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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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의 나라 프랑스로 건너가신 후 어언 20여 년 동안 거주해 오신 저자께서는 프랑스어의 달인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한국어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고 말씀하십니다(p213). 한 사람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어른이 되게 만들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어 온 네이티브 랭귀지라는 것의 힘이 그만큼이나 강한가 봅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는, 성년이 된 후 배우기 시작한 언어인 프랑스어를 저자께서 저렇게 능숙하게 구사하게 된 비결이 솔직히 더 궁금했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고교에서 제2외국어로 (그당시 분들에게 프랑스어와 함께 유이한 선택지였던) 독어를 공부하셨다는 말씀도 책에서 하십니다. 성장기에 아무 연도 없던 외국어와 친해지고 마침내 그를 통해 해방의 쾌감까지 맛보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3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제2언어는 컨디션에 따라 그 구사의 질이 달라지나 봅니다. "당신의 프랑스어, 오늘 무슨 일이지?" 저자는 이게 그 언어가 무의식까지 스며들지 않아서라고 말씀합니다. 달리 말하면,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순간 그 언어로 탄식하고 환호하고 신음할 줄도 알아야 어느 단계를 확 넘어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님처럼 해당 국가의 문화를 너무도 사랑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습니다. 이란의 어느 젊은 여성이, 구조도 어휘도 한 구석 닮은 데 없는 한국어를 두고, 그저 문화 컨텐츠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처럼 실력을 늘릴 수 있었던 사례를 봐도 이 점 확인 가능합니다. 

p75에는 "외국어 공부 최고의 방법은 그 나라 연인을 사귀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어 R이란 분과의 오랜 교제 이야기기 나오는데 이 역시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이성연인이 아니라 그저 동성친구(들)이라 해도 언어 익히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데, 이건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젊은 여성(주로 백인) 유학생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너무도 한국어를 그럴싸하게 해서, 불평하거나 푸념하거나 할 때 외국인의 육신 안에 한국인의 영혼이 그대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옆에서 보면서 저는 살짝 소름이 끼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부작용이, 저자께서도 말씀하듯 나의 언어 나의 생각이 아니라 그(그녀)의 언어 그의 프레임 안에 갇혀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긍정/부정을 넘어 이것이 언어의 힘 그 강력한 예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두 언어 사이를 오가는 일은 마치 손으로 모래를 옮기는 것 같았다(p106)." 그래서 애초에 번역이라는 게, 이미 다리 하나를 건너며 많은 느낌이나 맥락이 희생되고 왜곡되는 작업입니다. 해당 언어에 익숙해지면 또 구태여 번역을 거칠 필요도 없이 편안한 두번째 집에 머물면 되는 것이고요. p111에 보면 윤진 번역가님의 센스에 대해 저자께서 감탄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의 중요 주제 중 하나가 번역이라는 작업의 본질 탐구이기도 합니다. 이 이슈는 AI가 또한 얼마나,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주요 기준이기도 합니다. AI가 아직 수학 문제 풀이라는 벽을 그리 쉽게 넘지 못한다고도 하는데 과연 오랜 난제인 번역하고 어떤 걸 먼저 완성도 있게 해 낼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 책은 매 꼭지마다 프랑스어 문장을 제목으로 뽑아 독자들에게 생각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p150에는"Ne vous inquiétez pas, c'est par gout."라는 말이 나옵니다. 약간 뜻이 통하는 말로 영어에는 "There's no accounting for taste."라는 것도 있죠. 취향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자리잡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는 아무도 시원하게 해명못하고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비밀스럽게, 또는 대놓고, 이게 내 취향이라며 지인들과 함께 공유, 음미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자부심을 갖기도 하지만 점잖은 사람이라면 다 모른척해주고 넘어갑니다. 이 대목에서 소개되는 <타인의 취향>은 2000년 세자르상(프랑스의 오스카 격) 작품상 수상작이었죠. 프랑스에 그처럼이나 몰입했던 사람도, 알고 보니 "그 프랑스는 사실 예전의 프랑스이며 지금 프랑스는 더 이상 그 프랑스가 아님"을 깨닫고 허탈해지기도 하는데, 어디 이런 게 프랑스뿐이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나만의 취향, 나만의 착각이라는 강고한 성채 안에 갇혀 살 권리가 있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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