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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평점 :
<동아리실>. 누구라도, 뭐 하나를 서투르게 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경멸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들 그 하나를 잘하거나 즐겨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그 모임에서 서투른 실력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앨리스는 바둑을 잘 둬서가 아니라 바둑판에 돌이 떨어지는 그 경쾌한 느낌이 좋아서 가입했는데(공감합니다), 그 남학생이 보기에(혹은 누가 보더라도) 실력이 나쁩니다. 그러니 그 남학생한테 경멸의 시선을 받습니다(혹은, 자격지심 때문에 그리 느낍니다). 저는 이 아주 짧은 소설을 읽고, 이리저리 무작위로 바둑을 두고 "그 판 위에 펼쳐지는 불가해한 모양(p40)"의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앨리스의 고백이, 사실은 남자애들(바둑을 다들 잘 두는) 사이에서 무시당하고 아무렇게나 다뤄지는 자신의 비참함을 즐긴다는 뜻이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말이 되냐고요? 그럼, 이기지도 못하면서 바둑판에 놓이는 (컬러도 아닌) 흑백의 돌 배열이 신기해서 바둑이 좋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사람의 기호, 취향 등도 다 말이 안 되는 것들입니다. "Taste cannot be taught."
"생은 우주보다 깊은 환각이다.(p42)" 사실 이건 화자의 단정이 아니고, 그 이상의 진술이 뒤에 따르지만 어느 정도 우리의 동의를 구하는 어투에서 알 수 있듯 유보부 진술입니다. 생은 (그 자체로는) 평면인데, 다만 사방으로 증폭되고 복제되는 종이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2차원 종이에 갇혔지만, 머리로만은 3차원 4차원을 끝없이 꿈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증폭 복제를 다른 계로부터나마 불완전하게라도 관측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주는 분명 유한한데도 무한처럼 광대(p44)하며, 그 와중에 유리수는 무리수가 될 수 없고 허수는 영원히 실수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소설 원문에는 실수가 아니라 자연수라고 되어 있으나 독자인 제가 임의로 고쳤습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입니다. 화자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여기서 화자는 "그"의 환각과 꿈을 놓고 특정 방향성을 탓하는 중이지만, 사실 그의 우주뿐 아니라 무슨 우주라도, 우주는 대체 너무 비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왜 좀 밀도를 갖추지 않고 그리 비어 있을까요? 이 질문부터 답이 이뤄져야 합니다.
구약의 요나뿐 아니라 피노키오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합니다. 물론 구약의 요나는 제발로 걸어들어간 게 아니고 구하는 것도 결국 본인(의 소명)입니다만. 그런데 p48 이하의 <고래의 뱃속>에서는 반대로 피노키오가 먼저 고래에게 먹히고 어디쯤 구하러 올 제페토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원작 소설과는 달리 여기서의 피노키오는 무척 차분한 성격이며, 제페토 할아버지의 본을 받았는지 예술가답기까지 합니다. 피노키오는 고래 뱃속에서 세상과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오롯이 예술에만 몰입할 수 있고 거짓말 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지금을 무척 사랑하는 듯합니다. 걱정되는 건 밖으로 구해지지 못할까가 아니라 혹시나 제페토 할아버지가 오다가 다치지나 않을까 정도입니다. 거짓말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피노키오는 시끄럽고 편견에 가득하고 지들이 더 거짓말쟁이면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안 보이니 세상 좋은 느낌인 듯 보입니다. 사실 19세기 말 콜로디의 원작에서는 고래는 다른 (착한) 역할이고, 상어 뱃속이 맞습니다.
p91 이하의 <교무실>에서 앨리스라는 주인공이 또 나오는데, 아까는 초등학교였고 지금은 유치원입니다. 그럼 얘와 아까 걔는 다른 애일까요? 뭐 잠시 유치원 시절을 회상하는 중일 수도 있으니. 그건 그렇고 요즘은 유치원에도 무려 교무실이 있는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도 또 앨리스는 학대를 당하는데 이번엔 애들로부터가 아니라 선생입니다. 아이한테 차마 못할 말을 하면서 못살게 구는데 그렇다고 독자가 너무 분개할 필요는 없습니다(놀랄 수는 있죠). 어쩐지 이 앨리스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게 못되는 것 같습니다. 하긴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도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아까 <동아리실>에서 앨리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어투였는데 지금 <교무실>에서는 뭔가 환각에 빠진 듯합니다. 하지만, 애가 학대를 즐기는 건 아까와 같습니다. 이것은 "가장 열정적이고 불온한 반항"이니 말입니다. 욕 먹을 만하네요.ㅋㅋ
앨리스는 아까 그저 바둑을 못 둬서 경멸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녀는 반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p153. <교실>) 정말 가지가지한다 싶었는데, 그래도 지금 독자인 제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같은 소설집에 실렸을 뿐 이 작품들이 연작 관계이거나 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물론, 예상을 뒤집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지만, 여기서 "더 못생긴 뉴페" B(대체 왜 이름은 밑도끝도없는 B일까요?)가 앨리스의 이름을 서투르게 불러 주고 나서 앨리스는 존재의 다른 국면으로 진입합니다. 그리고 앨리스 인생 처음으로 어떤 관계라는 게 시작됩니다. 그들은 이 제의를, 불쌍한 병아리를 믹서에 갈아넣는 걸로 채웁니다. 이제 둘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B가 트럭에 깔려 죽기까지는 말입니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B는 사실 애초부터 없던 애였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시시하게, 앨리스의 A 다음 문자 B일 뿐이지 않습니까. 여튼 앨리스와 B는 이제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단편 소설집인데도 1장과 2장이 따로 있고 2장의 소설들에서는 김현경이 대부분 주인공이며 이름이 명시적으로 안 나온 작품에서도 그냥 김현경을 주인공으로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심지어 요제프[p188]도 성별만 남자일 뿐 앨리스, 김현경과 마구 교차됩니다. 제겐 그랬습니다 . 어쩌면 김현경은 앨리스가 커서 변태(變態)한 인물일 수도 있는데, 여전히 환각 망상을 즐기며 모욕을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앞에서 고래 뱃속의 피노키오까지도 다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하긴 한 명의 김현경이 피노키오, 앨리스, 피터팬, 요제프, B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유년시절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감 투사했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