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의 힘 - 하나가 아닌 모두를 갖는 전략
데보라 슈로더-사울니어 지음, 임혜진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옛 말에,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는 게 있습니다(혹은 비슷한 말로,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손에서 놓고 만다"도 있죠). 어느 한 가지 목표를 정했으면, 가능성이 높은 것에 (속된 말로) "올인"해야 하지, "두길마보기"를 하다가는 모든 것을 다 잃는 최악의 수를 둘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래 경제학이나 경제학에서도, 한 가지 goal에 전력을 쏟다 보면 다른 부문에서 소홀해지고 마는 것, 혹은 상쇄(offset) 효과가 일어나고 마는 걸 두고 항상적(恒常的) trade-off 라는 개념 술어를 써 왔습니다.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실무를 맡은 경영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다른 걸 소홀히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 두 가지 미덕을 한 몸에 동시에 갗출 수 없다는 제약은, 인간사 어디서도 통용될 수밖에 없는 원초적 제약 사항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궁(窮)하면 통(通)한다고 했던가요? 최근 글로벌, 로컬 할 것 없이 워낙 시장 전방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다 보니, 기업가들과 그 밑의 실무가들 역시 그 두뇌의 내연 엔진에서 김이 다 날 만큼, 쓰고 쓰고 또 머리를 써서 위기와 한계 상황을 탈피하려 애씁니다. 이러다보니, 과거에 안 되었던 것이 (어느 새) 지금은 되고 있고, 과거에 철칙에 가까운 상식이던 것이 지금은 우습게 보이는 낡은 구호로 전락해 있기도 합니다. 워낙 변화가 빠르다 보니, 일일이 log를 적어 가는 일조차 무의미하며, 그저 현황의 첨단(art of the state)를 하루하루 추격하기조차 버거운 게 현실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제는, 토끼 한 마리를 쫓아서 무슨 일이 그냥 이뤄지는, 자기 맡은 소임을 다한 걸로 밖에서 쳐 주는, 그런 만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한 마리 토끼를 추격하다 보면, 그 한 마리나마 수중에 확보되는 게 아니라, 한 마리는 결국 그 한 마리대로 놓치고, 다른 녀석을 다른 기회에 다른 길로 포획할 여지도 상실하고 마는 그런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어디 가서 일 잘 한다 소리를 들으려면, 두 마리를 토끼를 동시에 몰아 나가야 합니다.

 

이는 단지 욕심에 불과한 것도, 출세욕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 슈로더사울니어 박사는, 그 자신이 뻬어난 경영 이론가일 뿐 아니라, 컨설팅 회사 대표직을 맡은 경영자이기도 합니다. 이분의 말에 따를 것 같으면,

 

어느 한 목표(A)를 추구해 가면서, 동시에 다른 목표(B)에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어야만, 원래의 목표(A)까지 완수할 수 있다.

 

한번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A는, 이번에는 반대편 추에 놓여 있던 B에까지 영향을 주어, 선순환이냐 현상 고착이냐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으로 이어지냐의 새 상황을 열게 된다.

 

즉, A가 안 되면 B도 안 되는 것이며, A가 잘 되다가도 어느 순간 B에 주의를 놓치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그나마 잘 되던 A도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이상의 이 책의 골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제한된 능력과 자원으로 어느 하나라도 확실히 잡아야지, 둘 다에 신경을 분산하는데 일이 잘 될리가 있는가? A도 잘 되는데, 동시에 B까지 잘 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말이 안 되는 듯 보이면서도, 그 속에 진짜 진리(피상적 표피적 진리가 아닌 근원적 타당성을 가진 명제입니다)를 내포하고 있는 걸 두고, 우리는 국어 시간에 패러독스(역설. 逆說)이라고 배웠습니다. 저자 슈로더사울니어 박사는, 작금의 경영은 패러독스 경영의 묘미를 깨닫는 이와, 그렇지 못하고 낙오하는 이, 둘로 갈릴 것이라고 이 책에서 말합니다. 얼핏 들어 대담하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우리가무의식 중에 은근 수긍하고 있던 진리이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or이라는 접속사는, 양가적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A와 B 사이에 배중(排中)의 원칙을 적용하여,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거면 저거지 중간 지대가 없음을 뜻하는 택일적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운 대로, 각각의 영역(차집합)과, 교집합,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합집합으로서의 or입니다. 철학 서적에서는 이를 두고 and/or이라고 표기하는 예도 아마 많이 보셨을 겁니다.

 

저자 슈로더사울니어 박사는, 이 두번째 의미의 and/or 개념을, 우리가 일상(그리고 비즈니스 영역)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에 적용시켜 나갈 것을 패기만만하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단기적 수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 성장을 바라볼 것인가. 전통적 의미에서 이 두 목표는 택일적 성격이었지, 동시에 달성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는 장기적으로도 성장을 못 합니다. 성장을 못할 회사는, 단기에마저 수익을 올릴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상식이 아니었습니까?

 

화폐금융론이나 재무 관리 시간에 배우셨을, 고수익이라는 메리트는 반드시 고위험이라는 달갑지 않은 장벽과 마주친다, 수익과 위험 회피라는 두 가지 미덕은 결코 동시에 추구되거나, 단일 벡터상에 놓일 수 없다는 명제 역시, 최근 극한의 부진과 불황을 맞고 있는 증권업계에 큰 경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궁하면 통한다고, 옹색하게 청담동, 대치동에 호화 점포만 차리고 프라이빗 뱅킹 마케팅만 할 게 아닙니다. 매력적인 상품을 꾸려 고객에 제시하여, 슈퍼 리치 노멀 리치들에게 "제발 내 돈 좀 맡아 주세요"라며 매달리게는 왜 못하겠습니까.

 

이 모든, 가망 없고 허황되어 보이는 상황들에 대해, 저자 슈로더사울니어 박사는 "당신이 눈만 크게 뜨고 마음만 긍정적으로 먹는다면, 안 될 것이 없음!'을 책 내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반론이나 대전제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실제 사례가 많다는 것도 이 책의 강점입니다. 이는 실무의 현장에서, 저자 슈로더사울니어 박사 자신이 다양한 처지에 있는 기업들과 호흡을 같이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인합니다. 아마 실무종사자들, 그리고 당장 운영의 한계점에서 묘수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이 책은 아마 좋은 영감과 활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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