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할아버지
곽영미 지음, 남성훈 그림 / 다섯수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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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문제는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에서나 심각한 이슈입니다. 사람을 그 인격과 능력에 따른 기준으로만 평가해야지, 종교, 피부색, 외모, 국적 따위로 편가름을 한다면, 그 국가나 집단은 발전을 이룰 수가 없고, 차별을 하는 사람이나 차별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결과를 빚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어린이들에게 "차별이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를 가르칩니다. 설사 이 가르침이, 학교를 졸업한 후는 물론, 심지어 학교 현장에서도 잘 실천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를 어려서부터 그 성원들에게 가르치는 공동체는, 그 먼 장래를 내다볼 때 밝은 비전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오랜 기간 동안 단일 민족 단일 국가를 이루고 살아 왔습니다. 비교적 영토에 늦게 편입되거나, 그 경계와 소속이 불명확했던 이유로 차별을 받은 지역도 있고, 정변의 발생이나 기도 때문에 차별을 (부당하게) 받은 받은 곳도 있습니다. 허나, 그 어느 지역도 고려, 조선, 한국이라는 소속감이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고(중요한 문제입니다. 안 그런 나라도 있으니까요), 부정당한 적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족 상잔과 분단은 현재진행형으로 아직도 전 구성원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고 있죠.

한때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 있습니다. 과거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북에서 넘어 온 이들을 가리켜,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귀순자, 귀순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체제 경쟁이 남측의 완승으로 끝난 후에는,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붕괴되어 버린 북에서 넘어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배려와 주목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난민에 준하는 신분으로 다루게만 되었죠. 이들을 총칭하는 게 "탈북자"라는 이름입니다. "탈북자"와 "귀순자"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갭이 존재하며, 그들을 바라보거나 대우하는 온기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나", 민호, 건이 등 삼총사입니다. 그리고 이들 앞에 낯설고 적대적인 분위기로 등장한, 왠지 싸움 잘 할 것 같은 정체불명의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 집에서 옥수수를 키우는데, 다른 작물도 아니고 보기 드문 옥수수를 키운다는 것부터가 왠지 마음에 안 듭니다. 어느 날 "나"는, 이 할아버지가 북한 사투리를 쓰고, 수상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걸 엿듭습니다. "나"는 그러잖아도 수상해 보였던 이 할아버지가 간첩이라고 확신한 후, 간첩 체포에 대한 포상금이 5억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마음이 팔려, 명탐정 코난과 꼬마 탐정단이라도 된 양 삼총사와 열심히 작전(?)에 몰두합니다.

옥수수 할아버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자신의 친할아버지도 계십니다. "나"는 전직 경찰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이 문제를 상의합니다.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며 "아무나 함부로 신고하면 감옥 가는 수도 있단다!"며 주의를 줍니다. 하지만 "나"는, 원하는 장난감은 마음대로 다 살 수 있는 포상금 5억에 정신이 팔려, 예전(나중에 밝혀집니다)에 공고되었던 "간첩 의심자 사항"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등, 수상한 옥수수 할아버지를 간첩으로 찍고 신고할 마음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윽고 3총사는 옥수수 할아버지를 감시하던 중 드디어 일을 내고 마는데요...

이 동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합니다. 어느 탈북자 노인이, 북에 두고 온 손자가 너무 보고 싶어, 동네 유치원에 들어왔다가 건조물 무단 침입 혐의로 입건된 사실에서 창작 동기를 얻었습니다. 한국의 노인들이라면 길에 지나가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도 머리를 쓰다듬는 단순한 표현마저 삼가거나 자제하고, 자기 용무에 주의를 쏟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남북 간의 이질화가 여러 모로 위험 수위까지 육박한 현실인데, 이런 정서적 반응이나 표현까지도 어쩌면 이미 선을 넘어 버려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표출이 범죄로 오인되는 당혹스러운 사건도 이처럼 생깁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탈북자는 물론 새터민마저도 차별용어다. 우리 같은 남한 원거주자는 그럼 헌터민이라고 해야 맞을까?'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차별을 하는 주체마저도 그 차별행위로 인해 자신을 특정 틀에 가두는 모순을 초래한다는, 아주 날카로운 지적으로도 들립니다. 남성훈 선생의 따스하고 섬세한 그림이 돋보이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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