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 / 갤리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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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 경제학의 지평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행동경제학이라며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만, 그 단초는 이미 게임이론 형성과정에서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즉,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동안에 다른 행위자는 어떤 사고를 진행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려를,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제약 룰로 편입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한 다면 어느 단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이미 논의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카너먼의 공헌이라면, 심리학적 기법과 확립된 명제를 경제학 기본 이슈에 전면적으로 적용하여, 거의 구조 전체를 바꾸어 놓은 쾌거를 이룩했다는 점입니다.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적입니다.

이 "하노 벡Hanno Beck"이라는 독일인 저자의 책은, 재미있는 필치로 그간의 성과를 대중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대중서는 이처럼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고 흥미로워야 하는데, 벡이라는 저술가는 그 점에서 대단히 빼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어요. 왜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해서, 그 상황이 요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트버스키(일찍 죽어서 불행히도 카너먼과 같은 영예를 누리지 못했죠)와 카너먼은, 어찌 보면 다소 짖궂은 방법으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상황이나 착시에 의해 달라 보이는 실험적 상황을 고안하여, 실험 대상자들이 명백히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에 대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합리성이 매 순간마다 배반당하는 이유를 두고, 인간 심리에 내재한 근본 성격에서 그 규명을 시도합니다. 귀납적 프로세스를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천재적인 직관능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이같은 우아한 해법과 명제의 도출이 가능했던 거죠.


"본전을 생각하면 전체를 잃는다." 이는 이른바 매몰비용sunk cost의 오류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이미 발생한 손실은 그저 기정 사실로 취급하고, 만회하려는 미련을 갖지 않고, 소위 "연결 회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본전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손실의 악령을 떨칠 기회마저 박탈된다는 결론이죠. 사실 정말 어려운 점은, 과연 어디까지가 매몰 비용이며, 어디서부터가 현재 유효하게 발생 중인 비용인지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매몰"이 일단 객관적으로 확정되었다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버리면 되죠. 일단 매몰이 확실한 후에도 미련을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연이 보유한 합리성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판단을 이어나간다는 결론밖에 안 됩니다.


왜, 수학적으로는 동일한 기대값을 부여하는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게임에 참여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는가? 저자의 설명은 명쾌합니다. 같은 절댓값을 가진다 해도(방향만 다른 벡터), 손실이 주는 비매력이 훨씬 큰 강도로 다가온다는 거죠. 이를 위험 회피 성향(risk aversion)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다른 말로는 부여효과(endowment effect)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둘 다 심리학 용어). 내가 가진 건 남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가치로 보이는 착시 현상이 그 배후에 자리합니다.


p45에 보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아하나, 나서는 건 좋아하지 않고, ...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사람은 농부일까, 아니면 도서관 사서일까,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 때에, "도서관 사서"라고 냉큼 대답하는 사람은, 휴리스틱에 근거한 추론을 행할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쉽게 말해, "어림짐작"에 불과하다는 거죠. 만약 독일 국민 직종 종사자를 다룬 통계가 있어, 도서관사서의 비율이 2%, 농부의 비율이 4%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답을 맞힐 확률은, "농부" 쪽이 2배나 높다는 거죠.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직업을 선택할 때, 과연 자신의 타고난 성향과 적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구 비율에 따라 무작위로 확률에 맡기는 식으로 선택할까요? 그 사람의 성격이 정말 위에 적힌 저대로라면,
그 사람은 실제로도 직업을 "도서관 사서"로 골랐을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이의 "적성"이나 "성향"에 대한 정보는, 단순한 짐작으로 이어지는 clue라고 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유력한 통계 지표의 하나입니다. 적성 같은 결정적인 정보는, 고작 짐작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조건부 확률로 모집단의 범위를 줄여주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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