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공격헬기 AH-64 Apache 밀리터리 하이테크 3
쓰보타 아쓰시 지음, 권재상 옮김 / 북스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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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맹수에 비해 연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고(방어에 취약), 달리는 속도가 느리며(효과적인 도주 능력이 떨어짐), 비록 같은 종(種)인 사람을 때때로 죽일 수도 있다고는 하나 맨손으로 가하는 타격의 힘이 강하지 못합니다(보잘것없는 공격력). 그런데 이 모든 선천적인 약점을, 가공할 만한 병기(兵機)를 만들어 보완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병기 또한, 다른 종(種)의 동물에 넘어가거나, 혼자 놓였을 경우 아무 쓸모 없는 고철덩어리 이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의 손에 들어 왔을 경우에만 위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서도, 대단히 특이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집념이 비행기라는 도구를 탄생시켰지만, 이 이기(利器)는 초기에 여객 운송의 수단보다 전쟁의 도구로 더 활발히 이용되었습니다. 2 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투기는 정말 짧은 시간 안에, 가공할 성능을 지닌, 전쟁의 대세를 좌우하는 결정적 자원으로 활용되었죠. 일제가 강점기 말 한민족을 수탈하면서 재력가들에게는 "비행기 헌납"을 강요했고, 징용으로 잡아 간 인력은 활주로 공사장에  투입하곤 했던 사실을 보아도 간 접적으로 이 병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이 독일에게 정복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소위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 괴링의 나치 공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공권을 빼앗긴 그 어느 나라의 군대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종래의 전투기(지금도 해리어 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마찬가지지만)가 안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활주로가 없으면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육상이나 해상이 아닌 소규모 공중 운송의 경우 굳이 번거로운 이착륙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고 간이한 과정만을 거칠 필요가 있는데, 이 사항을 기존의 비행기들은 만족시킬 수 없었지요. 과연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로터(rotor)의 추력(推力)을 통해 하늘을 나는 원리의, 새로운, 어쩌면 더 혁신적인, 발명품이 출현하여, 이 니즈를 빨리도 만족시키고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헬리콥터입니다.


그렇다곤 하나 오랜 시간 동안 헬기는 그저 헬기였을 뿐입니다. 기름을 덜 먹는다고는 하나 속도도 느리고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지상으로부터의 공격에 더 큰 취약점을 드러내는 게 보통이었죠. 헬기는 헬기로서 만족해야 할 뿐, 너무 큰 기대는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탄생한 이  헬기의 혁신을 바라는 군사 당국자나 기술진의 열망 역시 정체되어 있지만은 않았지요. 그저 탑승자가 수동으로 쏘아 대는 기총 소사 같은 것 말고도, 기체와 일체가 된 공격력의 증강, 혹은 360도 회전 따위를 실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강의 공격 헬기"라고 다소 심심한 제목이 붙어 있을 뿐이지만, 이 AH-64는 그간 헬기에 대해 기술진이 품어 오던 모든 희망사항, 거의 꿈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았던 요구를 대부분 충족시켜 주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자 꿈의 병기라고 할 만합니다. AH-64에 대해, 책에서 이를 두고 붙인 이름은 "하늘을 나는 탱크"입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AH-64가 행하는 주 기능이 공격 용도임을 잘 드러냅니다. 처칠은 대전 당시에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더도 덜도 아닌 탱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탱크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탱크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를 쏘아대기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적의 공격에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이 있어야 합니다. 이 AH-64를 두고 "하늘을 나는 탱크"라고 부름은, 지상군으로부터의 반격(때로는 공중전)에 그만큼 강한 방어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몸체를 튼튼히 만들려면, 당연히 그 중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거워진 무게를 버텨 내려면, 일단은 엔진의 힘이 강해야 하며, 설계 구조면에서의 극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간 기술적 장벽이 거대하게도 자리했던 영역으로 평가 받았지만, AH-64는 그 모든 애로를 효과적으로 극복한, 거의 기적이라 할 만한 개선과 혁신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중량 증가는 단지 튼튼한 기체 구축 때문에 초래된 것은 아닙니다. AH-64는 마치 전폭기처럼, 기체와 폭격 장치가 일체화된, 종래의 범용(유틸리티)이 아닌 공격 전용 무기입니다. 공격에 특화된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종래의 헐렁한 녀석들과는 달리 몸이 엄청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엔진의 우수성은 이 점에서도 특별히 요구되는 사양이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병기는 미국에서 개발되었고, 군수 산업의 구조가 언제나 그렇지만 투자의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자국 국방부에 납품하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군사 무기를 애국심에만 의존해서 개발, 양산을 기대한다면,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어느새 군비 경쟁에서 타의 추월을 허용하고 말 것입니다. 미국 시스템의 무서운 점은, 엄청난 이윤을 노리고 민간에서 첨단 무기의 제작을 주도하는 구조라는 사실이죠. 다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는 것이, 이윤을 노리고 무기를 여기 저기 팔다 보니, 미국이 전혀 선호하지 않는 국가 혹은 세력의 수중에, 가공할 화력의 무기가 넘어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테러리스트들이 어디서 그처럼 성능 좋은 무기를 얻어 펑펑 써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구조의 취약한 점에 대해 실감이 납니다. AH-64야 물론 총기류 따위와 달리 함부로 거래가 가능하지도 않고 일단 어렵게 손에 넣은 축이 함부로 남에게 넘기지도 않을 것이며, 리버스 엔지니어링 따위가 결코, 결코, 용의하지도 않겠습니다만. 여튼 이런 헬기가 굳이 개발될 필요를 부를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참 미련한 악순환의 한 고리가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다만 엔진의 우수성 기여도에 대해서는, 이를 수입한 각국마다 입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특히 네덜란드)과 일본의 경우, MD의 엔 진을 쓰지 않고, 자국의 고유 부품으로 대체한다고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재미있게도, 대신 장착한 그 엔진 역시 독자 개발이 아니라 또다른 당사자에 라이센스료를 주는 방식입니다. 아무튼 이는 아마도 수입국 측에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엔진 파트에만은 fee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혹은 줄이기 위해) 지국이 보유한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해서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보았습니다(책에 분명한 경위 설명이 없으므로). 그러고도 원활한 운용이 가능한 건, 이 AH-64의 성능 혁신이 엔진 개선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확증이 될 수 있습니다. 군사 무기를 각국의 실정에 맞게 "자기 버전"으로 수입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구조 면에서도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종석이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동차건 비행기건 배건, 조종사는 내부의 가장 앞 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선입견, 통념을 깨뜨린, 대표적인 역발상의 예라고 하겠습니다. 시야가 보다 넓게 확보되는 등 이런 개선이 부른 구체적인 장점들은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AH-64의 예는 아니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헬기의 설명 파트에서, 적의 시야에 최대한 느리게 나타나기 위해(눈에 띄지 않기 위해) 탠덤식 구조가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비단 군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경영 혁신 전반에 걸쳐 여러 시사점을 던져 주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하겠습니다.


AH- 64에 달려 있는 성능 좋은 레이더는, 지상의 적군 배치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탑승한 조종사와 전투 요원에게 알려 줄 뿐 아니라, 전술 전반을 결정할 멀리 떨어진 지휘부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정보(의 일부)를 전달해 줍니다. 정찰기의 임무와 겹치지도 않습니다. 헬기는 군 편제상 육군 소속이므로, 이러한 기능은 기존의 커버 범위와 겹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백 영역을 메꾸어 주는 역할입니다.


오래 전 영화(예컨대 로이 사이더 주연의 <블루 썬더>)에 보면, 360 도 회전을 묘사하면서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기적"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런 가공할 무기가 더 이상 세계의 평화를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철로에 세워 두고 파괴해 버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360도 회전은 그만큼 종래 상상이 어려웠던 고난도 기술의 구현입니다. 그 외, 이 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특장점 중 하나는 호버링 상태에서 벌일 수 있는 여러 빼어난 성능들입니다. 호버링은 이 책에서 "공중정지"로 번역되어 있지만, 공중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뚜렷한 전진 후진 없이 일대를 배회하는 걸 말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나오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하는 그 "운행"입니다.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재미있는(이라기보다 유익한) 정보도 많습니다. 일본 자위대는 이 AH-64D를 일반 대중에 정기적으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사항이라 국민의 감시와 관심에 노출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원칙의 결과라고 하네요. 우리야 이런 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지만(아직은요), 만약 보여 달라고 하는 일반인이 있을 경우 군 당국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그들의 실정에 대해 확실히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책에는 이 무기를 수입한 나라 중 이스라엘이,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군사기밀이므로 당연합니다만, 이 책의 저술 시점이 아니라 지금에서는, AH-64D에 관심이 없던 대중도, CNN 기자가 매일 같이 읊어 대는 뉴스 때문에라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의 AH-64는. 지금 가자 지구를 쓸어 대는 일에 열심히 그 성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테러리스트의 경우 레이더에 감지되는 성격이 아니므로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이 AH-64의 성능이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적고 있는데, 하마스는 주로 대공포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패턴이므로(하마스를 두고 테러리스트라 매도하는 건 아닙니다) 이 AH-64는 나름 톡톡히 제 할 일(...)을 하는 중인가 봅니다. 다시 1차 대전 당시의 여러 전황을 살펴 보게 되기도 하고, 영화 <블루 썬더>의 엔딩을 곱씹게도 하는, 마음이 착잡한 뉴스, 요즘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팔 간의 공방은 50일을 넘김으로써 최근 기준으로 최장 기록을 세우는 중이라는군요. 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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