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처럼 - 땅과 하늘과 바다의 길을 연 대한민국 수송계의 거목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9
고수정 지음, 유재천 감수 / FKI미디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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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진그룹은 일반 소비자들에게야 택배 사업 정도로 유명하지만, 물류와 운송, 그리고 항공 산업 대한항공이란 거대 유닛을 소유하고 이끄는, 한국 산업 중추 실체 중 하나죠. 그 창업주 조중훈은 워낙 잘 알려진 인사이고, 사업 초창기 H그룹 창업주 모 씨와의 불편한 인연으로도 세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한 분입니다. 2002년에 타계하여, 그 길고 뚜렷한 인생을 마감했을 때의 그의 향년은 82였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한진은 인천을 기반으로 합니다(4년제 인하대학교, 그리고 전문대인 인하공전도 모두 한진 그룹 소유죠). 한진상사를 인천에서 갓 창립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때 그의 나이 불과 3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앞서 리뷰에서 언급한 조홍제씨는 이때 44세의 중년이었고, 이병철로부터 사업 전망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는 정도였으니 지역의 대부호였을 뿐 아직 사업의 감도 익히지 않을 무렵입니다) 젊은 사람이 배짱 한 번 대단하군! 언제나 주위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지냈으며, 실제로 다른 중견 사업가들이 해방 직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사 업체를 불하 받아 기반을 닦거나, 해당 기업체에 소속되어 관리자 신분으로 인수를 받은 유리점이 있었던 반면, 조중훈은 상대적으로 맨주먹 창업이나 마찬가지였죠. 이 책에 나오듯이, 그냥 트럭 한 대로 모든 것을 시작했고, 다시 접었다가, 다시 일어셨습니다. 지 금 한진 하면 생각나는 택배 산업, 전국의 소위 "1톤 사장님"들을 우리는 우습게 여기지만, 이 거대 기업의 창업주 역시 당시만 해도 그저 트럭 한 대 몰고 다니는 정처 없는 인생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많은 상념이 교차하게 됩니다.


인천 바닥에서 신용을 쌓으며 좀 잘나가는가 싶었는데, 한국동란의 발발로 그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됩니다. 하 지만 의지와 배짱으로 다져진 조중훈의 마음가짐은 누가 함부로 침노할 수 있는 연약한 지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완과 순발력을 발휘하여, 미군 군수품 수송 계약을 따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미군측에서도 그의 성실성과 추진력에 감복하여 수주액을 점차 늘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기업 한진 그 도약 발판 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미 군과 연계를 맺게 되니 항공 물품 운송에도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것을 계기로 "에어 코리아"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손을 대는 영역마다 큰 이익을 보는 놀라운 재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그였지만, 잘나가는 업적 뒤에는 부담도 없지만은 않았는데요. 박정희는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공기업 한국항공공사를 조중훈더러 인계할 것을 강권합니다. 조중훈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대 분위기가 분위기였던지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허울이 좋은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은 이래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한진은 "여객" 운송에까지 확장을 보기에 이릅니다.


마지못해서, 혹은 사업상의 불이익을 권부(權府)에서 가할까 하는 두려움에 받아들이긴 했지만, 일단 인 수한 후에는 순풍에 날개를 단 듯, 홍콩, 파리 등으로 취항 노선을 확대하는 등 일취월장의 추세를 탑니다. 이 무렵에 드디어 베트남 전쟁이 터지는데, 한진은 이에도 참여하여 거액을 달러로 벌어들이기에 이릅니다. 운송은 특히나 국제적 영역을 취급할 수밖에 없는 부문이므로, 그가 벌어들이는 거의 모든 수익은 달러 매개였습니다. 사업 보국을 몸으로 실천하는 그였지만, 전화로 고생하는 현지 베트남인들에게는 "타 민족의 고생을 기화로 이익만을 취하는 어글리 코리언들"이 밉고도 미웠다고 합니다. 조중훈은 이런 점도 감안하여, 거래시 월남인들의 감정과 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하고, 취업의 기회를 현지인에게 대폭 개방할 것을 지시합니다.


조중훈은 사업 수완 못지 않게 실용적(practical) 유머 감각 역시 상당했다고 하죠? 석유 파동은 당시 한국 같은 자원 부재 개도국에게 특히 타격을 주었습니다만, 기름으로 움직이고 기름으로 돌아가는 운송업계가 받은 타격은 여타 업종과 비길 바가 아니었습니다. 원가를 아끼고 또 아껴야 하는데, 한번은 아래에서 "비행기 동체에 페인트를 안 칠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건의가 들어오자, 그렇게 하라며 겉표면에 " 이 비행기는 비키니 차림입니다."라고 쓰게 지시했다는 겁니다. 얼마나 위트가 넘칩니까. 이런 여유야말로 위기를 도리어 기회로 만드는 사업가만의 기지라고 할 수 있죠.


그 는 대단히 진취적이고 공격적 기질이 강했습니다. 박정희가 카터 행정부 시절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미군 철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자, 자체 국방력 충원을 위해 방산물자 생산을 지시하는데, 조중훈을 이를 받아들여 국산 전투기 1호인 "제공호"를 생산, 성공하기에 이르죠.


이 책은 다소 시대 관계가 좀 셔플링되어 편집한 모습입니다. 조중훈 하면 또 지일파로 유명한 기업인인데요. 그 중에서도 고급의 인맥만 알짜로 구축해서 필요할 때마다 동원한 전설적인 일화로 유명한 분이 조중훈입니다. 이 책에 보면 장기영 부총리(당시 한국일보 오너)가 조중훈을 불러, 한일 외교 정상화에 일익을 담당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때 그가 알게 된 일본 정치인 중에 다나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물론 나중에 총리대신을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 그 사람입니다. 이 책에도 그런 서술이 있습니다만, "학력은 비록 미흡하나, 야심과 총기로 가득했다"는 점이 공통이라고 적어 놓았는데요, 실제로 다나카 가쿠에이는 국졸 학력으로 그만큼이나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로도 유명하죠.


조 중훈의 위대한 면은 언제나 인재 양성이라는 기업의 소명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는 일류 조종사 확보에만 주력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자체 양성을 하는 인프라를 창설하는 일에도 정력을 쏟았는데요, 그 결과가 우리가 보는 명문 학교들입니다. 일국의 미래도 결국은 인재 양성에 달려 있고, 위대한 기업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 생각하면 그의 혜안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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