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은 현재 그룹 내외적으로 공히 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창업자 조홍제 회장의 삶을 돌이켜 보면, 거대 비즈니스의 흥업이 이처럼이나 많은 노력과 정성, 개인의 의지가 투입되는 간난의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일반인들은 효성 그룹이라고 하면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IT 종사자들은 낯익어할 수도 있구요. 중공업, 건설자재, 섬유 등 생산재 분야에서 한국 경제 대동맥 순환의 중추적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과거 한 때 국내에서 오토바이 브랜드의 대명사였던 효성스즈키 스프린터를 기억하십니까? (물론 이 회사는 현재 S&T로 넘어갔습니다만) 어려웠던 시절 일본 거대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도입에 앞장섰던 점에서도, 이 효성은 돋보이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조홍제 창업자는 이병철씨보다 4살 연상(이 책에는 다섯 살로 나옵니다)입니다. 이병철씨는 경남 의령 출신이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는 인접한 함안 대지주 가문 소생이죠.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전되기 이전 시점부터, 삼성물산은 남한 전체에서 첫손에 꼽는 대기업이었습니다. 이 삼성물산을 이병철씨와 공동 출자하여 설립(10:7로 조홍제의 비중이 더 높았으며, 조씨 가문의 재력이 더 컸던 덕입니다)하고, 나중에는 제일제당 대표이사의 지위에까지 취임합니다.
조홍제는, 당시 해외진출 실적이 전무하다시피했던 한국에서, 외화 획득을 위해 홍콩에 오징어 등의 해산물을 수출하러 출장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해외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살벌하고, 무도함과 반칙이 판을 치는 곳이었습니다. 흔히 상도의(商道義)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한가한 개념애 불과했죠. 현지 상인들의 담합 탓에 꼼짝 없이 헐값에 아까운 물품을 버리게 오게 될 형편에 놓인 조홍제,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아니면 그가 평소에 다져 놓은 인복이 큰 효험을 마침 보았는지(말이 쉬울 뿐 능력자에게만 가려 찾아 주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지 거상(巨商) 임창복의 도움을 받아 오징어 등을 양가(良價)에 처분하고 귀국합니다. 그는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행운이 따라주는 편이었습니다만(예를 들면 삼성에서 지분 관계를 청산하고 나온 후 설립한 조선제분이 바로 큰 수익을 올린 일 등이 있죠), 행운도 실력자에게만 따르는 법입니다.
이 책에는 다소 모호하게, "제일제당 사카린 밀수 사건"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당시 제일제당 대표는 조홍제씨였는데, 회사의 사카린 밀수 총책임자로 그가 일단 총대를 매고 법적 책임을 지는 것(징역형)으 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해외에 당시 체류 중이던 이병철은 일단 법적 제재를 면했으나, 다른 소스에 의하면 중정에 끌려가서 호된 옥고를 치른 것으로 나옵니다. 청소년 전기에 너무 세세한 내용까지 다룰 수는 없는 일이었겠구요. 여튼 조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삼성과 연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조선제분을 인수해서, 당시 국민적 과제이던 먹거리 해결 영역에서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자신도 알짜 산업을 일으키는 계기로 삼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56세였는데요. 요즘과 달리 당시 이 연령이면 노인 대열에 속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손자 재롱이나 봐야 할 나이에 무슨 창업인가?" 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로서는 적잖은 목돈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그 단계에서 흥업의 꿈을 접고 싶지 않았을 테죠.
다음에는 한국타이어 인수에 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책에서도 잘 나와 있듯, 본디 일제 시절 <조선다이야>로 시작했던 이 기업은. 1960년대말 완전한 빚더미에 올라 앉은 부실덩어리 골칫거리였습니다. 이 기업은 조홍제의 각별한 정성과 번득이는 사업가 기질의 혜택을 입어, 알짜 수익 창출원으로 거듭나죠. 현재 한국타이어는 해당 업계 내 세계 10위권 굴지의 대규모 업체이며, 조홍제의 둘째 아들 양래씨의 소유로 효성에서 계열분리된 위상입니다. 이쯤 되면 그를 일러,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러 줘도 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p136에 보면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의 생활태도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53년식 크라이슬러를. 효성기업이 탄탄대로에 올라선 후까지 몰고 다녔다는(직접 몰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에피소드인데요. 가 난한 한국의 형편을 감안한다 해도, 크라이슬러라는 게 원래 고급차 레벨에 속하는 기종도 아닌데다, 세월이 그만큼이나 지났으니 주위의 눈촐을 살 만도 했겠습니다. 이 책에도 보면, "똥차라고 호텔에 가면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하태 사장의 말로 인용), 참 지금은 몰라도 그때 역시 한국의 호텔가에서는, 똥차에 눈길 안 주고 괄세하는 풍토가 있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임 영규, 배기은, 송재달 이라고 하면 지금도 효성이나 한타에서는 레전드로 통하는 쟁쟁한 원로들입니다. 이들이 포진한 기획실을 앞세워 조홍제는 20년, 30년을 내다보는 거대 설계를 짜 나가는 시도에 나섭니다. 효성 창업주 조홍제가 타계한지 벌써 30년이 되어갑니다만, 아직도 이 정신은 면면히 그 후계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탄 소섬유는 그야말로 "future thing"인데요, 효성이 추진하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향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 판도를 바꿔 놓을 기대주 종목이죠. 이 모든 것은 이미 1970년대에 야무지게 미래지향적 자세로 기업의 토대를 닦은 그라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만약 사카린 옥고 후 손에 쥔 큰 자금으로 개인의 만족이나 추구하며 노년(돌이켜 보면 그로부터 딱 16년이 물리적 수명으로 남아 있던 셈입니다)을 보냈다면, 오늘날의 유망한 효성중공업이나 한타가 과연 존재했겠습니까? 사람은 가도 그가 남긴 위업은 영원한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