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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TTON 더 버튼 - 동대문 단추왕 유병기 대표가 알려주는 단추의 모든 것
유병기 지음 / 라온북 / 2024년 7월
평점 :
우리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동대문시장은 한국의 산업계를 선도한 본진이었습니다. 1980년대 외국인들이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슬슬 호기심에 입국해 올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동대문시장이었는데, 한결같은 반응이 "싸면서도, 예쁜 옷이 많다"였습니다. 그런데 옷 중에서 그리 눈에 확 띄지 않으면서도 중요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바로 단추이며, 이상하게도 단추라고 할 때보다 버튼이라고 할 때 뭔가 무게감이 더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 유명한 동대문시장에서 단추왕으로 군림한 유병기 대표가 저술한, 단추, 단추, 단추의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제가 책을 읽고 정말 놀란 건, 단추의 종류가 세상에 이렇게 많았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종류가 많은 정도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유대표님의 책을 보면 이 단추라는 게 하나의 체계를 이룹니다. 기능과 형태에 따라 어떤 큰 분류를 이루고, 그 세부 기능이나 모습의 살짝 바뀐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하위 분화가이뤄집니다. 마치 단추의 왕국을 보는 듯한데, 왕 밑에 공작, 후작 등등 하여 하나의 위계가 있고 그 밑에 기사, 종자 등 다채로운 계급이 또다시 형성되는 등 흥미롭습니다. 물론 책에는 이런 단추의 기능과 모습을 모두 보여 주는 컬러 사진, 또는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우리가 사출이다, 혹은 에칭이다 하면 이게 혹시 반도체 공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단추 만드는 정밀 제조 과정을 설명하는 p78 이하에 이 용어들이 사용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새삼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우리가 혹 옷을 거칠게 다루다 떨어져나가도 아무 미련없이 지나치던 단추들이, 공장에서 비록 대량으로 생산되는 부품이지만 이처럼 정성어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어렸을 때 혹 밥알을 흘리면, 학교에서 "이것은 농부들이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을 뻗어 수확한 것"이라며 그 안에 스며든 가치를 지적해 주곤 했죠. 이 책에서 단추에 대해 유 대표께서 상기하는 점도 그것과 비슷했다고나 할까요.
단추 중에서도 캐스팅 단추라는 게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p92 이하에 나옵니다. 재료 선택, 금형 제작, 재료 주입, 냉각 탈형 등 뭐 정밀 기계 부품 제조 과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캐스팅 단추의 장점에 대해, 저자는 그 재료 선택의 폭이 넓고, 디자인이 더 다양하게 뽑힌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단추만 있는 건 아니고 수가공 제품도 있는데, p105 이하에 8단계에 걸친 그 제조 공정이 설명됩니다. 산업 혁명을 18세기에 거치고도, 세상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품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정성이 일일이 손을 통해 전해진, 명품 아닌 명품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p141 이하에는 베스트라는 상의 아이템이 있는데, 이때 베스트는 vest라고 씁니다. 그 모양은 책에 나온 일러스트를 보면 아 저거!하고 바로 감이 올 만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보면, 베스트라는 상의 아이템 하나에도 그 문화(물론, 다양한 문화권들의 영향력들이 녹아든 것입니다)의 맥락과 정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스웨터라고 해도, 와펜, 심지, 안감 등이 조화롭게 어울려 하나의 멋진 외관을 이룸을, 저자의 치밀한 서술을 통해 문외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되네요.
책 제목은 단추이지만, 단추가 안 들어가는 어패럴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낸 복식의 위엄과 품위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