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부터 청춘
야마사키 다케야 지음, 김형주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는, "육십이 청춘이면 난 그럼 태아인가?" 같은 상대적 안도감을 느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선착순 긴 줄 앞자리에서, 뒤에 끝도 없이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으쓱해지지 않습니까? 어르신들께는 좀 죄송하지만, 아직 젊다는 상대적 유리함을 수시로 확인하면,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에서 한창 현장을 누비는 입장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순전히 그런 이기적인 의도에서 고른 책입니다.


그런데 이건 웬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득가득 채워진 당부와 가르침(단순히 명언, 금언이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을 읽으니, 아직 60이 되려면 까마득한 나이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은 뭘까요? 올 바른 말, 진리는 사실 알고 보면 어느 원전을 바탕으로, 다소의 변형을 거쳐 비슷비슷한 모습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가르침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말들,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비록 낯선 표현이고 가르침이지만, 살면서 느낀 바를 잘 반영하고 있어서 실감 나는 교훈으로 마음에 다가왔어요.


저자는 일본 분입니다. 야마사키 다케야라는 성함인데, 1935년생이십니다. 우선 책을 읽다가 저자가 일본 분이라는 점에 조금 놀랐습니다. "외국인 저자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저술인데, 이처럼 공감이 넓게 이뤄지나?" 그것은 일본과 우리가 비록 앙숙으로 지낼지언정, 같은 동아시아 유-불 문화권으로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서일 수 있고, 특히 이 저자분이 살아 온 고속 번영, 개발 시대가 우리의 그것과 많은 공통점을 지녀서일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저자의 깨우침, 내공, 살아 온 인생의 밀도가 남달라서일 수도 있죠. 이 책이 유독 저에게 많은 교훈을 안긴 데에는, 이 세 가지 이유가 다 나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분입니다. 이 연세에 동경대 법대 출신이면 그 연배에선 최고 엘리트겠죠.

책에서는 "인터내셔널 아이"의 최고경영자라고 하고, 이 사진의 출처인 재팬타임즈에서는 "차나유 인터내셔널"의 CEO라고 합니다. 어느 편이 맞는지, 둘 다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이 많지만 하나만 인용하면요.

회춘이라고 해도 겉모습이 다소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장 기관의 건강이다.
염색, 화장 등의 겉치레만으로 사람들 눈을 착각하게 할 수는 있으나, 자신은 그것이 참된 모습이 아님을 알므로,
"이것은 나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자책 때문에 위축되는 태도가 어느 한 구석에건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상당한 미인이다 싶은 여성인데 이상하게 어딘가 주눅든 모습을 보이는 때, "아 이분은 성형을 하셨구나," 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너무 짖궂은 해석, 혹은 내용의 왜곡이 될는지요. 하지만 저는 이책에 실린 여러 가르침들이, 주어와 상황을 조금만 바꾸면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가령, "어떤 젊은이들은 고의적으로 나를 '영감님!'이라 부르며 거친 언사를 보인다. 그 이면에는 먹은 나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존경 없이 위력으로 대등하게 승부를 보겠다는 무례함이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들을 개의치 않는다. 젊은 나이에 걸맞은 패기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증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같은 대목도 있습니다. 실무 현장에서 기싸움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거친 매너를 보이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은 결국 행위자의 지각 없음과 무능을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결론인데, 저 역시 사람 상대하면서 자주 실감하는 대목입니다.


노후 설계 같은 장은 역시 주로 노인분들을 위한 정보와 조언이겠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결론은 그렇네요. 상인들이란 결국 호시탐탐 고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모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자신이 주체적으로 큰 얼개와 방향을 잡아야 하며,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서나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 족하다는 겁니다. 이 역시, 60 아니라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도 지침과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자 식과 손주와 거리를 두는 법. 이 대목은 얼핏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도 주지만, 매우 현실적인 면을 충언해 주는 서술입니다."자식은 삼계의 멍에이다" 같은 말도 있다는군요. 결국 장성하여 독립적인 인격과 이해를 갖게 되면, 아무리 부모라도 예전처럼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 자식이 손주를 낳게 되면, 조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예전 어린 자식을 키우던 시절이 생각나서 귀여워할 수밖에 없는 거겠구요. 이런 자식, 그리고 손주들에게 잘하는 하나의 방법은, 교육비나 여행비 등을 지원해 주는 게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증여세나 상속세 부담을 덜어 좋다고도 합니다. 한국 세제상으로도 그리 해석되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동작이 예전같이 민첩하지 않고, 몸매가 망가지기 쉬우므로 옷차림에 신경 쓰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사치나 낭비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결국 행복한 노후는 건전하고 흔들림 없는 인생관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노화와 죽음으로 수렴해 가는 인생이므로, 인생의 대선배가 될 이런 가르침을 잘 새기고 갑작스런 충격에 조금씩은 면역을 들이는 것도 현명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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