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청춘이란? - 아픈 만큼 성숙하는 너를 위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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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세대는 <청춘은 아름다워라>라든가,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같은 번역 제목으로도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그 고전의 독일어 원제는 Schön ist die Jugend인데, 앞에 제시한 우리말 어구(들) 그대로의 뜻입니다(강조를 위한 도치). 지금 이 책은 그 고전은 아니고, 헤르만 헤세의 여러 수필, 산문 들을 한 권에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어떤 글은 <자전적 이야기>에서, 어떤 글은 그보다 앞서 발표된 다른 산문집에서 발췌했는데, 역시 거장의 작품은 이렇구나 같은 감탄이 절로 느껴지는 명문들입니다. "사자가 문 뒤에서 발톱 일부만 내밀어도 우리는 그게 사자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 중 어느 한 편의 산문만 읽어도 그게 헤세 같은 문호의 작품이겠음이 절로 짐작될 정도입니다. 길이도 짤막짤막해서, 독서에 큰 부담도 없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애독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그의 글에는 간혹 에로틱한 기술이 의외의 장소에 숨어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 이 책 제1장의 "첫 키스" 같은 산문도 그런데, 저도 읽으면서 약간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헤세 같은 문장가, 인생의 스승격 인물치고는 꽤나 의외인, 솔직함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술(記術) 뒤에는 약간의 자긍심 같은 것도 동기로서 작용했을 텐데, 우리들 중 누구라도 이 비슷한 느낌이나 경험은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말야..." 그런데 이 대목은 분명 충격적인데도, 선정적이라기보다는 다소의 애수(哀愁)를 풍깁니다. 헤세가 이 글을 쓸 때 그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 어느 시점에 대한 회고였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보면, 긴 개념을 하나의 약칭으로 줄일 때에는, 그렇게 하는 쪽의 어떤 검은 의도 같은 게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한 예로 드는 게,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을 "나치"로 간단히 줄인 것입니다. p19의 "소치스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사민당원을 가리키는 말인데 아마 이 말을 꺼낸 여성(아직 10대인데도 그 표현에 거침이 없는)은 못마땅하다는 의도였지 싶습니다(그 출신 성분을 감안할 때). 이 글에서 헤세는 스스로 밝히길 기계공 견습기간이었다고 합니다. 헤세의 독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고서점 점원 노릇도 했었는데, 이 책 p27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현대의 우리가 지레짐작하듯 그 일이 그리 mundane하게 취급될 직업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1911년의 황폐화한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우연히 만난 "신사놈"을 다룬, 다분히 환상적인 이야기(p39)는 헤세의 작품 중에서는 좀 예외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멀쩡한(그렇게 보였던) 신사가 끝에 가서 그 정체가 악마였음이 드러나는 식의 결말은 18세기 유럽 단편에서 그리 드물지 않게 봤던 처리이긴 한데 그 배경이 아일랜드의 늦여름임이 좀 특이할 뿐입니다. p68에 실린 <시인의 꿈>은 원제가 Der Dichter("시인")이며, 1913년에 발표된 단편입니다. 중국인 이름으로 세팅된 Han Fook는, 독일어에서는 oo가 장음 [o:]이므로, 이 책에서처럼 "한 포크"라고 읽힙니다(푸크가 아님).  

책 중반부에는 헤세의 인생, 고독, 젊음, 사랑에 대한 지론이 표현된 여러 수필이 이어집니다. 딱히 내용을 요약할 것도 없이,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명문입나다. "꽃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젊음을 지닌 사람이 훨씬 더 아름답다.(p131)." 우리가 흔히 인터넷에다 헤세의 명언이라며 찾으면 나오는 것들보다, 이 책에 실린 문장 하나하나가 (따로 요약,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더 멋집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곤 하는 헤세의 사진은 대개 그의 중노년 이후의 모습인데, 아무리 늙은 후의 용모라고 해도, 젊었을 시절 문학청년 같은 신비롭고 스마트한 매력이 거기에서 도저히 유추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온통, 이런 여성 저런 소녀들이 계층 지역 불문하고 젊은 시절 헤세에 이끌려 먼저 플러팅하는 이야기 투성이입니다. 이런 분한테도 그런 멋진 청춘이 있었구나 하고 믿는 수밖에 뭐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으며(p248), 대부분이 부질없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봐도, 어린 수도사 아드소에게 늙은 윌리엄은 "네 나이 때에는 그 불 붙는 듯한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 수 없다"고 차분하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왜 그리도 늦게 찾아오는 것일까요. 헤세도 이 책 곳곳에서 자신 역시 괜한 욕구, 번민 때문에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탄합니다. 우리가 헤세의 작품을 좋이하는 건, 부분적 실패자의 겸허한 고백을 정직하게 경청할 수 있어서도 그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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