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행복수업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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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2021) 11월에 이어령 교수님과의 인터뷰책 <마지막 수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 적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어가 책 중에서건 책 밖에서건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던 김지수씨였는데 지금 이 책에서 니태주 시인과의 대담을 이끌어가는 분도 그분입니다. 출판사도, 같은 열림원입니다. 저자(인터뷰어) 서문 p10에도 이를 의식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름난 문인, 혹은 그 누구라도 자서전, 회고록 등의 형식으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아주 능숙한 누군가가 대신 자신을 밝혀 주고 표현해 주는 것도 멋진 일입니다. 

p19에 나오듯이 오히려 나이 든 층보다는 나이 어린 독자들이 나태주 시인을 더 알아봅니다. 내년이면 여든이신 시인인데 그 독자층의 연령이 역전된 느낌입니다. 김지수 기자님 표현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그의 시를 랩처럼 읊고 다닌다"는 겁니다. 연예인 중에도 연세가 드신 후에 대중 사이에 확 각인된 분들이 있는데, 독자인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나 시인께서 젊으셨을 때에는 교직 활동에 전념하시느라 창작에 온전한 열정을 쏟기 어렵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아니면 독자들이 늦게서야 그를 알아본?). p170에 보면 40대 중후반에 장학사를 지내셨던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데 상하권력관계로 구분되는 관료 사회의 생리에 대한 그의 분노가 표현됩니다. 

"좋아요라는 디지털 아멘으로 유지되는 서울(p21)"을 떠나 김 기자님은 시인을 공주에서 만납니다. 예전부터 교육의 도시로 유명했던 곳(마침 나 시인도 공주사범을 나온 분입니다. 현 거주지이기도 하고)이라서 인터뷰 배경으로 더욱 제격인 듯합니다. 나이 차를 떠나 태주, 지수로 호칭하며(실제 대담에서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인격 간 교유와 소통, 영향력 교역을 희망하는 김 기자님의 심적 세팅이 재미있습니다. p183에 보면 "태주는 가만히 노래하듯 시를 읊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 p78에서는 태주와 지수 사이(!)의 우정이 논의됩니다. 공주(公主)의 남자라든가 무수리가 왜 나오나 했는데 시인을 공주(公州)에서 만나서라는 데 생각이 비로소 미치니 김지수 기자님이 참 어린이 같다 싶기도 했습니다. 하긴 인생의 신산을 다 겪은 노시인 앞에서 누구라도 어린이이긴 합니다. 

저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왜 이렇게 "예쁨"에 대해 말이 자주 나오나 의아했었습니다. 물론 문학이란, 시란, 결국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발버둥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태주 시인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시구(詩句)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중략) 너도 그렇다"의 그 <풀꽃(p119)> 아니겠습니까. 이 시의 기막힌 포인트는 마지막 행의 갑작스러운 "너도 그렇다"죠. 

서문 p8을 보면 나 시인이 함께 떨자고 손 내밀어 줬다는 말이 있어서 무슨 뜻인가 했는데 본문 p46에 그 말이 나오더군요. 솔직히, 어떻게 보면 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나 시인께서 (좀 의외다 싶게) 마치 모든 질문에 대해 답들을 준비하고 사시는 분처럼, 때로 기발한, 심오한 답들을 척척 하시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시인들은 (독자인 제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에게 맞춰 주기보다 본인 감정, 사고에만 충실한 분들이 많다고 여겨서였습니다. 그런데 좀 바꿔서 생각해 보면, 뻔하고 진부한 질문만 했으면 나 시인께서도 역시 뻔한 답만 하셨을지 모릅니다. 인터뷰어가 이처럼 좋은 답이 나오겠다 싶은 질문을 하시니 명답현답이 뽑아진 것 아닐지. 

p30, p31을 보면 시인은 지난 세기의 윤동주, 김소월 두 시인이 왜 이렇게 국민적으로 유독 애송되는가에 대해 한국인의 눈높이에 딱 맞는 분들이라는 답을 하십니다. <새로운 길(윤동주)>이 인용되는데, 시인은 "한국인이 이런 밍밍한 시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취지로 골랐다고 하십니다. 밍밍하긴 하지만 김지수 기자도 말하듯이,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보면 그 특유의 리듬감이 참 좋습니다. 수미쌍관의 대표적 예죠. 

또 <윤사월(박목월)>은 참 좋지만 특수한 쪽으로 너무 갔기에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안 된다고 아쉬워하십니다. 두 작품 모두, 시인께서 젊으셨을 때 가르치셨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기도 하겠습니다. 특수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시각장애인이 등장한다는 이유에서? 눈먼 처녀니까 어차피 방문을 열고 밖을 봐 봐야 소용이 없고, 새 봄에 설레는 마음 달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건데 시상(詩想)은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러니 박목월 시인이죠. 아무튼 이런 언급으로부터 나태주 시인께서는 대중성이라는 덕목에도 주의를 기울이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p148을 보면 이상, 김수영은 위대한 발명자이며, 자신은 소소한 발견자라고 겸손해하십니다. 발명과 발견의 차이도 예전 국어 교과서에 어느 설명문 주제로 다뤄진 적 있죠. p121에, 생전에 "나 군"이라고 그를 부른 박 시인에 대한 회고가 있습니다. 

깨치지 못하면 외우기라도 해야(p276) 언젠가는 문리가 트이는지도 모릅니다. 시인께서는, 공부도 못하고 빽도 없는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과거 교사로서의 자신을 탓하십니다. "시인은 희극 배우이자 감정의 서비스맨입니다(p296)." 우리 시대의 시인은 예전과는 역할이 매우 달라진 듯합니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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