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그리움 많은 아들과 소박한 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박동규.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박동규 교수님은 올해로 여든에 가까우신 나이입니다. 장성한,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에서 기반을 다진 아들은 물론, 귀여운 손자의 재롱도 구경하고도 남을 연세이시죠. 이 책은, 이런 교수님이, 당신의 부친 박목월 시인을 애틋이 그리는 정 가득 담아 빚으신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내 인격, 내 성취, 이 모든 것을 짜 주고 갈무리해 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라는, 노교수님의 담담한 술회를 듣고 있자니, 독자인 저도 존경하는 부친을 둔 한 사람의 아들로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뭉클한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


박목월 시인은 일제가 이 땅의 각종 물적, 인적 자원의 착취에 혈안이 되었던 1930년대 후반, 다른 두 분과 함께 세칭 "청록파"로 혜성처럼 등단하신 분이었습니다. 다른 두 분이, 모순 가득한 현실에 비판의 칼을 비교적 날카롭게 세워 만만치 않은 저항의 빛깔을 시 세계에 투영하였다면, 목월은 전통 애상과 시정(詩情) 가득한 순수 서정시의 창작에 보다 주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속세의 풍진 가득한 삶을 초월하여, 우리들 일상의 범인과는 멀리 떨어진 경지에서 초초히 신선 같은 생을 살고 계신 분이라고 막연히 여겨 왔습니다.


박동규 교수님이 이 책에서 잔뜩, 그리고 조용히 풀어 주고 계신 회고담은, 그러나 시인 목월도 한 사람의 인간이요, 부정 가득하고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는 책임감 가득한 가장이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요즘 아빠들이 "프렌디"라 흔히 블리는 친근한 아빠,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 다정하고 착한 아빠라면, 박목월 시인 세대의 아버님들은 엄하고 무서우면서도 염치를 알게 아는 가정 교육에 주력하는 분들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드러나는 시인 목월은, 그 두 가지 모습을 다 갖추신, 아버지로서 전인(全人)에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아 침이면 장남(박동규 교수님)을 비롯하여, 어머니와 모든 아이들은 한 아침 식탁에 둘러 앉아야 합니다. 잠 온다고, 입맛 없다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눈꼽을 눈에 덜렁덜렁 붙인 채로, 또 내복도 채 갈아 입지 않은 채로, 아버지의 한 말씀 들어가며 아침을 같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하후의 일과를 가장이 주도하는 아침 식사와 함께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가부장 상(像) 그대로이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자다 일어난, 격의 없고 천진한 모습이 또 그대로입니다. 바깥 세상에 나가서 남들에게 욕 안 먹고 사람 구실을 하려면 엄하게 키워야 하지만, 한편으로 넉넉지도 못한 시인의 살림에 많은 지원을 못 해주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도 그대로 실려 있지 않습니까. 엄함과 부성애가 절묘한 비율로 조화된 인격,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국민 시인으로 알고 있던 박목월의 참모습이었습니다. 문인으로서 그저 존경스러운 분인 줄만 알았는데, 가정의 돌봄도 엉망이고 자녀 교육에도 소홀한 일부 문인들의 행각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시인이 빚어낸 모든 작품들은, 자신의 고아한 인격 그대로의 투영이었습니다.


박동규 교수님은 우리가 알듯 서울대 국문과로 학부 졸업을 하신 분이죠, 그런데 이분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도, 요즘 만큼은 아니지만 상닫히 험난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연대 상학과(요즘 편제로 경제학+경영학)에서 "특차" 입학 제의가 들어왔을 때(요즘의 수시모집에 해당), 소년 박동규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모친께서도, 낙방 등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길을 권유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상 부친과는 정반대라 할 "실리, 이문 추구의 길"을 걸어 보려 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습니다(전 이 대목에서, 과연 그것이 정직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습니다. 상황이 힘들다 보면 적당한 합리화를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하루를 꼬박 생각하고, 소년 박동규는 아버지께, 밤새 굳힌 마음을 알려 드립니다. "서울대 국문과나 영문과를 가겠습니다." 부자 사이에 이미 이심전심으로 통한 바라, 새삼 말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버지 역시 이제서야 차마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본심을 말합니다. "아버지로서 내가 도와 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분야라야 더 낫지 않겠느냐?" 자식 장래를 마음대로 하려는 아버지의 욕심이 아닙니다. 아들이 보다 완성되고 쓸모 있는 성원으로 자라려면, 아버지의 책무가 다해져야 한다는 지극히 숭고한 의무감이자 부성애의 발로입니다.


그 는 유능하고 자상한 첨삭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졸업 논문을 제출하기에 앞서 먼저 부친께 보여드리자, 다음 날 그의 작품에는 빼곡히 밑줄이 쳐져 돌아?다고 합니다. 주술 관계가 부자연스러운 곳, 아는 것을 과시하려고 불필요하게 힘줘 쓴 문장, 과장되고 어색한 표현...  청년 박동규는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운문의 대가가 되려면 먼저 산문에 통달해야 하는구나, 시정과 영감만으로 시인이 되는 게 아니라, 뼈를 깎는 기술적 훈련을 거쳐야 시인 한 분이 완성되는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꼈어요. 요즘 "복사*붙여넣기"식의 레디메이드, 지극히 경박한 날림형 문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버지로서의 엄한 규준,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도, 직업인으로서의 장인 정신, 이 모든 면에서 그저 부족하고 천박하기만 요즘 세대를 보며, 아버지가 바로 서지 못하니 아들들이 이처럼 부족하구나, 왜 엄격하고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하 가정과 사회에 그토록 중추적인 존재인지를, 거듭거듭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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