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그래픽 한국경제 100
황인학 지음 /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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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문 기사 하나를 봐도 줄글로만 이뤄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종전에는 일반인이 보기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선명하고 단순한 일러스트를 삽입하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인포그래픽 형식을 도입해서, 내용의 접근성과 정보 파악의 정확성을 동시에 기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어떤 일이건 하나의 미덕이 달성되면 다른 좋았던 점이 희생되곤 하는 trade-off 관계가 있기 마련인데, 의사와 소통의 효율을 기하기 위한 기술적 발전 과정에선 그런 마뜩지 않은 상식도 통하지 않나 봅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 책의 처음에는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표제가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우리만의 자기도취성 구호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우리를 보곤 하는 시각, 혹은 stereotype성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그런데, "산업화"라는 표현은 곧잘 쓰곤 해도, "경제화"란 표현을 이 경우에 쓰는 게 과연 정확한 지는 좀 의문입니다. 보통 "경제화"라고 하면, 뭘 절약하거나 합리적으로 쓴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이 과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잘 이루어 내었는지는, 정작 내부 당사자인 우리 시각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의구심이 일기도 합니다. 산업화에 관해서라면, 이 책 속에서 누누이 지적되는 것처럼 우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둔한 성장률의 덫에 빠진 "조로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민주화 역시 그 훌륭한 성과가 왜곡되거나 반대로 악용되는 모습이 특히 근래에 아주 빈번히 노출되어, 국민적 피로감을 자아내기 때문이죠. 이런 관점에서, 이런 책이 깔끔한 편집으로, 또 매우 선명한 정보를 담고 지금 이 시점에 출판된 건, 시의적절하다기보다는 왠지 지나간 시대의 영화(榮華)를 씁쓸한 마음으로 회고하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요.

 

이 책은 다양한 출처로부터, 인포그래픽의 기본 바탕이 될 통계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큼직큼직한 통계는 세부 사항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일 뿐, 인포그래픽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대동소이한 게 보통이죠. "수출의 날"로 정해서 꼬박꼬박 개발 독재 시기에 기념하던 건 어느 새 "무역의 날"로 그 이름이 바뀌어서, 인풋과 아웃풋을 구별하지 않고 총량적 개념으로 계량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교류하는 상대로부터 무조건 뭘 남기고 봐야지."하는 미성숙하고 조급한 입장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현황을 뵬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입니다. 또한, 상대의 아량과 후견을 기대하는 개발 도상국의 위치에서, 보다 종합적인 변수를 고려에 넣어야 하는 선진국(음...)의 위상으로 바뀌었다는(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시그널이기도 하겠습니다.

 

28페이지에 보면 제목이 <경제성장과 함께 꾸준히 증가하는 일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론상의 당위로는, 경제성장과 함께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층이 거의 습관적으로 아우성치듯(혹은 직장에서 밀려난 장년층이 푸념 이상의 절박함으로 외치듯) 피부에 와 닿는 일자리 사정이란 결코 호조건이 아닙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주위로부터 타박깨나 받을 것입니다). 그래픽에서 보듯, 성장률은 들쭉날쭉한 모습 가운데 추세적 하락을 그리고 있으며, 바탕에 보이(히스토그램)는 일자리 수치는 상대적 인덱스가 아닌 절대치입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여튼 경제활동인구(곧 고용인구) 역시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는 점에서, 이 그래픽은 사실 해석과 시의적절성 모두를 갖춘 모범은 아닙니다. 출처는 세계은행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정도 자료는 국내의 정부, 민간 어느 기관에서나 다 가지고 있죠(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일지언정). 굳이 그곳 통계를 가져 온 건, 아마 더 높은 객관성의 확보(라기보다 상징적 시전?)가 그 의도였을 텝니다.

 

그 맞은편 페이지에 보면 "더 고도화되는 산업 구조"라는 제목으로 물경 80퍼센트에 이르는 3차 산업 종사자의 비율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마냥 반길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자유당 시절부터 비정상적으로 3차 산업 종사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는데(묘하게도 이 파트는, 시계열적 추이가 빠진 채 현황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한국전 직후 농토가 파괴되고, 젊은 층이 상경이라도 해서 취업을 할 직장(그저 공장이든, 아니면 사무직이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 역시 농업의 실태는 원가도 안 빠진다는 아우성이며, 버젓한 기업의 꼴을 갖춘 일자리는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오늘도 여러 경제지에서는, 미용실, 당구장, PC방 등 거의 모든 "만만한" 자영업이, "누가 먼저 망하는지 버티는 게임"이 되어 버린, 극도의 위기에 처한 현실을 르포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의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예쁜 인포그래픽이라는 화장대 거울 앞에서 나르시스적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60페이지를 보면 <세계 경제 성장 평균을 밑도는 한국 경제>라는 題下에, 심각한 기로에 선 우리 소규모 개방 경제의 실태를, 그리 복잡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포맷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계 평균과 비교해서뿐 아니라(이 수치는 가장 다이내믹한 성장세를 보이는 개도국 포함이니 당연 불리할 수밖에 없죠), OECD 평균과 비교해서도 그리 좋지 못한 형편입니다. 묘하게도^^ 이 자료의 출처는 굳이 IMF로 삼고 있습니다. 다분히 상징적이라고나 할까요?

 

78페이지에 보면 그나마 희망적인 것이, 기업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선입견으로 미국이니 프랑스니라면 마냥 연구개발에 목돈을 들어 부을 것만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건데요. 다만 총액이 아닌 상대 비율이란 점(R&D는 10원에서 9원 투자보다. 1억에서 천원 투자가 더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중국, 일본에 근소하게 앞설 뿐이라는 점 등이 통계의 맹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파트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의원입법의 범람(책 자체 표현입니다)을 문제점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종래 우리가 "국회의원들 일 안 하고 노는" 대표적인 증거로 정부 발의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의원입법 발의 비율을 들었기 때문이죠. 각종 옵저버와 모니터링이 단순 발의 수치만을 기준으로 삼자, 이번에는 그저 묻지마 식으로 쪽수만 채우고 보는 무성의하고 즉흥적인 의원 입법 시도가 또 문제 되는 모습인데, 참 의원 자질 향상이 이처럼이나 어렵다는 게 너무도 한심한 현실입니다. 책은 의원입법의 경우 "구제영향 평가"를 거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들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마냥 기업의 영향 하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로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건 획일적 시스템 개선으로 될 일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각성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또한 "제도경쟁력"의 열악함을, 기업가 정신의 약화 등 여러 악영향을 낳는 주범으로 꼽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정량적 평가가 용이하지만은 않은 부분입니다만, 우리는 워낙 정성 정량 모든 영역에서 미진하니, 결론 도출이 어렵지가 않습니다. 다만 대체 어느 선진국 사례를 두고 우리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지 그 컨센서스 도출이 어려울 뿐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해가 갈수록 감소한다는 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경제력 집중의 완화에서 비롯했다기보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워낙 실적이 안 좋다 보니 나온 결과라고 생각되네요. 오히려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이 책 다른 파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낙수 효과라도 맛보기 위해) 대기업이라도 월등한 이익률을 올려야 하는 게 그나마 안도가 될 텐데(낙수효과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고라도)... 과연 지금처럼 열악한 중소기업의 형편에 대기업의 그것이 "수렴"하는 모습이, 아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는 징조로군 하며 안심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입니다. 현기차 1차 협력 업체의 사정 개선 역시 과연 유리한 지표로 마음 놓고 쓰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뚜렷한 근거 없는 반기업적 국민 정서 역시, 개선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서"를 탓하기 전에, 기업부터가 준법 경영을 해야 합니다. 윤리(그 개념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막연하죠)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실정법이나 잘 지켜만 주고, 그에 앞서 혁신과 경영 합리화만 이뤄 줘도, 특별한 경향성 있는 이들 아닌 일반 국민의 이미지는 크게 좋아집니다. 우리 국민은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꿀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이들이지, 어떤 이념을 머리에 넣고 사는 완고한 이들이 아닙니다(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뿐).

 

책의 그래픽은 깔끔하고 편의성을 크게 도모했지만, 다룬 자료들과 그 구성 방식이 일차원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인포그래픽의 효용은 일반인들이 엑셀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고, 웹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이상의 복합적인 것이라야 하는데, 유의미한 가공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정확하고 콤팩트한 건 좋지만, 통계의 구현에 그래픽적 숙려랄까 심도 있는 메시지 전달이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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