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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고양이를 끌어안고 통닭을 먹을 수 있을까
로아네 판 포르스트 지음, 박소현 옮김 / 프런티어 / 2024년 5월
평점 :
정말 상큼하고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위에 보듯 번역제목도 재치있게, 통통튀는 문구로 붙었지만, 영어 원제를 보면 의미심장하기까지 합니다. "Once upon a time we ate animals." 옛날 옛적, 우리가 동물을 먹던 날도 있었지, 정도로 옮길 수 있겠는데... 인류는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갖가지 혐오스러운 야만적인 습관에 매우 익숙해진 채로 살던 존재입니다. 역사책이나 다큐를 보면서 우리는 조상들의 몰상식하고 비위생적이며 한심한 행태를 보고 혀를 끌끌 차고, 이 정도씩이나 세련되고 안전한 환경과 방식으로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 대해 안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후손들도, 먼 미래에 지금의 우리를 자료나 미디어를 통해 관찰하며 "어떻게 사람이면서 같은 동물을 식용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라며 경악과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책의 저자는 비건인이며, 비건인으로서의 삶과 스타일에 대해 유머러스하고 귀엽게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이겠습니다. "세상에, 아니 육식하는 분이셨어요?" 실제로 이런 분들이 주변에 늘어남에 따라, 대체육 생산 등 전에는 없던 산업이 생기기도 하고 주식 투자자들에게 뜻밖의 수익을 주기도 하는 것이겠습니다.
p64에서 저자는 이른바 마녀사냥에 대해 언급합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보면 증거도 없이 떼로 몰려들며 단 하나의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고, 단죄하고, 파문하고, 린치하는, 매우 반지성적이고 퇴행적인 행태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사냥"에 가담한 대중은, 그때만해도 엄청난 정의감을 딴에는 발휘하며 "마녀"의 단죄에 신심으로 참여했을 터입니다. 저자가 이 대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善)에 대한 기준과 판단, 합의는 시대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나친 윤리상대주의로 흐르는 결과도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지금 옳다, 혹은 그르다고 믿는 바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하리라고 믿는 건 곤란하다는 겁니다.
p82에는 대부분의 우리들의 불편해할 진실이 또 지적됩니다. 육식인(이 말도,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는 마치 "비장애인"만큼이나 어색하게 들리죠. 일단은요)이라고 해서 모든 동물을 식용으로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우습게도 지능이 낮은 동물, 그렇지 않은 동물을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나눠, 전자는 먹어도 되고 후자는 그러면 안된다는 식으로 선을 그어 그 나름의(빈약한) 구획을 지어 알량한 윤리감을 충족합니다. 그러나 식용으로 가장 보편적인 돼지의 경우 지능이 매우 높다는 건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돼지는 사람을 잘 따르고, 사람이 인위적으로 나쁜 환경에 몰아넣지만 않으면 제법 높은 수준의 청결도까지 유지합니다. 우리 선입견과는 매우 다른 동물인데도 인간의 사악한 식탐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죽는 게 저 돼지들인 셈입니다. 저자는 저 그릇된 지식들이, 인간의 인지부조화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프로파간다에 가깝다고 비판합니다.
버거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이며 고열량메뉴이기 때문에 비판의 표적이 되다시피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미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바쁘게 일하고 간단하게 허기를 해결하기에 좋은 혁신제품이기도 했습니다. 버거를 잃긴 싫고, 그렇다고 정크푸드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꺼려지는 미국인들을 위해, 팻 브라운(p148) 교수는 큰일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햄(ham)이 아니라 헴(hem)이 대신 들어간다는 이 채식 버거(말부터가 뭔가 형용모순 같습니다)는, 느껴지는 맛만 철분 비슷하게 육즙 흉내를 내어 육식을 방지하면서도 그 효과는 톡톡히 내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관에 부합하는 또다른 혁신 제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216 이하에는 도살장 박물관 견학기가 나옵니다. 사실 우리가 즐겨 먹는 많은 육식들이,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 다시는 해당 육류를 섭취하지 않게 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1906년에 업튼 싱클레어가 발표한 소설 <정글>은 미국 시카고의 어느 소시지 공장을 고발하며 현대인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식품 소비 기제에 길들여졌는지 통렬하게 고발한 적 있습니다. 육식은 그저 건강에 해롭기만 한 게 아니라, 그걸 섭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악의 번성, 확산에 기여하며 마침내는 우리의 윤리의식에까지 심대한 위해를 끼친다는 점,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가르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