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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이주량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4년 10월
평점 :
옛말에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고부가가치 생산으로 경제 구조의 중심이 바뀐 지금 농업의 가치가 퇴색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농업은 첨단 기술의 수렴점으로 서서히 성격이 바뀌어 점차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학 비료의 개발로 생산량이 급등한 게 20세기 초의 일이며, 종자 개량 등 이른바 녹색혁명(p105) 이후 인류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식량을 조달할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건강과 웰빙 등 새로운 이슈가 부각되면서 농업은 새로운 진화 단계을 맞게 되었습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도 "잘만 지으면 농사는 매우 수지맞는 사업"이라는 평가를 생전에 남겼습니다. 저자 이주량 박사님은 한국과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으시고, 현장과 실험실을 두루 거친 경력에사 우러나오는 비전으로 한국 농업의 미래를 개관, 통찰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선물 옵션 등 이른바 파생금융상품이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 같지만 이 책 p78을 보면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 전쟁 근방인 1865년에 이미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선물 계약이 표준화했다고 나옵니다. 계약이 표준화하면 규격이 갖춰진 상품화로 성큼 다가서는 것입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1941년에 창작되었는데도 이미 군산 미곡 시장 일대를 배경으로 일종의 선물 거래를 주요 화제로 초두에 잠시 등장시킵니다. 사실은 농산물이야말로 기후, 작황, 지정학 리스크 등에 따라 수급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어느 상품(주식이나 채권)보다 훨씬 선물 계약이 발달할 여지가 큽니다. 선물이라는 게 애초에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마련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노름꾼들의 개입은 두번째 문제입니다.
"미국의 곡창지대는 신의 선물이라고 불릴 만큼 완벽한 조건을 자랑한다(p99)."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며, 북미 원주민들이 농업에 적게 의존했던 사실만 봐도 알듯 관개 시설이 갖춰지지 못하면 최악의 지형 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 등이 농업을 일찍 발전시킨 사실과 대조됩니다. 유럽 이주민들이 북미를 농업 천국으로 바꿔 놓은 공로는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p101을 보면 미국에서 농무부가 두번째로 큰 부서라는 게 강조되는데, 이런 사실을 보면 미국이야말로 농자천하지대본이 어울리는 나라 같습니다. 중국도 미국에 압력을 넣고 싶으면, 돼지 사육 때문에 수입하는 옥수수를 놓고 레버리지로 사용하는 게 다 이 때문입니다.
p144를 보면 우리 나라 GDP에서 농업의 비중은 60조, 대략 2% 정도입니다. 저자의 설명대로 2%면 아주 미미한 위상 같습니다. 과거 개발 도상국 때는 30%를 넘나들었던 점과 대조됩니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대로,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1차 산업이 이 정도 비중이므로 딱히 이상할 건 없습니다. 또 한국이 21세기 들어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베팅으로 반도체 생산이 단기간에 급증한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이른바 전방 농업 부문입니다. 농업은 전통적으로 후방 산업으로 알려졌는데, "전방" 농업이라니 무슨 뜻일까요? 책에서는 마데카 화장품, 냉동김밥, 삼양에서 나온 불닭볶음면 같은 걸 예로 듭니다. 이런 전방 농업의 규모는 대개 200조 원 가깝다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p165를 보면 알 수 있듯 세계적으로 이름난 농산물 브랜드도 많고 그 예로는 한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 인기를 끄는 제스프라 키위, 선키스트 오렌지 등이 거론됩니다. 이 브랜드들은 6차 산업이다 스마트농업이다 하는 말들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떴던 것들입니다. 이것만 봐도, 농산물이 포지셔닝만 잘 되어도 얼마든지 시장에서 히트상품으로 떠오를 수 있음이 확인됩니다. p225에서 호날두 같은 선수 한 명이 나오기 위해, 전세계 수십만 명의 그저그런(?) 유소년 선수들이 있어 줘야 한다는 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상추니 쌀이니 하는 것들이 비록 겉모습은 예전 농산물과 비슷하더라도 맛이 완전히 달라졌다 할 만큼 그 품종이 개량되었으며, 많은 연구진의 노력과 자본의 투입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p254에서는 DDT의 예를 들며, 한때 기적의 물질로 여겨졌으나(질병 퇴치, 병충해 박멸) 그 부작용이 속속 발견되며 마침내 금지 조치에까지 이른 상황을 설명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물질을, 예컨대 한국전 당시 피란민들에게 미군이 마구 살포하여, 나이 많은 분들 중 그때의 불쾌감을 아직도 회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남극에는 DDT가 반입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펭귄에게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환경 오염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하며 통제하기 어려운 이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선진 농업이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며, 그 필수 경로점에 환경보호라는 절대 가치가 놓임도 다시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