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입니다! - 다시 쓰는 슬램덩크
민이언 지음, 정용훈 그림 / 디페랑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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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 앞면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글쎄,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나는 분들도 있겠고, 과연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기는 했는지 회의가 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나름의 열정을 불태워가며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때가 있었겠고, 자신만의 슬램덩크를 멋지게 성공시켰다면 그게 바로 영광의 시대가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슬램덩크>는 일본 (고전) 지면만화이며, 이 컨텐츠를 즐기며 성장했다면 지금 아마 중년 정도의 세대일 것입니다. 1994년에 이미 극장판 애니가 개봉되었으나, 작년(2023) 초에 새로운 줄거리와 해석을 담은 극장판이 또 나와 한국 특정 세대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습니다. 명작은 이를 보는 독자, 관객에 의해 여러 시각으로부터의 몰입과 공감이 가능하다는 게 하나의 특징인데, 민이언 저자는 작품 <슬램덩크> 하나를 두고 그여러 대목에서 다양한 교훈과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만화든 애니든 <슬램덩크>를 재미있게 본 이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수긍하며 읽을 수 있는 인생론이라 하겠습니다.   

강백호는 왜 서태웅을 싫어하는가? 답은 저자가 생각하시는 바와 우리 독자들의 답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p32에 나오듯 강백호는 채소연을 좋아하고 이 채소연은 서태웅을 짝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엇갈린 화살표의 장난이 끼어들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이겠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존재케 한다." 마치 김춘수의 시 <꽃>의 한 행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비로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양자역학 교과서의 한 챕터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게 하고자 시작했던 일(p34)"은, 강백호의 경우처럼 결국은 (예상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귀착하게 되는데, 이는 스타 농구선수 아닌 평범한 우리들의 인생에도 두루 통하는 이치이겠습니다. 

"날 쓰러뜨릴 생각이라면 죽도록 연습하고 와라!(p72)"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강백호를 향한 윤대협의 대사입니다. "나타나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 줄 것 같은 사람(p74)." 저자는 <슬램덩크>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다는 평가를 <드래곤볼>에 대해 내리는데 저 대사도 <드래곤볼>이 그 출전입니다. 센도 아키라[仙道 彰]가 저 윤대협 캐릭터의 일본 원작 이름인데, 그 뜻을 생각해 보면 윤대협이라는 현지화 개명도 그럴싸하게 이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누구의 인생이건 간에 발전을 위한 자극제라는 게 있어야 하며, 이런 상의 저런 하의를 갈아입건 말건 옷 밑에 놓인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김수겸, 이달재, 송태섭 등은 <슬램덩크>의 애독자였다고 해도 잠시 헷갈리거나 그 이름을 잘못 기억하게도 되는 조연들입니다.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게 조연도 아닌, 모두가 북산인 그들." 저자의 평가입니다. 저는 "그렇게 조연도 아니"라는 저자의 저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생각해 볼수록 <슬램덩크> 특유의 인물 비중 배분 방식을 잘 표현한 말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실생활의 어떤 조연도, 그냥 조연인 것만은 또 아닙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들 모두가 다 저 이달재 같은, 무시받고 싶지 않은 조연들, 그렇다고 주연은 또 아닌 그런 역할과 인생들이라서겠는데 마침 저자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고 있네요.   

"왼손은 거들 뿐(p174)" 이 표현은 슬램덩크 독자가 아니라도 알 만큼 유명한데, 저자는 이를 두고 근접설 같은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합니다. 특정 동작이나 절차가 꼭 특정 성과를 내는 데 논리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게 아닌데도, 어떤 운동선수들은 어떤 루틴을 반복하고 나서야 플레이에 임합니다. 이게 아무 의미없고 때로는 우습게까지 보여도, 어떤 미세 조정을 두뇌와 몸의 근육 단위까지 마치려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선수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도, 이걸 거쳐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직성이 풀리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이걸 알아채고 존중해 주는 직장상사, 동료, 배우자가 고마운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광 시대는 언제였나요?" 이 질문에, "난 바로 지금입니다!" 같은 대답이 바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 행복하다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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