, 냉정한 태도로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관찰자가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는 저자분의 주관적 인식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1980년대는 중국이, 그 내세울 것 없는 국력과 빈약한 경제력으로, 다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 아래 문호를 개방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내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좋은 것들은 다 체험시켜 주겠다"는 의도로 문화 정책을 펴던 시기 같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정책 당국이, 이런 순진하고 선한 방침으로 정책 목표를 구체화하는 사례, 특히 문화 분야에서 이런 발걸음을 떼어나간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드문 정도가 아니라, 제가 아는 바로는 아예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그 당시의 중국이 이에 해당하는 유일한 표본이구나."라고 처음 알았습니다. 마치, 가난하지만 자식 교육 하나는 똑바로 시키려는 억척 같은 부모를 보는 감정이랄까요. 공학, 기술 관련 정책은 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문화 분야에서 그런 생각을 고위 정책 결정자가 갖고 유지하기란 정말 힘듭니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외환 보유고가 빈약하니 민간(이라는 게 형성되지도 못한 시절이죠)이나 정부나 무슨 돈이 있어야 컨텐츠를 사 올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 케케묵은 옛날 작품을 패키지로 사 오는 게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헌데, 그런 옛 작품들이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고전들이니, 감수성 풍부한 "될성부를 싹"들의 눈에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런 문화의 전범이라 할 명작을 애써 수입해 온 당국도 기특하지만(그저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일당 독재 체제로 여겨 온 선입견과는 너무도 다르더군요), 그런 명작의 우수한 면, 생산적 요소를 알아 보고 열심히 관람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팬들"의 태도도 정말 감탄스럽더군요.

 

한국에서도 소위 "헐리웃 키드"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던 세대, 시대가 있었습니다. 1950~60년대 즈음, 그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도 최신 미국 상업 영화가 불과 몇 년의 시차만 두고 수입되어, 구경거리에 목마른 눈과 귀를 극장으로 잔뜩 끌어대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부 정책의 계도적, 계획적 결과가 아니라, "아무 거나 들여와도 돈이 된다는 걸 알아차린" 민간 수입업자들의 상업적 계산 결과였습니다.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중국측 사정이, "당대 히트작 수입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싼 값에 구경할 수 있는 고전 꾸러민만 잔뜩 봐야 했던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굳이 대조를 하자면, 1) 차상위층 가정에서 입 짧은 애들이, 부모가 사다 주는 음식이나 구경거리를 "최신 유행이 아니라며" 퇴짜를 놓는 모습 2) 극빈층 가정에서 그래도 눈썰미 좋은 부모가, 값싼 양질의 물품을 애써 골라 준 걸 그 자녀들이 감사해하며 제 것으로 성실히 소화하는 모습,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1)은 그 이후 그 부모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돈을 벌고, 공부는 안 하고 눈높이만 높이던 애둘에게 억지로 과외를 시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보냈지만 별 열의 없이 현재를 사는 모습, 2)는 부모가 역시 경제적 대박을 치긴 했지만, 그것과는 관계 없이 그 집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들려 정직하게(있는 자원 없는 자원 다 그러모아가며) 학자로 대성한 결과에 비길 수 있습니다.  성장 과정이 2)가 더 건실할 뿐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 전망도 더 밝습니다.

 

솔직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예산이 부족해서 그 대안으로 들여온" 볼거리에 대해, 그처럼 열광을 보낼 마음이 들었을까요? 198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대륙의 그 문화 소비자들은, 제한적으로 마련된 영화 저널(당시에는 중국 아니라 어디에도, 지면 매체 외에 독자가 참여할 공간이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에 열광적으로 참여헸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기로는, 그저 감정적 호불호나 비생산적 꼬투리잡기가 아닌, 치열하고 성실한 학습자(문화 소비자라기보단 그 학구열 때문에 "학습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들이 펼치는 간접 토론(실시간 참여 매체가 발달하지 못했으니 순차적 투고 형식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죠)과 담론의 향연이, 국외자에겐 정말 대단하고 부러웠습니다. 이런 성숙한 문화는, 그들보다 앞서 PC 통신이라는 신매체가 생겼던 우리에게도, 찾아 볼 수 없던 현상입니다. 당장 이 자랑스러운 걸음마 단계가  키워낸 지식인, 문화평론가로서 이 책의 저자 류원빙이 지금 도쿄 대 학술연구원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다양한 학술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우리의 PC 통신 세대들(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 인프라)은 국내용 담론 생산 외에 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영화 분석의 패러다임으로 바쟁의 이론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이들이 당시에 접하고 향유하며 소화할 수 있는 평론이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국에서 검열과 통제를 했다기보다(그런 사정도 있겠지만) 폐쇄적이고 가난한 나라다 보니 그런 문화 이론 포맷의 선진 문물 도입도 채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여튼 저자 류원빙을 비롯, 건전한 문화적 소비 욕구에 가득차 있던 그들은,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은 양식을 열광적으로 소화하였고, 이는 대륙의 O세대 예술가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양질의 작품을 생신하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면 한국의 실정은, 21세기인 지금조차 착각과 유치한 자기애에 빠진 감독들, 그리고 예술보다는 정치투쟁의 프락치로 더 뿌듯한 자긍을 형성하는 저질 관람자들로 인해 그 내장이 곪고 있죠.

 

책은 그 서두의 추천사가 정말 좋습니다. 목포대 임춘성 교수님의 글인데, 이분이 다음에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가 보십시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본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읽으면서 정말 놀랐는데, 역자가 원 텍스트 곳곳에 각주로 삽입한 설명들은, 사실 각주가 아니라 독자적인 영화 이론 해설에 가깝습니다. 필자가 당연하다는 듯 꺼내고 적용하는 이론들은, (놀랍게도) 담론에 무지한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 맥락에 대해 감이 안 잡힐 수 있다는 배려의 산물인 것 같습니다. 1990년대 홍대 등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펼쳐지던 X 세대의 활개 중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가닥이 빚어낸 결과가, 지금 역자 홍지영 선생이 우리에게 들려 주는 이런 해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진짜, 역주만 읽어도 회고가 되고 공부가 됩니다. 대륙의 저자(현재는 일본에 기반을 잡고 있는) 류원빙에 거의 한 세대가 뒤지는(한 세대를 앞서도 뭐할 판에) 일군의 문화 평론가 중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서, 그나마 창피함이 덜해지는 느낌입니다. 어찌 보면 책의 중심 테마로 조안 첸이 잡힌 것도, 저자 류원빙이 소년 시절 열광했던 아이돌이기도 했지만, 이 저자처럼 자신의 조국과 미묘한 스탠스가 잡혀 있는 현실에서도 공통점이 서로 존재합니다. 영화 공부도 될 뿐 아니라, 지식인과 조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가능한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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