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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와의 대화 -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입각한 강력한 리더십의 정체를 묻다 ㅣ 아시아의 거인들 1
리콴유 & 톰 플레이트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대담 형식의 책이 성공하려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상호 철저한 이해를 그 대화의 바탕으로 하거나, 아미면 둘 사이에 어떤 수준의 공감이 미리 두텁게 형성되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니면 예전 호메이니를 인터뷰한 마
이크 월리스처럼, 공감은커녕 상호 교차점이나 공감사항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인터뷰라야 최소한 보는
재미라도 생기는 것 아닐까. 무슨 말이냐 하면, 이처럼 서로를 전혀 모른다고도 할 수 없고, 처한 위치와 성장 배경, 개인적인
성향 따위가 워낙 다르기에 그렇다고 가뜩이나 사소한 공감대가 더 성장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실로 미묘한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하나는 인터뷰어로, 다른 상대는 그 질문을 받는 사람의 위치에서 진행하는 인터뷰가 과연 큰 과실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 말이다.
이
런 느낌이 책을 읽기 전이 아닌, 책을 다 읽은 후에 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이 그러했다면, 그
독서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런데, 정직하게 느낌을 다시 한 번 resume해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런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독서 후 느낌은 그 정체가 무엇일까?
분
명히 말하지만, 인터뷰어인 톰 플레이트가 분명 인간 리콴유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우선 리 전 수상과 상당한
나이 차가 나는데, 이는 그가 성장할 당시에 겪고 그의 성장 토양이 되어 주었을 문화적 배경이 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다름 아니다. 그
는 또한, 식민지로서 민감한 태도로 대할 수밖에 없는 영국에서 젊은 시절 유학을 마친 리를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그저 뼈속까지
뉴요커인 리버럴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그는 백인종이고, 인터뷰 대상인 리는 중국계의 피가 흐르는 동양인이다. 체형만 봐도 그는
통통한데다 느긋한 낙관주의자이고, 리는 깡마른 원칙주의자요 남이나 자신이나 흐트러진 구석을 참고 보지 못하는 규율의 사나이로
일생을 살아왔다.
이
런 두 사람이 만나서, 비록 이전부터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고는 하나 과연 얼마나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나의 이런
불안감은, 사실 플레이트가 <고슴도치와 여우론>을 대화의 화제 중 하나로 삼는 대목을 읽으면서 거의 극에 달했다. 리
처럼 자신을 세상에 둘도 없는 유니크한 존재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사람에게, 둘 중 어느 유형에 속하겠냐는 진부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일 거라는 짐작에서였다. 당연히, 리는 이 질문에 당혹스러움과 어이없음의 심경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플레이트 자신의 주관적인 묘사 중에서도 그런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게 드러나고 있다. 더군다나 자신을 여우도 아닌 고슴도치로 규정하려 드는 플레이트의 태도에서, 리는 거의 열등 분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암시한다. 내심 "녀석하곤, 쯧쯧... 살이나 빼야 머리가 돌아가려나.."하고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하
지만 이런 불협화음 중에 분명히 드러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과 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의 차이이며, 다른 한
편으로 서로가 너무나 다름을 민감히 인식하면서도, 어떻게든 상호 공존을 모색하려는 나름의 진지한 노력이다. 이 책은 물론,
인터뷰어 톰 플레이트가 주인공이 아닌, 대담 대상자 리콴유가 주인공인 책이다. 하지만 인터뷰어 역시 나름 거물급 언론인, 혹은
독자에게 스타급으로 인식된 그(우리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도 그의 이름은 자동 완성 대상인 검색어이며, 최근에는 반기문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로 더 관심을 받기도 했다)이기에, 그
의 개성은 리콴유의 그것 못지 않게 이 책의 재미 핵심을 이룬다. 이런 점에서, 골수에 유교정신과 효율성 추구, 혹은 엘리트정신이
흐르는 독재자 리콴유의 내심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다소 미흡했을지 모르나, 대신 호기심어린 눈으로 동양을 주시하는
서양의 평범한 시민의 시선이 극동의 영혼과 만났을 때, 어떤 파장과 주파수의 불꽃이 튀는지 정도는 재미있게 보여준 책 아니었나
싶다. 결론은, <재미있는 책>이었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