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
박동규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육신을 준 분일 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어느 역경과 시련, 유혹으로부터도 타락이나 훼손을 겪지 않게 지켜 주는 양분과 보호막을 제공해 주는 원천입니다. 이로부터 형제애, 동료애, 우정이 나오고, 마침내 보편적 인류애로까지 정신이 성숙하는 것이겠습니다.


박동규 교수님은 개인의 학문적 성취, 문학적 품격을 떠나서도, 참 푸근하고 자애로운 인격을 지닌 분이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시인의 삶은 배고프고 내일에의 보장이 없는 위태로운 발걸음입니다. 그러나 박목월 선생은, 넉넉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애정과 진실, 굽히지 않는 지조라는 미덕을 자녀들에게 심어 넣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인 목월이 남긴 그 불후의 명시들보다 더 갚진 작품은, 바로 그의 자제분들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아름답고 포근한 가정사의 살아 있는 예를 통해 우리 대중에게 전해 주시는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 책은 교수님의 전작(이라고 하지만 바로 직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보다 이 책이 더 오래 전에 초판이 나왔더군요.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같은 제목의 책의 개정판입니다)에 비해, 아버지 외의 가족, 어머니, 형제분들, 할머니 등에 대한 추억이 더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가 대학 진학 직전의 사연에 더 치중했다면, 이 책은 그 이후의 "속편"이 더 풍성히 실려 있습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를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으신 분이라면, 이 책도 꼭 한번 같이 읽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우리들은, 과연 가사일과 농사일에 시달리느라 나무토막처럼 변해버린 어머니, 할머니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있을까요? 요즘이야 할머니들께서도 얼마나 멋을 내고 젊게 꾸미고 다니십니까. 풍요해질대로 풍요해진 요즘 세상에서, 이 역시 지나간 시대의 안타까운 회고에 불과한 지도 모릅니다. 교수님이 갓 대학에 입학하셔서 서울대학교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실 무렵, 아직 동생들이 채 어릴 시점에 조모님과 함께 살게 되셨다고 합니다. 효자이신 박목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문득 손을 만져 보니, 마디가 잡히지 않고 온기도 없는 나무토막 같았다는 겁니다. 문제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자리에서 박 교수님이 이 말을 입밖에 내어 표현했다는 거죠. 교수님은 즉시 잘못을깨닫고 부모님께 사죄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모친의 손을 잡아 보니, 그때 할머니의 손과 거의 똑같이, 마디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 예전 할머님이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애고, 내가 방금 이 참외를 괜히 베어 먹었네. 이걸 팔아 너희들 학비에 보태야 하는데.." 한국인이라면 이 일화들이 남의 말 같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L모 대기업 가문에서 상사 부조금의 분배를 두고 형제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여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돈 앞에서 형제도 부모도 없이 추악한 싸움을 벌이는 게 요즘의 세태입니다. 박 교수님은 자신의 친척 중에, 그야말로 "흥부네"라 불릴 만큼 자녀가 많고, 그 빈한한 삶 속에서도 결코 형제 사이의 우애를 잃지 않은 어느 일가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몇 십 리 바깥까지 모든 형제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서, 기어이 형제의 잃은 소를 찾아 주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흥부는 못된 형을 두기라도 했지만, 이들 형제들에게는 놀부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게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얼마 전 저는 어느 아파트 단지(강남 한복판입니다)에서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이런저런 곤충을 잡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울 시내에 곤충이 있어 봐야 몇 마리나 있겠으며, 그 종류 또한 얼마나 빈약하겠습니까만, 그런 드문 모습을 도심에서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했어요. 박 교수님은 어려서 메뚜기를 잡으러 다닌 이야기를, 이 책에서 재미나게 풀어 놓으십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아버지가 아버지스럽고, 어머니가 본연의 모정을 잔뜩 간직한 곳, 그곳이 바로 전원입니다. 여기에서 아이들도 본연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바르고 착한 모범 시민, 공동체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순간도 잊지 않아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영혼의 본원적 고장,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감화력과 치유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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