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유 럽과 아시아의 세력 역전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뤄진 것 아닐까 하는 깊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뒤처졌구나, 심지어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다른 한편으로, 나라는 개인으로,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삶을 살고 내 이웃에게도 작으나마 기븜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신선하면서도 유용한 방향을 제시받기도 했습니다. 여 러 모로, 이 책은 어른도 어린이들도 읽고 나서 큰 감동과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책이었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든 생각을 나누기에 참 좋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어려운 구석도 있지만, 워낙 풍부한 도판이 질 좋은 백상지에 선명하게 수록되어 있어, 어린이라 해도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편집이라서입니다. 



알 렉산더 폰 훔볼트는 나면서부터(1769년생입니다) 갖은 행운과 축복으로 가득한 배경을 지닌, 그야말로 "입에 은수저를 물고 나온" 인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입에 물고 나온 은수저는, 당사자가 변변치 못한 자질을 지녔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가졌다면 얼마든지 남의 수중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가진 게 은수저밖에 없다면 이처럼 유리한 운수라 해도 어느 순간에 변화를 맞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빼어난 지성과 성실한 마음가짐, 그리고 건전한 인격을 지닌, 정말 신이 한 몸에 온갖 축원을 다 베풀어 준 선택된 영혼이었습니다. 형 빌헬름처럼 그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총명한 아이였고, 갓 스물이 넘어서 그는 벌써 공직에 입문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자리를 굳이 마다하고, 광업 기사처럼 평소에 그가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던 분야의 실습이 가능한 기회만을 골라 가집니다. 그가 재학 중이었던 대학에서도 탁월한 재능과 열정 덕분에 언제나 주목을 받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구요.



이런 그에게도 큰 불운이 닥치는데, 사랑하는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어머니 역시 막강한 배경을 지닌 가문 출신이어서, 알렉산더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무렵 거금의 유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분별 없는 젊은이라면 무익하고 소모적인 용도에 탕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이 중 일부를 야심만만한,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었던 프로젝트를 꾸리는 데에 투자하게 됩니다. 적도 인근의 남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생태계를 탐사하며, 동시에 그가 배우고 익혔던 자연과학 지식을 확인하고 발전시키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자금도 자금이지만, 각종 장비와 자료를 낱낱이 챙기고 점검해야 하며, 여행 자체의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한 계획을 짜야 합니다. 여행 준비 과정 자체가, 그의 능력과 지성, 끈기를 시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의학 발전 수준이 일천했고, 사실상 제대로 된 지도도 없었던 오지 중의 오지를 탐사하는 일은, 거의 목숨을 건 모험이지 한가한 귀족의 소일거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떤 정체 불명의 풍토병에 걸릴지도 모르고,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야수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으며, 현지인들이 낲선 방문객에 호의적이리라는 장담도 못 하는 상황에다, 역설적으로 현지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같은 백인인 "(소위) 문명인"들로부터 올 수 있었습니다(정치적 상황이 그만큼 복잡했던 탓이죠).



어떤 의미에서 "1인 기업, 1인 탐사팀"이었다고 할 수 있는 청년 알렉산더는, 이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통행 안전 확보 문제를,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카를로스 4세를 만나 해결하게 됩니다. 명문 가문에서 자라 반듯한 외모와 매너, 그리고 빛나는 지성과 겸손한 인격을 지녔던 이 젊은이에게, 왕은 흔쾌히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을 들어 주기로 합니다. 알렉산더는 그러나 스페인의 적국이었던(말은 그렇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두 왕국은 이때 국력 상태가 거의 빈사 수준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왕실의 협조는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탐사는 따라서 스페인령 남아메리카(여러 "부왕령"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의 경계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알 렉산더는 이보다 앞서, 세계 문화의 요람이자 계몽주의의 온상이었던 파리에서도 오랜 기간 체류를 하는데요. 이때 그는 봉플랑이라는 귀족 출신 친구를 알게 됩니다. 모든 면에서 죽이 잘 맞았던 그들이었기에, 이 대단한, 그리고 온갖 역경으로 가득할 여행을 이끌어나감에 있어 환상의 듀오를 결성하게 되죠. 1799년 서른을 갓 넘길 때, 그는 드디어 이 친구와 함께 "계몽주의 오 디세이"의 거대한 막을 열며 긴 항해의 돛을 올리게 됩니다. 책에는 아주 간접적으로만 언급되지만, 이 무렵 봉플랑의 모국 프랑스는 부르봉 왕실이 축출당한지 오래였고, 입법 의회의 성립과 전복,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통치, 그리고 절은 포병 장교 나폴레옹의 대두 등으로 어지럽게 정세가 변할 시절이었습니다. 



몸이 자꾸 가려워서 살펴 보니, 눈에 띄는 게 없습니다. 구비해 간 도구 중 현미경이 있어 이를 이용해서 관찰해 보아도, 그저 가는 금 몇 개가 그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럽 등 구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이 무덥고 습한 오지에만 서식하는 특이한 기생충이었습니다. 귀족 출신으로 험한 환경에 노출된 적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강인한 의지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갖은 난관을 이겨 나갑니다. 원주민 중에서도 그저 게으르고 무심하게, 백인 이방인들과 거리를 둬 가며 응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알 렉산더와 봉플랑의 몸에서 일일이 벌레를 떼 내어 주는, 자상한 듯 쿨한 성격의 여인도 있었습니다. 오지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기이한 생명체들이 있었습니다. 고도도 높고 모든 걸 부패시킬 기세로 밀려 오는 습기 때문에 산소부터가 희박한데, 이런 곳만 즐겨 서식하는 혐기성 곤충 때문에 탐사는 더욱 애를 먹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악어조차도 배겨낼 수 없는 상황이라, 동면이 아닌 하면(夏眠)으로 혹서를 넘기는 모습도 보이고, 그런 악아를 잘못 밟아 깨워 십년감수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가장 장관이었던 건 전기뱀장어의 모습이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분포하지 않는 생명체인데, 여 러 마리가 힘을 합치면 엄청난 고압의 전류가 나오므로, 이들은 현지에서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가서 뱀장어 사냥에 나섭니다. 위력은 과연 대단해서, 그 큰 말이 쇼크 때문에 기절하고, 다른 말에 밟히거나  물에 빠져 죽는 녀석들이 속출했습니다. 알렉산더는 한번 전기를 방류한 녀석은, 양분 섭취와 휴식을 통해서만 재충전이 가능함을 이미 알았기에, 큰힘 들이지 않고, 원주민들에게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들 뱀장어를 포획합니다.


그의 형 빌헬름에 대해서도 따로 꼭지를 뽑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 풍경, 기적 같은 장관, 그리고 낯선 생명체, 생소한 토질과 지형... 흠볼트는 미리 철저한 공부와 추론을 통해 머리 속에 꽉 짜 놓은 프레임 속에 이 모든 사항을 정리하고 노트와 책에 기록하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체계에 종합했습니다. 6개월 동안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다시 대서양을 건너 돌아옵니다. 그새 유럽의 정세는, 계몽주의에 기반한 혁명의 사상과 운동의 기운이 대륙을 휩쓰는 형편이었으나, 훔볼트는 별 동요를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는) 베를린의 그들이 걱정하라고 해요." 최고 명문 귀족 출신이면서도 모국의 귀족보다는 파리의 풍운아 친구들에게 더 유대감을 느꼈던 그는, 이런 혁명의 물결 역시 시대의 필연이라고 여겼습니다. 껄렁한 리버럴이 아니라, 이론적 바탕과 확고한 실물적 근거를 두고서만 입을 열고 글을 썼던 그였기에, 언제나 그의 주변은 경청자와 칭송자들로 가득했습니다. 탁상 공론에 그치지 않고 전문 기술자나 현지인보다 더 능숙하게 기구를 다루고 테크닉을 구사할 줄 알았던 다빈치적 지성인, 부를 소홀히하지 않으면서도 고귀한 목적을 위해 초개처첨 볼 줄도 알았던 그는 여러 모로 20세기의 천재 비트겐슈타인과 닮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땅 어디라도 그의 지성과 열정, 끈기의 덕을 직간접으로 입지 않은 인류가 없기에, 비단 남아메리카 뿐 아니라 오대양 육대륙이 모두 그의 바다요 대륙이라 하겠습니다. 왜 우리 동양에서는, 유한 귀족 계층이 호조건을 자본삼아 보다 건전한 용도에 쓸 줄을 몰랐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