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없는 삶 -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아낌없이 쓰는 법
호사카 다카시 지음, 박현정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흔히 식문화를 두고, 한일 양국의 근본적 스타일 차이를 곧잘 논하곤 합니다. 우리는 한 상 부러지게 차리고, 접시마다 담은 양도 그득그득 넘치며, 다 먹지도 못할 요량으로 벌여 놓은 음식 중에 버리는 양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저렇게 먹고도 사람이 사나? 싶게, 정말 접시나 공기마다 양을 조금만 담고, 가짓수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소식하면 과연 오래 사는 법인지,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평균 수명을 자랑하는 민족이죠. 이에는 덜 짜고 덜 매운 풍으로 조리하는 그들만의 양식도 크게 작용하지만, 크게 봐서는 유례 없는 질박하고 검소한 기풍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더 잘 이해가 됩니다.


가뜩이나 이처럼 검약하게 사는 일본 사람들인데, 거 기서 뭘 더 줄이고 아끼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절약이라는 키워드를 물질 아닌 정신의 영역까지 확장해서. 사람 사이에 맺고 사는 관계에까지 확장 적용하여, 감정과 에너지의 낭비 없는 건강한 인생을 영위할 것까지 추가로 주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목의 "낭비없음"은, 인생을 통합적으로 고찰했을 때의 개념입니다. 음식이나 금전 지출에 있어 낭비를 줄이면, 인생 전반의 영역에 그 절약과 합리의 정신이 두루두루 미친다는 가르침으로 정리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과연 이 책이 일본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게 맞는지 수시로 책 앞으로 돌아가 확인하는 소모적인 버릇까지 들였네요. 일본이 확실히 우리하고 닮아도 닮은 점이 많은 건지, 한 대목 한 구절을 저 섬나라가 아닌 우리의 실정에 적용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잘 들어 맞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왜 우리도, 절은 층에서는 솔로족이 많아서, 노년층에서는 자식들 다 분가시키고 넓은 공간을 놀리기 싫어서(물론 금전적 부담이 더 큰 이유입니다만), 점차 대형 평수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고 있죠. 얼마 전만 해도 큰 평수 아파트에 사는 게 지위나 신분의 과시가 되어, 부르는 게 값이 되던 대단한 거품 현상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상전벽해의 느낌을 부릅니다. 저자 호사카 씨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노년층은 과감히 다운사이징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자, 이러면 기껏 빚을 얻어 내집 장만을 했다가 상투잡이의 봉변을 당하 하우스푸어들께는 달갑지 않은 공기를 부르겠습니다만, 이게 시대의 대세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거품은 줄여야 개인에게나 사회에나 합리적이니까요. 아무튼 기존의 무분별한 투기 광풍이 선량한 중산층의 피해를 낳은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요즘 "비우기, 잘 버리기"의 바람이 적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관심 대상입니다. 꽉 쥐고 놓아 주지 않는 모습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져 옵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소용이 크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버리는 게 상책이고, 이게 앞에서 언급한 "거주저택의 다운사이징"에도 일정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버릴 것인지의 방법론인데, 동거 가족이 있으면 최대한 합의를 이뤄 내야 하고, 폐기물을 인수하려는 업자가 있다면 그를 알아보는 게 한푼이라도 이익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한국에도 그런 업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인터넷에는 틈새 시장을 노린 다양한 서비스가 수요자를 향해 구애 중이니까, 혹시라도 인근에 업자가 있는지 알아 보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 나를 위한 선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은 일, 혹은 일상에서 의미 없이 지나치던 소소한 일이라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나만의 세레모니로 치러 낸다면, 그 작은 행복과 뿌듯함이 몇 배는 커져서, 오롯이 존재적 만족으로 남는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삶의 정수는 소유가 아닌 체험에 있습니다. 모 광고 카피에 나와 있었듯이, "사는 게 힘들어 자꾸 사게 된다"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가질 게 아니라, 이 구매는, 소비는, 나만을 위한 귀중한 예식임을 자신과, 잘 통하는 지인 사이에서 나눔으로 추억에 남기라는 주문입니다. 이 저자는 "뭘 살 때 많이 사면 결국 버리게 된다. 소량을 사도 고급 품을 사서, 그것을 소비하는 추억을 각별하게 남기는 게 더 현명한 소비"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만족은 양적 측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좀 속물적이다 싶어도, 남들이 좋아하는 질적 측면에 누구라도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죠. 특별한 소비를 가까운 지인 소수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에서 소비하는 게 총체적 만족의 측면에서 더 현명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점원한테 "하나만 주세요."라고 하기가 좀 꺼려지거나 미안하지 않은가? 저자는, 공손하고 정중하게 말을 거는 손님에게는 언제나 점원들도 흔쾌히 맞아 준다면서, 괜한 체면의식은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한국에도 잘 맞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세상에는 믿을 만한 친구가 세 명 있다. 늙은 아내, 늙은 개, 그리고 저금.

이 말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입에서 나왔다는군요. 확실히 프랭클린이라면 자기 관리, 체계적인 경영의 삶에 있어 대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인생의 결어(結語)를 맺듯 남긴 말은, 어느 연령대의 독자라도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이 말로부터 노년층의 독자에게, "나를 위해 이제 조금씩 소비하는 건 죄가 아니니만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작은 즐거움이나 기쁨이라도 맛보는 게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그 방식은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용도로" 돈을 쓰는 것이라야 한다는군요.


중장년층에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가, "웰빙"이 아닌 "웰 다잉"이라고 합니다. 품위 있고 미련 없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떠나려면, 일찍부터 여러 방향에서 정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엔딩 노트의 작성이 중요한데, 그 항목은 진솔하되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작성하라고 하네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손글씨로 남기는(정보의 용량도 제한되었을) 기록의 의의는 무시 못할 범위로 다가옵니다. 정리, 검약의 기본은 어찌 보면 잘 마련된 정리가 그 출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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