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 본국 사역이라는 긴 항해에서 만난 기쁨과 고통, 그리고 소명 이야기 ○○비안 나이트 2
손창남 지음, 석용욱 그림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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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쏘라비안 나이트>라고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과연 무슨 뜻일지 궁금했습니다. 저자 손창남 선교사님은 몇 년 전 <족자비안 나이트>라는 책을 내신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인도네시아 자바 섬 중부에 자리한 족자카르타(Jokjakarta)에서의 선교기였다고 하네요. 이번의 이 책은, 손 선교사님이 가족을 이끌고(수십 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체류했고, 자녀는 인니 현지에서 유년을 다 보내고 고등학교까지 마쳤다고 하니, 대단한 선교에의 열정,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후 근 10년 동안 국내 사역에 종사한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족자비안 나이트>의 속편인 셈입니다. 두 권의 책 제목이 <~비안 나이트>의 형식인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순전히 제 짐작으로(이 책에는 안 나와 있으니까요)는, 손 선교사님이 인생의 청춘기를 오롯이 바친 것이나 진배없는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 그리고 손 선교사님이 쓰신 책들이 마치 천일야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쓰여졌다는 사실(심각한 내용도 꽤 되긴 하지만, 손 저자님의 글솜씨, 입담이 좋아서인지, 태평한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재밌기만 했어요), 이 두 가지에서 비홋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족자("족자카르타"의 준말이라고 하네요)에서의 선교기가 <족자비안 나이트>라면, 이 <쏘라비안 나이트>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저자의 설명은, 서울 거주민들을 지칭하는 Seoulite에서 딴 것이랍니다. 이 단어는 사실 십 년 전만 해도 대단히 어색하게 들리던 조어(造語)였어요(이 단어를 거론하던 미국인은 실소를 머금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이젠, 저자 손선교사 님처럼 해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현지인들에게 일상처럼 듣곤 하는 말이 어언 되어버린 거죠. 그만큼 국제화되고 세계 속에 뚜렷한 위상을 잡아 가는 한국, 한국인들을 확인할 수 있는 증좌 같아서 묘한 긍지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ite라는 접미사는 사실 성경에서 유래한 것이니, 이 책과 저자 관련해서 여러 묘한 연상을 중첩적으로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전에 <내 이름은 모리타니 마마>라 는 책을 읽고 느낀 바이기도 한데요. 보통 한국 선교사들이 타겟으로 삼는 곳은 무슬림 거주지가 많습니다. 얼마 전 큰 물의가 빚어진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고, 모리타니 공화국, 그리고 이 인도네시아 역시 다 무슬림 국가입니다. 한때는 지구에서 가장 은성하고 번창하는 모습이었겠으나, 지금은 우리가 보다시피 생존에 필요한 기초적인 조건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렵게 사는 이들이많습니다. 종교적 열정은 어찌 보면 픙요보다는 궁핍 가운데서 움트기 시작하는 일이므로, 뜻있는 선교사들의 용감한 결심은 한편으로 큰 수긍과 지지가 보내지는 면 있습니다.

손창남 선교사의 전작을 읽어 보지는 못했으나, 이 책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정말 진솔하고 성실하신 분 같습니다. 이 책은 여러 선교사님들의 추천사가 있고(하나같이 저자분의 고매한 인품을 증언하는 말들입니다), 다음으로 손 선교사님이 혼자 자취하시면서(가족을 먼저 귀국시킨 상황입니다) 라면을 끓이다 집에 불을 낼 뻔한 회고가 이어집니다. 가까스로 "집에 가스불을 끄지 않고 외출했구나!"하는 자각이 들자마자 오젝(ojek)을 잡아 타고 아파트로 돌아옵니다(이 "오젝"이란 택시 오토바이인데, 저자의 설명에 따르자면 승용차보다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게 해 주는, 인니 현지 특유의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입니다). 간신히 큰 화재로 번지기 직전에 집에 들어 올 수 있었지만, 자신의 처량한 모습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는 술회를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신분이나 직위를 막론하고 한국인들은 역시 정서 구조와 행동양식이 어디에서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요.

선교사님 의 이 책은 자신의 체험이나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깊이 있는 신앙적 깨달음으로 연결시키는 그 통찰 능력이 남다릅니다. 불이 난 외양간에서 소를 바깥으로 끌고 나오려면, 먼저 여물통을 엎어야 한답니다. 소는 미련해서 제 몸에 닥친 화급한 사태도 모른 채, 그저 반가운 여물통 옆에서 꼼짝도 안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죠. 여물통을 엎어 버리면 그제서야 미련이 없어져서 걸어 나온다는 건데요. 손 선교사님 역시,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부질없는 집착을 버리려면, 누가 대신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의 여물통"을 스스로 엎어버리는 파격을 단행하여, 그가 말하는 "주님의 길"로 걷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는 말을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르침이고, 신앙심 깊은 이의 고뇌가 담긴 책은 이런 맛에 읽는 것이구나 하는 점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코르를 선수로 뛰던 모 스타 플레이어를 직접 보았는데, 어느 날 한국의 TV를 보니 그가 신사복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지시를 내리더랍니다. 배는 많이 나오고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모습, 더 이상 선수 노릇을 못 하니 이제 지도자 생활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계시처럼 자신의 진로에 대해 느낌이 오더라는 겁니다. 과중한 해외 선교 업무를 일선에서 감당 못 할 나이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방에서 젊은 선교사들을 지원 하면 되는 거죠! 밀도 있는 인생을 산 분은 이처럼, 작은 것에서도 큰 가르침을 얻습니다. 손 선교사님 이 고려대를 나온 분이니, 그 전직 스타플레이어이자 현 감독이 누구을 말하는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이 책은 이처럼, 치열한 도전정신과 소명의식으로 인생을 불사를 줄 안 어느 지사의 고백담이라고 보였습니다. 신앙 여부를 떠나 한번 읽어 봄직한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nite란 글자는 미스프린트는 아닙니다. night를 저렇게 nite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비표준이지만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전문용어로) pidgin의 용태가 자주 보이므로, 문맥상 납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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