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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평점 :
미국 미스테리 장르물에서 가장 친근한 소재라면 사설 탐정의 좌충우돌, 영화 등 모험 사업 현장에서의 삐걱거림, 그리고 셀럽의 죽음 등입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소재로 대중장르물에서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가 가능한 건 오로지 미국뿐이겠다 싶었는데, 지금 우리 나라 모습을 보면 이런 쪽에서는 오히려 일본을 능가합니다. 거꾸로 20세기 들어 미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영국 작가가 쓴 이 작품을 읽고 느낀 건,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호손 시리즈 같은 게 나올 만하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온갖 연예인, 셀럽, 인플루언서 들이 대중과 접촉하고 희한한 화젯거리를 만들어내며 때로 미심쩍은 인명 희생까지 빚어지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첫째챕터 씬#27을 보면 영화촬영현장이 얼마나, 더군다나 야외촬영이라면 온갖 애로사항이 돌발적으로 꽃피는지 잘 나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앞으로는 AI가 매우 정교하게 생성하는 그래픽의 위력 덕분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가 잘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이제는 CG에 매우 질려합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현지에서 찍는 건데(언론에 노출하여 토픽도 의도적으로 생산하고), 이 역시도(바로 이 소설에 잘 나오듯) (별 의미도 없는) 지출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영화 산업은 그저 가오에 죽고사는 대사업가가 돈 버린다 생각하고 주변의 찬탄을 즐기는 맛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 주변에서 양심없는 스탭들이 눈 먼 돈 "줏어들 먹는" 풍조도 어디나 비슷하고 말입니다.
미국이나 우리나 능력은 부족하고 양심은 더 부족한 변호사들이 제도의 맹점에 편승하여 가뜩이나 더러운 판을 더 더럽히며 공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있던 질서도 더 어지럽힙니다. 이 소설에도 별의별 희한한, 타락하고 배배꼬이며 나쁜 쪽으로만 혈안이 된 변호사들이 몇 등장하죠. 소설을 다 읽어 보면 애초에 이 변호사라는 작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만큼 꼬이지도 않았겠다 싶을 건데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없던 새 사건까지 만드는 판이니 말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영미(중에서도 특히 미국) 장르물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양념, 전채, 디저트, 코믹 릴리프, 나아가 메인 디시가 바로 탐정이라는 직종입니다. 한국에서는 그간 흥신소가 준불법이었기에 양지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으나 이제 법제화가 허용되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 인식될지가 관심 대상이죠. 미국 장르물의 탐정들은, 어떤 경우 대단히 경박하고, 어떤 때는 귀족적이며, 어떤 때는 범죄자와 다를 바 없이 타락한 속성이었습니다. 호손은 경우 전에 형사였고 지금은 개인 영업이니 former or turned 공히 detective입니다. 그 성격은, 마치 현대 일본 장르물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처럼 예측불허형입니다. 작가 호로위츠(실물)가 우리에게 처음 이름을 올린 홈즈물(현대판)의 그 주인공과는 아주 대조적이죠.
호로위츠(실물 작가)는 언제나처럼 작품 중에서 self-referential한 스타일을 구사합니다. 작가는 미국에서라면 이미 영화제작 등 다른 인접 분야에 한 발 들여놓고 활동을 겸업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를테면 p138에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죠. 작가란 확실히 스릴 넘치면서도, 여성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즐겨받고 때로는 도에 넘치는 갈채를 받는(본인은 그렇게 생각않는) 그런 직종입니다. 대개는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을 나와, 이런저런 여성들과 염문도 뿌리고, 그러다 오지게 사고를 쳐 신불자가 되고... "그녀는 정말로 일요일 저녁에 린드허스트 부근의 외딴 오두막집에 있었을까?(p191)" 당연히 그에게 먼저, 대뜸, 들었어야 할 의심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호손. 도우려는 사람이지(p241)." 그 말을 지금 새삼스럽게 하는 호로위츠(캐릭터)나, 이런 말을 새삼스럽게 상대방에게서 구태여 꺼내게 만드는 디텍티브 호손이나 참 답답하고 코믹한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호로위츠의 작품들에서 독특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게 이런 불완전한 허점투성이들이 풍기는 매력이며 독자에게 선사하는 재미입니다. ㅎㅎ p354에서 호로위츠는 느닷 봉변을 당한 후에도 그답게(?) 해학적인 상황 해석을 늘어놓는데 눈치빠른 독자는 벌써 여기서 사건이 어떤 결말을 향해 치닫을지 감 잡았을 터입니다. 전개가 스피디하면서도 수다스럽고 아마도 영어 원문으로 읽었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호로위츠-호손 요철 듀오의 본격 활약상이 기대되는 두번째 작품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