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조용필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레전드
홍성규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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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씨는 특히 1980년대에 각종 가요 차트를 흽쓸며, 그 시대를 살던 분들에게 가왕(歌王)으로 불리던 레전드 중의 레전드입니다. 저희 동네 수퍼에 가면 사장님이 매번 스페이스A의 1990년대 히트곡들을 틀어 놓으시는데, 아마 그 사장님에게는 스페이스A와 그 리드싱어 김현정씨가 가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특정 세대 전체에게 조용필씨는 거의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의견이 일치되다시피하는 당대 최고의 가수이겠으며, 이 책 중에도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한국을 넘어 아시아 일대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현지 공연도 자주 갖던 아시아의 스타였습니다. 한류 열풍이 일기 전부터 그는 한류 스타였던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조용필씨는 전형적인 가부장적(p65), 권위주의적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화성에서 가장 큰 정미소를 운영하는 등 비교적 넉넉한 환경이었던 듯합니다. 그 형제, 자매분들은 준수한 성적으로 무난한 대학교에 진학하여 평판이 나쁘지 않은 직장을 잡고 모범적이며 안정적 삶을 살던 분들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가정에서, 그는 타고난 끼를 숨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가출하여 미8군 기지를 전전하며(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음악가가 되길 꿈꿨습니다. 

무슨 클래식 음악도 아니고, 아들이 대중음악을 하겠다는데 당시와 같은 시대상에서 어떤 아버지가 그런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요즘이라고 해도 아들이 연예인을 하겠다면 대부분의 부모가 걱정할 것입니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시작해라. 그다음에 정 안 된다면, 그때는 네가 원하는 대로 음악을 하면 되지 않겠니." 이렇게 달랬는데도 청년 조용필은 오불관언이었습니다. 이 정도 단단한 결의가 있어야 큰 인물이 되는가 봅니다. 누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과연 가왕(歌王), 아시아의 스타만큼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조용필씨는 엄청난 노력파입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작곡 실력만으로도 큰 돈을 벌고 명성을 쌓을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가수라면 어느 정도 노래도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김정수씨한테 노래 실력을 지적받은 후에 그는 한 주전자 분량의 피를 쏟아가며, 마치 반 고흐가 고갱에게 귀를 잘라 던졌듯 자기 실력을 증명하려 들었다는 말도 전해 옵니다. 이 책 p88을 보면, 1983년에 조용필씨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오백년>을 부르고 나서 기자들이 다소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 조용필씨는 자신이 이 곡을 취입하기 위해 한국의 명산대천을 다 찾아다니며 명창들에게 창법을 배웠다고 기자들에게 발언합니다. 그제서야 기자들은 감탄하며 "혼(魂)의 소리, 다이내믹한 사나이, 작은 거인" 같은 수사(修辭)로 그를 평가했다고 하네요. 현대의 한국인 젊은 세대가 들어도, 조용필씨의 창법에서는 뭔가 엄청난 노력, 집념 같은 게 느껴지며, 창법 자체의 기교적 우수함보다 그런 초인적 노력의 흔적에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 가수라고 해도 콘서트 티켓을 완판시키고, 두 시간 남짓한 동안 자기 히트곡만으로 꽉 채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입니다. 물론 조용필씨야 1980년대 어느 공연장이라도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매진시켰지만, 일본에서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인들이 어떻게 지난시절 그의 히트곡들을 알겠으며, 보조 출연자들의 공연이나 막간의 눈요기도 없이 그저 그의 노래만 들으러 찾아오겠습니까. 그런데도 조용필씨는 일본 공연에서 관객둘을 사로잡았으며, 일본인 관객들과 공연 중 소통하기 위해 일본어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나옵니다. 그는 어떤 분야이건 한번 마음을 정하면 무엇이든 집중하여 해 내고야 마는 무서운 집념을 가진 사나이였습니다. 

조용필씨는 히트곡 목록을 따로 정하기가 힘들 만큼, 그의 정규 앨범 타이틀곡만 모아 놓아도 바로 베스트 앨범 몇 개가 나올 판입니다. p136을 보면 위대한 탄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용필씨는 내내 솔로 가수로 활동했다기보다 특정 시기에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를 이끌던 가수이기도 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씨(고인이 되었습니다), 김종진씨도 한때 이 밴드에 몸을 담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밴드에서 주도적 역할(물론 리더는 조용필씨지만)을 초창기에 한 사람 중에 김희현씨라는 분이 있는데, 나이 많은 분들도 김희현씨라고 하면 잘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이 책 p137 등에 그 설명이 자세히 나오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p167을 보면 "요즘처럼 싱글로 음반을 발매하는 게 아니라 LP 앞뒤를 꽉 채워야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음반산업 초창기에는 싱글이 주류였으나, 기술이 발전하며 LP판이라는 게 나와 20세기 중반에는 가수가 10~12곡 정도를 채워서 내는 게 보통이었죠(판 이름이 괜히 "앨범"이겠습니까). 요즘은 다시 패턴이 바뀌어서 싱글 위주이며 정규 "앨범"이라는 게 진짜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정도지만 말입니다. 대전 블루스,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부산항에 등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명곡들이 많지만, 이젠그랬으면좋겠네라든가, 여행을떠나요 등 후배 가수들이 끝없이 리메이크하는 곡들도 꽤 됩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조용필만한, 시대를 통째 대표하는, 작사작곡에도 두루 능했고 최신 트렌드를 잘 간파한 거물 아티스트는 좀처럼 다시 나오기 힘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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