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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뒤낭, 그가 진 십자가 - 최초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일대기
코린 샤포니에르 지음, 이민주 옮김 / 이소노미아 / 2024년 12월
평점 :
프랑스 사람 앙리 뒤낭은 국제적십자사의 창설자이며 노벨평화상 최초 수상자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사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이분의 명예를 드높인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레프 톨스토이는 19세기에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에 이름을 떨친 문호였는데, 이런 분이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이후 두고두고 노벨 상의 권위에 누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앙리 뒤낭은 당연히 큰 상으로 그의 업적이 기려져야 마땅한 인물이었으며, 만약 다른 이가 받기라도 했다면 노벨상은 더 늦게 그 권위가 정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톨스토이와 앙리 뒤낭은 출생, 사거 연도까지 서로 똑같은 동시대인들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린 시절 위인전기에서 공중 보건 의료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우리는 영국인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이분의 생애에 대해 배웠습니다. 나이팅게일도 이분보다 여덟 살 정도 위이고 타계 연도는 이분과 같습니다. 남자애들은 적십자 설립이라는 뚜렷한 업적이 있으니 이분 편을 들고, 여자애들은 무슨 소리냐며, 크림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활동이 유명해졌기에 적십자 설립이 더 일찍 기초를 다졌다며 옹호했습니다. 이분이나 나이팅게일이나 모두 금수저 출신이고 구태여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신분이었기에 그 희생 정신과 행적이 더 주목 받는 건데, 다만 사회사업가들의 성향이 보통 그렇듯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마련하는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특히 앙리 뒤낭은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인해 일생을 궁벽하게 산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 p96 이하에 그 자세한 과정이 나옵니다.
저자 코린 샤포니에르부터가 스위스 제네바 사람이므로, 프랑스 본국과 알제리 식민 당국 사이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로 결국 토지 불하 신청이 기각되어 큰 재정적 충격을 받았던 이 시기(1850년대) 앙리 뒤낭의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한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뒤낭은 제네바에서 모친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사람은 출신 성분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마련인데, p52를 보면 에두아르 모니에, 프레데릭 모니에 형제와 마치 유관장 3인처럼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적혔습니다. 세 사람 다 프랑스 출신이고 독실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했으며 인류애 가득한 명분,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회합한 곳은 바로 제네바였는데, 여기는 수백 년 전 프랑스 사람 장 칼뱅이 이주해서 종교개혁의 열정을 불태우던 바로 그곳이기도 했죠. 지금도 적십자사 본부가 제네바에 있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023년 4월 SG증권사태라는 게 터져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소시에테제네랄이 한국에서는 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한데, 무려 135년 전인 저 앙리 뒤낭이 40대였던 시절에도 소시에테제네랄이 또 좋은 일에 협조를 안 해 줍니다(p226). 물론 제가 농담을 하는 것이며, 이 책 각주에도 나오듯이 크레디 리오네라든가 SG 같은 곳이 워낙 업력이 오래된 금융기관이다 보니 역사 곳곳에서 별의별 일들과 다 엮이는 것입니다. 확실히 뒤낭처럼 인격은 훌륭하고 사회 실정에는 어두운 위인에게는 좋지 못한 작자들이 곁에 붙어 훼방을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선동정치가 루이 보나파르트가 삼촌의 위명을 빌려 제2제정을 선포하고 황제로 군림 중이었는데 워낙 그릇이 작은 작자였다 보니 뒤낭의 큰 뜻 실현에도 전혀 도움이 못 되고 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잔머리만 굴렸지 본질이 무능한 작자가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리 만무해서 프랑스는 우세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고, 파리에는 그 유명한 코뮌이 출현합니다. 패전에 더하여 이제 프랑스에서는 좌우 내전까지 터진 것입니다. p297을 보면 뒤낭은 동생 피에르에게 쓴 편지에서 이미 내전을 예견했다고 나옵니다. 역시 큰 인물답게 이런 정세의 대격변과 국난까지 다 내다본 것입니다. 설상가상이라고, 코뮌에서 발생한 혼란의 책임을 플라비니 백작은 뒤낭에게 돌리기까지 합니다. 뒤낭의 삶은 소인배들의 모략과 술수 때문에 몇 배는 더 힘들어졌는데 그의 평생을 두고 되풀이된 패턴입니다. 삼류 사기꾼들이 적반하장격으로 피해자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것도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유럽의 뜻있는 지사들이 고국으로부터 배신당할 때 항상 바다 건너에서 맞아주는 곳이 바로 런던입니다. p398을 보면 "프랑스인들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1885년에 그가 찾은 도시도 런던이었습니다. 세상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아니고 같은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그를 괴롭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레오니 카스트네르 부인만이 그의 곁을 지키며 도움을 주었으나 1888년 사망합니다. 이 부인도 나이팅게일처럼 뒤낭보다 여덟 살이 많았습니다.
뒤낭이 남긴 글들, 특히 다양한 서간문들을 빠짐없이 찾아 분석하여 합리적인 맥락에 따라 재구성한, 치밀함과 열정이 배어나는 멋진 평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