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마음 속에 오로지 긍정적인 감정만 가득할 수는 없습니다.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도 그들의 행적을 보면 악인들의 몹쓸 짓을 보았을 때 격하게 분노를 표출하곤 했습니다. 하물며 평범한 우리들이 언제나 차분하고 행복한 느낌만으로 우리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시기, 질투, 분노는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무엇인가를 행하는데, 저자는 이런 감정들도 일정한 기능이 있으므로 무조건 억누를 수만은 없고, 오히려 그 긍정적인 의의를 잘 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감정도 무시할 건 아니라는 정도의 소극적인 주장이 아니고, 이런 감정을 적극적으로 살려 내 인생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라는 적극적인 취지입니다. 

(*몽실북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대 로마의 귀족, 학자 들 중 중요한 비중을 지닌 일단의 인사들이 신봉했던 철학의 한 지류가 스토아 학파이며, 황제 철학자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이 철학에 기여도 하고 깊이 심취했던 인물이었습니다. p47을 보면 성공한 CEO 등이 요즘 부쩍 강조하는 게 "신 스토아주의"라고 하는데, 원래 기업가들이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기질이 진취적입니다. 진취적인 기질이야 남들이 따라하고 싶은 장점이지만 문제는 이게 지나치면 목표 달성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이들이 주장하는 신 스토아 주의는 그런 저돌적이고 성급한 마음을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마이크로팁을 담습니다. 고전 스토아주의는 프뉴마라는 "창조의 불"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의 원리라 믿었는데, 사람은 무엇이 이 세상을 관통하는 질서인지 깊은 사색을 통해 깨닫고 그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종류의, 마치 성인과 같은 감정통제형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성격의 목표인지에도 의문을 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 우리를 격동하게 만드는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건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성숙하고 초연하며 인생에 달관한 경지에 이르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지도 모르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그만큼 초인의 경지에 이를 수양의 기회가 주어질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나의 감정을, 설령 그것이 질투, 시기 같은 한심한 감정이라고 해도 이를 일단 긍정하고, 그 자원의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살리자고 독자들에게 제안합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정원에 벌레가 꼬인다면, 이를 독한 살충제를 써서 없앨 게 아니라(없어질지도 의문이지만) 그 벌레라는 걸 제 구실을 하게 잘 살려 오히려 꽃가루를 널리 퍼뜨리는 용도로 잘 써 볼 수는 없겠냐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과연 부정적인 감정을 이처럼 실용적으로 잘 길들인다는 게 말처럼 쉬울까? 일단 질투, 시기, 분노 등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나의 상태부터가 엉망이 됩니다. 오염, 비참화, 잠식(p89) 등이 아마 으리가 이런 감정들에 대해 들어온 부정적인 효과이겠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도, 이런 감정이 내 안에 생기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고 자제하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니체의 경우 그의 여동생이 열렬한 반유대주의자, 민족주의자였으므로 사후에 그의 여동생에 의해 내용이 많이 왜곡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p118). 그의 사상 핵심은, 지나치게 이성에 의해서만 행동하려 들면 결국 정신에 병이 들어 남도 나 자신도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내 자아를 올바로 작동하게 하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정당화(p132)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좋은 쪽으로 활용하려는 선택입니다. 

영어에는 green with jealousy라는 표현이 있는데 질투라는 감정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이 책 p177에도 그 표현을 이용하여 작가가 재미있는 말을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시기는 또 어떻습니까?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남과 비교해서 부정적인 내 자신을 낫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면, 또 이를 실천에 잘 옮긴다면 오히려 나의 발전을 자극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죠. p197에는 쌤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우리말 쌤통도 물론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독일어의 Schadenfreude를 옮긴 것이라고 본문 내 역주에 나옵니다. 저도 대략 십 년 전에 어느 독일 저자가 쓴 자계서에서 이에 대한 긴 논의를 읽은 적 있습니다. 요는, 이 Schadenfreude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면 폭발적인 동기부여로 전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게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정만이 내게 선물할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원을 나의 도약, 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냥 느껴라. 감정은 감정의 독자적인 삶을 산다는 점을 잊지 말라(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