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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영어 필기체 손글씨 - 의사 & 만년필 유튜버 ‘잉크잉크’의 영어 필기체 잘 쓰는 법
잉크잉크 고민지 지음 / 시원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저자 고민지님은 현직 의사이며, 영어 필기체 잘 쓰는 법을 유o브 본인의 채널에서 가르치기도 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요즘은 뉴미디어의 시대이며,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를 유o브에서 검색하면 이처럼 그 분야에 정통하신 분이 영상으로 가르쳐 주기도 하니 배움에의 열의만 있다면 뭐라도 새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세상인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수백 년 전 유럽, 미국에서는 원거리에서 주로 서신을 통해 의사를 주고받았으며(동아시아도 물론 사정이 비슷했죠), 이때 편지지에 쓰여 발신자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차 매개는 바로 글씨체였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먼, 율 브리너 주연 영화 <아나스타샤>를 보면, 집사장이 편지를 정리하며 모 귀족 자제의 필체를 보고선 "글씨 쓴 꼬락서니하곤..."이라며 당사자의 인격까지 함께 깎아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키릴 문자이긴 합니다만). 과거에는 그처럼, 세련된 필체 자체가 그 쓴 사람의 교양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으니 서양에서 영어 필기체의 능란하고 우아한 구사가 얼마나 주목 받는 능력이었겠습니까. 우리 동아시아에서도 신언서판이라 하여, 훌륭한 필체는 인재의 레벨을 매기는 중요 척도 중 하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나 모바일로만 의사소통을 하기 일쑤이니 필체를 다듬을 시간은 더욱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우선 책의 편집에 반했습니다. 일단 이 책은 사철제본입니다. 사철제본은 책이 갈라질 걱정 없이 쫙쫙 펼쳐 볼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책등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책장에 꽂아 넣을 때 보통은 모양이 좀 안 난다는 건데... 이 책은 겉에 두꺼운 종이 커버를 한 번 더 둘러서 책등도 (예쁘게 잘) 보이고, 보관성도 뛰어납니다. 책의 주제가 주제다 보니 제책을 이렇게 했겠으나, 저로서는 처음 보는 편제이기도 했고, 디자인도 예뻐서 일단 책만 봐도 필기체 공부 의욕이 절로 난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영어 필기체를 제가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책 p28 이하를 보니 그때 생각도 났는데... 특히 이동선을 그릴 때 글자와 글자를 연결해 주는 "이동선"에 대해, 불룩하게(또는 오목하게) 올라가기(또는 내려가기) 개념을 잡아 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필기체 글씨가 안 예쁘게 보이는 주 원인이 바로 이 연결선의 미흡합 처리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또, 저자께서는 p30에서 m, n, u 등을 번갈아 반복할 때 이 이동선의 기능이 중요해진다며 따로 강조까지 합니다. "자연스럽게 모양을 바꿔 주는 기술"에 대해서도 저자는 방점을 둡니다.
p61을 보면 고난이도 강습이 하나 나옵니다. ws, bs는 아마 명사의 복수형, 또는 동사의 3인칭 단수형 등에서 쓰이겠으며, br 등은 따로 경우를 지적할 것도 없이 두루 쓰이지만, 저자는 순전히 글씨체의 관점에서 이들 철자가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음선이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는 것에 비해, 이들 경우는 이음선이 높기 처리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여태 제가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원리를 일러 준 후, 이에 해당하는 단어 예를 집중적으로 나열하며 4선지에 반복해서 써 보게 합니다.
저자 잉크잉크님(유o브 계정주명)의 취향 단어라고 해서 p135를 봤더니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 <전쟁과 평화>, <호밀밭의 파수꾼> 등 명작 제목들이 나옵니다. 이들 중 <죄와 벌> 같은 것은 몰론 영문학 작품이 아니라 러시아어권의 명작이지만, 영어는 또 위대한 게 훌륭한 번역가들이 포진해 있어 이들 외국 고전을 유려하고 적절한 영어로 옮기기도 하는데 이 번역작(들) 또한 그럴싸합니다. <Crime and Punishment> 같은 건 하도 익숙하여 원래 영어 작품인가 싶기도 합니다. 문학 작품 제목말고 영화도 있는데 <대부(The Godfather)> 같은 게 눈에 띄네요.
p174 이하를 보면 잡스의 명연설문 일부를 인용하여 필기체로 따라쓰게 합니다. 생전 잡스의 철학이나 경영방침에 일일이 찬동하지는 않았던 독자라 해도, 이렇게 멋진 필기체로 쓰인 그의 말을 보니, 없었거나 오래 잊혔던 존경심 같은 게 느껴지는 듯도 합니다. p202 마지막에 쓰인 저자님의 격려사를 보니 필기체 연습은 단기간에 끝날 게 아니라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