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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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대중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20세기 초엽만 해도 세상은 귀족, 상류층, 자산가 계층의 호흡과 관심사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문인들, 그리고 고급 기예를 몸에 익힌 예술인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대중 사회에서 연예인들이 누리던 위치를 대신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세의 여성 편력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눈에 띄게 드러나지만 않을 뿐 자의식 강한 문인들이 한 반려자를 그리 오래 곁에 두지 않는 경향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특히 달라진 게 아닙니다. 이는 바람기라든가, 성실성의 결핍 등과는 또 다른 정신적 특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헤세는 "배고픈 시기를 오래 거친 후" 비로소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 일찌감치, 스타 연예인처럼 문단과 독서인의 주목을 끈, 젊은 나이(20대 중반)에 데뷔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를 괴롭힌 건 물질적 곤궁이 아니라, 내면에서 휘몰아치던 격정과 불안, 균형의 파괴 같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가 언제나 갈구했던 건, 따라서 (이 책에도 잘 나와 있듯) 아늑한 자궁과도 같은 여인의 진정어린 배려였습니다. 또한, 문인의 숙명으로 타고 난 노스탤지어의 추구를 도와 줄 영감의 제공이었습니다. 우리 평범한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소명이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외피를 하고 태어난 이상 그 성취는 영원히 불가능할 이같은 미션을 그는 영혼 한켠에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닐 수밖에 없었던 듯합니다., 따라서 그는 요즘 용어로는 "리셋 증후군" 같은 고약한 근성을, 스스로 지녔던 도덕 관념(그가 적잖게 의존했던 프로이트식 프레임으로는 "슈퍼에고"라 할 만한)이 지독히도 혐오했을 만큼, 자신의 연약하고 선병질적인(막내 동생 뿐 아니라 이런 성향은 그 자신 역시 부친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 받았습니다) 정신의 한 특성으로 내내 유지했던 것이겠습니다.

 

연예인이라면 우리 평범한 대중의 시선 앞에 무시로 노출되는 게 그들의 비즈니스입니다. 따라서 세련된 행동과 외양의 꾸밈에 그들은 자신의 모든 자원을 투입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 헤세 같은 문인의 경우(연주자나 작곡가, 화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부르주아지가 몸소 나서지 못하는 영적 여행의 대행을 그들 셀러브리티는 제 일생을 걸고 해 내어야만 했겠죠. 특히 헤세처럼 가풍 자체에서 유래한 고립자적 기질을 물려 받은 이는, 행동거지나 말투, 처신의 면에서 "은둔자적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누구의 눈에도 뚜렷해 보였겠습니다. 오늘날의 연예인과는 이 점에서, 외견상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특징을 가졌다고도 하겠습니다.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성공적인 데뷔를 이룬 그 가능성과, 샘솟듯 표현되는 영감과 상상력을 지녔던 청년은, 그 쟁쟁한 베르누이 가문 안에서, 아마도 "재능 콤플렉스"에 내내 시달렸을 만한 여성, 더군다나 전성기를 막 지나려고 하는 노처녀에게 큰 매력을 지닌 남성으로 느껴졌을 만합니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나 신분적 우월감이 아니었다 해도, 베르누이 씨는 이 괴퍅하고 매력 없는 외모를 한 청년을 제 가문의 일원으로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만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그 정신적 지향이 각각 향하던 "과학과 종교 사이의 심연"을 극복하기 난감해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여성으로부터 필요한 자양분만 취하고 냉혹하게 버리기를 반복한 이기적인 남성상은, 우리가 위인이라고 본 여러 서양인들에게서 아주 드물게 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중에는, 극단적 페미니스트 관점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빚어진 터무니없는 사실 왜곡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부인 밀레바를 이용만 하고 그녀 곁을 떠난 아인슈타인" 같은, 논거와 개연성을 결여한 "악의적 신화"가 그것입니다. 비단 비뚤어진 세계관을 지닌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잘난 수컷"을 애써 폄하하려 하는 일부 낙오자형 남성 사이에서도 이는 인기 있는 레퍼토리이자 과장된 피해의식, 공정하지 못한 비열하고 미숙한 이중잣대입니다. 둘 다 겉으로야 비슷한 품의 "성장 거부 몸짓"으로 보이지만, 헤세의 경우와는 달리 후자의 경우 자기 합리화와 타자에 대한강박적 폄하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과 극의 대조를 보입니다.

 

이기심과 약탈자적 근성이기는커녕, 헤세가 남긴 흔적을 보면 오히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질곡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도 있습니다. 아무리 이질적인 배경을 지녔다고 는 하나, 그 역시 게르만 족속의 일원이었기에, 특히 니논 돌빈과의 관계는 일종의 대속자적 행로라는 느낌마저 줍니다. 단 한 명의 여인마저 넉넉히 곁에 둘 능력이 없는 이들의 눈에 엽색 행각으로 비칠 수 있는 이 같은 그의 갈짓자 걸음은, 알고 보면 그러나 제 영혼의 순수성을 지키고 사명감을 고결한 형태로 간직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셈입니다.

 

어리석은 속물주의를 끊임 없이 경계하고 경멸하는 그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세계를 바꿔 보려고 애쓰던 그 미친 광대 같은 독재자들이 급작스럽게 몰락한 후, 이제 대중은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다." 파시즘의 특성은 대중의 광기를 기반으로 탄생하고, 그 대중이 광기를 각성한 후 포말처럼 사라지는 게 있음을 그는 간파했던 것입니다. 그가 개탄했던 건 차라리 "두루미의 도래를 갈구했던 개구리떼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히틀러가 한 줌의 재로 화하고 무솔리니가 제 정부들과 창틀에 거꾸로 매달려 치욕스러운 죽음을 한 후, 어제 그에게 열광을 보냈던 대중은 오늘 격렬한 책임전가로 여념이 없거나, 파렴치한 무관심을 가장합니다. 무고한 희생자들만 여전한 궁지에 몰려 있을 뿐.

 

헤세에게 있어 여성은 "재생"의 원천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감당할 수 없었던 건 영혼의 타락이었습니다. 게르만인이었음에도 그의 정신 깊은 곳에서는 라틴적, 가톨릭적 "성모 마리아"를 간절히, 끊임 없이 원했으며,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이런 그의 자아 한 면을 선명히 대변하는 아바타였습니다. 그는 타락한 대중으로부터의 오염이라는 공포에 일생 내내 시달렸고, 그가 이를 피해 "은둔"하려 했던 곳은 어머니의 자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 나름으로 수행했던 "사랑"이요 일반인의 눈으로 기이하게 보였던 "애정 편력"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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