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안희정의 진심
안희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충 남도지사 안희정은 여태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흔히들 그를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사, 브레인으로만 인식하지만, 나름의 확고한 정치철학, 커리어, 그리고 학문적 기반이 있는 분이고 수백만 도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도백으로 선출된 인사이므로, 그런 시선은 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진솔한 서술 속에서 그의 진정성까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서두에는 그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난 2008년 당시 집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루키 오바마(고작 04년 중간선거에 처음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 되었을 뿐이었죠)를 두고 그 미들네임 "후세인"을 거론하며,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중상 모략을 하는 극우파 청중들을 향해, "내가 보증하건대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며 일갈했던 일 말입니다. 이 일화를 거론하며 그는 "일국의 지도자가 될 인물은 저 정도의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며 상기할 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해졌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일국 아니라 한 고을의 대표가 될 사람이라도, 최소한 팩트를 팩트로 인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식 능력, 거짓을 참으로 강변할 때 자신의 자존이 일부라도 손상된다는 문명인으로서의 최소 양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매캐인의 그 행동은 포용력까지 불러줄 일도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 기본으로 유지해야 할 품성이며, 이런 일로 감동까지 해야 할 우리의 형편이 아직 갈길 멀고 척박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기초적인 정의감이나 현실 인식도 되지못한 우중을 다독이고 계도해야 할 일이지, 그들을 부추기고 선동하여 온당치 못한 이익을 챙길 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죠.


안희정은 이 책에서 그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 주고 있습니다,. 독자로서는 참 고마운 일입니다. 노 대통령(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은, 당시 모 정당(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네요)을 결성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정몽준씨와 야권 단일화 담판에 나셨습니다. 신생 정당은 국회의원도 몇 안 되는, 비중이 떨어지는 실체였기에, 이런 당의 후보와 대등한 자격으로 협상에 나선다는 건나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이었습니다. 단일화 방식에 합의한 후, 노 후보(당시)는 안희정에게 "내가 차라리 패배하는 편이, 패배한 측이 어떤 방법으로 모범을 보이는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사실, 후보로 선출되고 나서 여론 조사 지지율이 급락하자, 심지어 자 당 내에서도 후보 교체론이 비등하여 노 후보가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이는 등 형편은 대단히 좋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초연하게, "패배한들 어떠하겠는가." 같은 의향을 측근에게 비친 것이죠. 이 점은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으로도 핵석된다는 점에서 한 인간으로서 대단히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대선 직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고, 당선 직후에도 마찬기지였습니다. 안희정은 그런 "주군"의 모습을 이 책에서 술회하고 있는 거죠.


포 용력까지도 핋요 없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공정함만 지켜져도, 대한민국은 훨씬 만족도가 높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패배 후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규정한 안희정의 불편부당한 배포는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따르는 아랫사람 보는 체면 때문에라도 그런 진솔한 자아비판을 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실정입니다. 이것은 용기의 산물이고, 이런 용기가 바탕이 되어야 공정함도 포용력도 진정성 있게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에 "그들은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자인한 이들인데, 더 이상 말해서 뭐하겠는가." 같은 발언을 하신 걸 신문으로 알았습니다. 반대 진영을 비판하시는 건 정치인으로서 본연의 영역에 속하겠으나, 최소한 적장 중 핵심인사의 자아비판을 두고 매몰찬 공격을 가하는 건, 쓰러진 자에 발길질을 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적에게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 줘야, 그게 국가지도자로서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안희정 도지사가 지금보다 더 큰 권한과 권위를 지닌 자리에 오른다면, 지금만큼의 초심이라도 유지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지방자치제도의 역사에 관해, 오늘날의 지방자치제가 당초 무산될 뻔했으나, 김대중 총재(당시)의 단식 투쟁에 힘입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개되었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느닷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단체장 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지방의회 선거만 일정대로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정면으로 법을 어긴 행위이고, 이에 김대중 총재가 단식 투쟁에 나섰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단체장 선거는 이때로부터 한참을 경과하여, 더 이상 연기의 명분이 없어진 1995년 들어서야 가까스로 실시되었고, 이때도 서울시를 4개 권역으로 분할한다 뭐다 해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저자가 착각을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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