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집은 아빠가 다르다 - 대한민국 30만 부모들이 열광한 구근회의 아빠 바로세우기 프로젝트
구근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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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이라는 말이 있죠.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인 줄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격언이나 가르침도 그렇지만, 말은 쉬운데 행동이 어렵습니다. 아빠 노릇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할지 막막해하는 분들이 많죠. 그렇다면, 자녀 교육이나 자신의 인생이나 타에 모범이 될 만한 분이 펴는 주장과 설득이라야 큰 감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구근회 선생은 "공교육 전도사"로 유명합니다. 교육이 이 나라를 망치는 제 일순위 주범이 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자격도 없는 자가, 세금 한 푼 안 내고 달콤한 말로 아이들과 부모들을 현혹하지만, 머리에 든 지식이나 소양, 인품은 0점에 가까운 모습을 흔히 봅니다. 자신이 모범이 되어야 남을 이끌 자격이 생길 텐데, 아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자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드니 그 배운 제자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 선생은, 입시 교육에 대한 제도적 비판 외에도 이 점을 강조하며 그간 소신을 펼친 바 있는 존경스러운 분이죠. 그 자신 역시 최상의 교육을 받고, 자신의 주장을 실천으로 삶으로 옮긴 분이니까요.


이 책에서 여러 번 소개된, 블랜차드 박사의 미국 소재 연구소 모습입니다,



이번에 그가 내놓은 책은, 말하자면 "바른 아빠되기"를 설파하는 내용입니다. "아빠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노릇하기란 창으로 어렵다."가 그 핵심입니다. 아이에게는 물론,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적으로 돌보고 보호하는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사내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딸마저도, 바른 자존감을 갖고 절제하는 행동 원칙으로, 자기 주도적 삶(꼭 공부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인생 전반에 두루 통하는 것입니다)을 살아가는 당당한 성인이 되려면,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과 거에는 농경 사회가 가정의 기본적 패턴을 결정하는 구조라서, 아버지뿐 아니라 할아버지, 증조부, 그리고 백숙부까지 한 지붕에서 사는 일이 많았다고 하죠. 이런 환경에서는, 원칙적으로 아이는 아버지의 모범과 본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겠죠. 물론 가부장적인 낡은 봉건 이데올로기, 성차별적 행태 강요 등은 폐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벗어 나 2차 집단에 속해서도, 리더십을 보이고 주변을 챙기며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버지, 할아버지에게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이들이 많더군요. 아버지의 결핍을 느끼고 자란 이나,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자란사람은, 회사나 학교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꼭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사람들도, 엄마의 사랑만큼은 넉넉히 받고 자란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사랑이 부족하면, 그 사람은 "큰 그릇"이 되기에는 뭔가 결여된 기량이 되기 쉽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사랑을 주고 가까이 곁에 있어 주는 아버지가 될까? 요즘 세계적으로 단연 화두가 되는 게 바로 friendy입니다.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 주는 아빠! 사실 요즘 아이들은, 엄하고 어려운 아버지를, 지난 세대에서조차 구경할 일이 없기 때문에, "프렌디 스타일"을 과연 고마워할지 의문입니다만, 여튼 대세는 그것이라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서는, "프렌디'라고만 하면 "프렌드"와 바로 식별이 안 되어서, "프랜대디"라고 말을 좀 더 붙여 부르는 모습도 자주 봅니다. 사실, "프렌디 스타일"은 이미 한국 사회(특히 도시라면)에서는, 이미 자리잡은 지 오래입니다. 어느 아빠가 요즘 아이를 엄하게 가르치고 매를 들겠습니까. 어떤 때 보면 엄마보다 더 싸고도는 게 한국의 아빠들입니다. 프렌디 지향으로 아빠 할 일을 다한다면, 한국의 아빠들은 걱정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교육학 서적에서 블랜차드와 빌러의 논문은 매우 인용이 잦습니다. (예시)



자 그런데 구 소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전 이 점에서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빠와 아버지는 다르다"는 말에서 벌써 눈치가 오기도 했지만, 구 소장은 "프렌디 만으로는 안 된다!"고 따끔하게 독자에 경종을 울리고 있네요. 대세에 어긋난다는 게 말은 쉬워도, 이를 주변에 설파한다는 건 예사 각오로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구 소장은. 과감하게도 (어떤 면에서는) 다소 전통적인, 절제 있는 엄한 아버지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그의 지난 행보를 보면 새삼스러운 말은 아닙니다. <십대의 반란, 가정교육이 답이다>에서 이미 그는 엄격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인생의 좌표가 되어 주는 아버지상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구 소장 본인은 그럼 자신의 가정에서 이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었을까요? 사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뭐랄까 상궤를 다소 벗어나는 그 예화에 대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에 전념하게 한다는가 하는 모습은, 그렇게 드물지는 않습니다. <부모 vs 학부모>에도, 그저 축구 하는 시간을 확 늘려 준 (대신 TV는 못 보게 한) 어느 가정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아이는 보란 듯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죠. 운동이 학생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우리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로서 구 소장님의 파격적인 행보는 그에 그치지 않더군요. 요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안 사주는 부모는 거의 없는데, 구 소장은 사용요금을 (이제 중학생인) 아이게 스스로 낼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이는 별 망설임 없이, "지불하는 돈에 비해 효용이 크지 않고, 꾀하려는 효과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거둘 수 있다."고 대답했다는군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그냥 애늙은이 같은 소리가 아니라,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세부적인 데까지 설계해 간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빠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효용-비용을 따져 보니, 스마트폰 그거 별 쓸모 없다는 이성적 결론에 스 스로 도달한 거죠. 이런 아이가, "지금 학업에 몰두하면 나의 장래에 매우 유리하겠군." 같은 결론이라고 스스로 내리지 말라는 법 있겠습니까? 내가 필요해서 내가 하겠다는 데, 그걸 누가 말리겠으며, 타인의 보조와 부추김을 받아 하는 공부보다 얼마나 큰 탄력을 받겠습니까? 세상에 자기 주도만큼 생산 효율을 내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엄격하기만 한 게 "구근회식 아버지 되기"가 아닙니다, 그는 베갯머리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 주는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 처럼, 어느 경우에 자상하고 어느 경우에 얼음처럼 냉정하며, 어느 경우에 불같이 단호해야 하는지 준별하는 게, 자기 주도로 제 인생을 이끌어나가는 아이를 키우는 첫걸음입니다. 특히 저는. 자기 전에 책을 같이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서가 무엇입니까. 아이에게, 생선을 먹여 주는 게 아니라 생선을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첫걸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가장 중요한 정신 성장의 발판을, 아빠가 직접 놓아 주는 아이, 그 아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타인에게 의지가 되고 가이드가 되는 리더 노릇을 하게 됩니다. 참 좋은 선배다, 상사다 싶은 분은, 가정을 방문해 보면 그런 느낌이 확연히 들더군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은, 결국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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