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에 대한 명상 문학의전당 시인선 168
권순자 지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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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란 그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라면 개 체 번식을 위한 생화학 작용 끝의 (다소 요란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미학적 객체로까지 위상을 높이고, 문예의 인기 소재로 삼고, 경우에 따라 존재를 걸듯 탐미의 대상으로 삼는 게 인간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 의미를 꽉꽉 채워 넣은 감성과 인식의 결정체를 상정하고, 단 한 마디로 "곷"이라 명명했습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인간 영혼과 감성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꽃"은 영원히 신비적 매력으로 인류의 곁에, 아니 위에, 남아서 끊임 없는 각성의 원천으로 기능하지 싶습니다.



어찌 보면 꽃을 꽃으로 알아보는 것도 우리 인간이라야 가능함니다. 꽃과 더 오랜 시간을 같은 주파수의 공감대로 딩굴 만한 짐승(초식이건 육식이건)이라 해도, 우리 인간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심히 소, 양, 사슴 등이 지표에 돋은 각종의 엽록소 용기(容器)를 텁텁한 입으로 뜯는 모습을 보면, 꽃의 성스러움을 그대로 알아 봐주거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포장해 주는 편도 오직 우리 인간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간혹 제 동족 중 가장 이쁜 것을 "꽃"에 비기면서도, 일시의 격정을 건사 못 해 잔인하게 목숨을 앗는 종(種) 역시 인간뿐입니다. 이래저래 꽃은 자신의 화사한 모습을 통해 타 종의 존재 본질 통찰을 돕는 성스러운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권순자 시인의 이 시편들은,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모순과 추함이 생의 자취 곳곳에 업보처럼 얼룩진, 있는 그대로의 사람살이를 미화 없이, 때로는 날카로운 과장을 통해 독자에게 심상으로 제시합니다."꽃"을 매체로 삼아 전개되는 "명상"이라니, 그 언어의 울림만 눈을 감고 짚어도 안온한 피안으로 쉬이 인도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꽃이 입은 빛깔 중에서도 어쩜 가장 흔한 편인 "붉음"에 내재한 또다른 환기의 연속에 기인한 걸까요. 사람 사는 이 세상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 보기 좋고 미쁜 덩이로만 공간이 체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못난 것, 추한 것, 더러운 것이 더 가득 공간에 배어 질서를 흔들고 엔트로피를 증강합니다. "명상"이 "아픔"으로, 나아가 근원적 고뇌로 이어진다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촘촘히 보람으로 채우지 못한 채, 듬성듬성 공허한 쾌락과 우두망찰 방관, 나태로 물들임은 "죄"입니다. 마땅한 상대를 찾아 사랑의 결실을 맺지 않은 채, 허랑한 자아만 위무한 보편적 방종인을 두고 권 시인은 "삼촌"이라는 익명을 부여하여 준엄히 심판하고 있습니다(p34).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한 인생은, 저 멀리 인간 존재의 불의와 모순이 뿔 끝의 첨점에 달려 금세라도 비등점 너머로 폭발할 것 같은 소말리아(p96)로 보내 버려야 제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나"를 만날 길 없으면, 표류하는 새가 되어 구천을 떠돌면 해법이 보일 지도 모릅니다(p85). 돌다돌다 지친 존재는, 어느 새 그 모든 번민을 한 줌의 재로 화하게 한, 싸늘히 그 붉은 빛을 뿜는 한 떨기 꽃을 만나 돈오의 희열을 느낄 지 모릅니다.(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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