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 세계를 뒤흔든 교황, 그 뜨거운 가슴의 비밀
김은식 지음, 이윤엽 그림 / 이상한도서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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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이지만, 저는 "와(et)"라는 접속사 대신에, "대(對, vs)"를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이탈리아의 오래 전 성인(聖人)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바로 며칠 뒤면 한국을 찾을 현 교황 사이에는 닮은 점도 물론 많지만, 이 책을 읽고 새삼 떠올리게 된 건 "두 분이, 서로 떨어진 세월만큼이나 이처럼 차이가 많았었구나." 하는 점이었네요.


저자는 김은식 씨입니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 란 책 읽어 보신 분들 많이 계시죠? 호남이 소외되고 극심한 상처와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그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던 두 아이콘에 대해, 아주 솔직하고 쉬운 회고를 털어 놓았던 바로 그 책. 저자는 이 신작에서도, 서로 무척이나 닮은 행보와 개성을 지닌 두 분에 대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고,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그러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은 냉철한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술회와 짧은 감상으로 시작합니다. 교황하고 세월호가 서로 무슨 관계인가 하시는 분도 있겠죠?, 이 교황은 시칠리아 람페두사에서 벌어진 난민선 침몰 참사에 대해 강력하게 주의를 환기한 바 있습니다. 연 대의 가치, 박애의 신념이 서서히, 우려스러운 속도로 퇴색, 퇴조하고 있는 이 때, 교황은 "가장 소외되고 가장 무관심하게 버려진 이웃들에 대해 관심을 쏟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가장 수치스러운 현실임"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9백 년 전 아시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역시, 말 못 하는 동물들, 가난하고 버림 받았으며 멸시와 천대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몸소 실천에 나섰던 위인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처음 안 사실인데, 그는 말 솜씨만큼은 어눌한 편이었다고 하는군요. 그가 설교에 나설 때에도, 사용하는 표현은 그리 현란하거나 다채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문의 반복, 평범한 진리에 대한 강조, 그 이상의 레토릭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모여 드는 군중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그는 권력층과 부자들의 견제와 질시를 언제나 받았고, 심지어 같은 가톨릭 교단 안에서도 이단이란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사람이지만, 민중과 빈민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참된 가르침을 설파하는 성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말보다 앞선 실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실증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그는 즉위 초에 "1세"라고 덧붙이지 말라는 당부를 따로 했습니다) 역시, 진보적 성향에다, 현란한 말이 아닌 실천의 가치를 중시하는 분입니다. 서민 출신답게 전철 등의 교통 수단을 애용하는 분이었고, 즉위를 축하하러 온 군중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아는, 권위의식이라곤 전혀 몸에 지니지 않은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꺼이 빈민들 틈으로 파고 들어 자신의 가진 것을 다 나눠 주고, 심지어 끔찍한 병을 앓고 있는 나병 환자들에게까지 입맞춤과 광범위한 신체 접촉을 허용한 그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점과 매우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근래 보였던 행적 중 크게 아쉬웠던 것은, 동성애에 대해 강력한 반대 교의를 고수하면서도, 아동 성추행 등 비리를 저지른 성직자들의 처벌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미온적이었을까 하는 사실입니다. 현 교황이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어떤 강력한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도 지적하는 바처럼,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의 해임 단행에서 알 수 있듯, 종래 가톨릭의 주류를 형성했던 보수파 인사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태도로 나갈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그저 보혁 간 정치 투쟁 정도의 인상을 주지 않고, 교회의 근본적 쇄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아동 성추행 사건 같은 지독히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어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분은 이미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 원수 지위로서, 특별 형법의 마련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이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모시는 분 중에는, 특별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방탕한 생활로 청 춘을 허비하다가, 어느 순간 회심하여 신앙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몇 있죠.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러했고, 바로 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러했습니다. 앞서 제가 "두 프란치스코"가 서로 다르다고 한 건, 바로 이런 점에서입니다.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베르골료)는 서민 집안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바르고 모범적인 처신으로 유명한 아이였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코 성인은,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난 청년이었고, 환경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다소 껄렁한 행각으로 젊은 시절을 낭비한 케이스였죠. 이러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안 찾던 예수 타령을 하니 아버지가 기겁을 할 밖에요. 매섭게 다그치는 아버지에게, 청년은 먼저 절연을 선언하며, "당신께 받은 것을 다 돌려 드리겠습니다."며 알몸으로 등을 돌립니다. 주교는 이 청년에게 옷 한 벌을 내어주는데, 그게 바로 수도 생활의 거룩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현 교황은,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로 상징되는 번잡한 겉치장, 즉 권위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그 성인과 닮아 있습니다. 현 교황이 책임지고 처결하여 시성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즉위 초기부터 이처럼 큰 기대를 모으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낮고 폄범한 출신이었고, 그 초심을 잊지 않아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하는 이 대성적자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건강하고 청렴한 교회를 세우는 데에 큰 공적을 남기실 것 같아요.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이윤엽 님의 판화 작품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이 책의 가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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