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언론이 침묵하면 돌들이 입을 열어 소리칠 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본디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故 리영희 선생의 인용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합동통신, 조선일보에서 기자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를 다진 분이었으며, 그가 한양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강좌를 담당하며 교편을 잡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입니다. 선생은 거의 전 생애를 바쳐 "제 할 말을 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이 사회의 공기요 소금 같은 존재라는 진리를, 글과 행동을 통해 한국인에게 확신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인지, 한국의 언론은 과거 군사정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를 찾은 편입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 최소한, 작금 일본의 형편보다는 나은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그 점을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언론은 사실 권력의 탄압 때문에 할 말을 못하던 우리의 과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언론과 권력(주로 관료 세력과 보수 정치인) 사이의 자발적인 유착으로, 진실을 가공하거나 은폐하는 경향입니다. 권-언 유착이란 말은 과거 우리 나라에도 있었지만, 주로 사주(社主)와 권력자 사이의 음험한 야합이었을 뿐, 일선의 기자들은 맹렬한 저항정신으로 이를 막았죠. 일본의 상황은 이와는 크게 다릅니다.

이러한 일본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고,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며, 자신의 조국 앞날을 진정어린 애국심으로 염려하는 저자는, 동경대 법학부 출신(졸업은 못하셨다고 하네요)으로, 외교관의 길에 일찍 투신하여, 駐 이란 대사까지 지낸 마고사키[孫岐]우케루[享]씨입니다. 이 책은 그를 정치외교 전문가, 비판적 진보 지성 등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과 달리 화려한 공적 커리어를 지닌 인사를 준 귀족으로 취급하는 일본에서는 그 관록이 일반에 주는 무게감이 다릅니다. 일본은 원래 진보적 지식인이 많이 배출되는 나라입니다. 한국의 한겨레신문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이들도 많고,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맑스레닌주의에 투신한 이, 식민지 한국의 처지에 깊은 공감을 갖고 해방 투쟁을 도운 이들도 많습니다. 그저 진보 인사라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커리어나 학벌 상 주류 중 주류에 속하는 이런 분이 몸소 행하는 비판이라면, 일본에서는 그 무게가 다릅니다.

어제 이한(離韓)한 시진핑 국가 주석도 그런 입장을 표명했지만, 최근 들어 일본의 우경화는 주변국의 우려를 크게 부를 만큼 심각하고 치밀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죠. 저자 마고사키 씨는, 이런 아베 행정부의 노선이 사실은 미 네오콘의 사주, 최소한 부추김을 받아 일어나고 있는, 종속변수적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에서 보는 프레임과는 사뭇 다른 태도입니다. 일본은 최근 중국의 위협적 확장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더 이상 비무장 노선을 고수하다간(언제 그런 적이 있지도 않았습니다만) 국가 안보를 장담할 수 없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통국가화"를 추진하며, 미국 역시 더 이상 말릴 힘이 없어 이를 방관한다는 정도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2008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민주당 정권)의 노선과 자민당이 알력을 빚는 듯한 겉모습은 사태의 핵심이 아니며, 중국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강대국 레벨에서 탈락시키려는 네오콘의 원모(遠謨)에 아베가 꼭두각시로 놀아나고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는 이런 전제를 깔고 책의 1장에서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필요 이상으로 참여 강박 증세를 보이는 아베 정권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오키나와는 과거 류큐라는 독자적 실체를 지닌 지역 왕국이었습니다. 사실 덕천 막부도 강력한 봉건적 권위로 열도를 다스렸을 뿐, 본토 역시 중앙집권적 체제로 통일된 상태는 아니었죠.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강력한 근대 국가 외형을 갖추려는 양번(兩藩) 실세들의 기도에 따라, 강제로 일본에 편입되었을 뿐입니다. 저자는 근래 들어 미군 기지 문제와 함께 현지에서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자치운동을 분석하면서, 강압적으로 형성된 억지 대세가 어떻게 현지인들의 이해와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실로 파격적입니다. 요약하면, "오키나와도 주권을 회복해야 하며,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는 기형적 국가인 일본 역시 참된 의미에서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3부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아베 정권의 본질을 파헤치며, 그 허상을 맹공하고 있습니다. 3개의 화살인 금융, 재정, 성장 정책 모두가, 치밀한 전략이나 비전을 뒷받침하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아베 정권이 이처럼 빈약한 정신적 기반밖에 못 갖춘 이유는, 미국 안에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대표되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처롭게도 "재팬 핸들러"로 불리는 네오콘만 해바라기하는 그 편향되고 근시안적인 자세에 이유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장에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어리석은 정치 쇼로,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고 미국 비둘기파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4부에서 그는 외교관답게, 대체 이 미묘하고 인화성 강한 센카쿠(다오위다오) 열도 문제가  1970년대 중일 수교 당시에는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지를 짚고 있습니다. 해답은 "일단 현안에 대한 일도양단식 판단을 삼가고, 현상 유지와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이미 대만과 일본 사이에서 그 의미심장한 첫걸음이 내디뎌졌는데, 중국과의 사이에서 유사한 해법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입니다.

5부에서는 이 책의 결론으로, 대중과 국민에 대해 진실을 알리고 건강한 해법을 찾기 보다, 밀실에서 결정난 가공되고 왜곡된 오피셜 스토리만 전파하려 드는 언론의 행태를 집중 비판합니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미국산 요격 미사일의 진짜 성능,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부상(浮上)한 스타 정치인의 자질 등에 대해, 대중 스스로가 "과연 진실일까?"를 끊임 없이 자문해 봐야 한다는 충고를 합니다. 그는 다소 감상적인 태도로, 이란 대사로 재직할 당시 현지에서 접했던 어느 동화를 인용하며,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홀로 노를 외치는 이의 고독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합니다. 진실이야말로 총칼이나 기만, 강압, 금력 등 그 모든 의롭지 못한 수단을 궁극에 가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이 노전사는 책에서 절절히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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