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머물다 떠난자리 들꽃같은 그리움이 피어난다
탁승관 지음 / 미래와사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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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표지를 보면 말 그대로 "노을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 정말로 "들꾳 같은 그리움"이 피어날 것만 같은 풍경입니다. 시집의 모든 작품들에는 창작 일자가 적혔는데, 아무래도 작품을 짓게 된 계절(적어도)을 알면 그 시의 분위기와 주제가 더 속깊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p63의 <단풍잎>을 보면, 추수의 계절, 페이브먼트나 오솔길 구분 없이 노오란 단풍잎이 깔린 정취가 그대로 독자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가을의 빗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다분히 허무감에 젖게 하는데, 결실의 철에 부족하든 넉넉하든 그 나름의 몫을 챙기는 내 손을 들여다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베고 누운/길 잃은 수많은 낙엽들이/빗물 속에 잠긴 조각배가 되어." 낙엽은 어쩔수없이 때가 되면 가지에서, 나무에서 떨어져 부엽토가 되어야 할 운명입니다. 게다가 빗물은 조각배처럼 낙엽을 띄우기는커녕 (위 시행에 나오듯이) 오히려 낙엽을 물 아래로 잠기게 합니다. 그래도 낙엽은 불만이 없는 것이, 물 아래 토양과 합류하여 썩더라도 뿌듯한 일을 해 냈다 여기기 때문이겠습니다. 

겨울에 내린 눈은 도시에서야 출근길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훼방꾼이지만 산길과 시골길에서는 꽃과도 같이 마음을 포근히 만드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눈[眼]에 눈[雪]은 눈꽃(p113)입니다. 그 꽃들은 새벽녘 산책길에 숲길을 밝히는 영롱한 광원입니다. 이 눈꽃과 걸음걸음 교감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시인은 비로소 시간의 깊은 의미를 되새깁니다. 눈은 이제 모두에게 꽃시계가 되어 태엽소리 없이 진로를 알립니다. 

세월의 강을 건너는 나그네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신의 시간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고 또 곱씹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오는 사람 마다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습니다. 시인이 이 가는 길가에 바라는 건 눈치없이 앞을 환히 밝히는 가로등이 아니라, 보일 듯 말듯 방향만 알려주는 수줍은 달빛 같은 동무입니다. 시인은 나아가, 자신 역시 누군가의 갈 길을 넌지시 알려 주는 노을(p132)이 되고 싶다고까지 합니다. 그 같이 가는 강물이, 물오리도 근심 없이 노니는 평안한 자연의 손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호기심(p150)이 아닙니다. 사랑에 빠진 당사자라 해도, 처음에는 이 격랑 치는 내 감정이 사랑인지 치기어린 호기심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이 감정이 그리움으로, 설렘으로 발전하여 가슴을 후벼판다 싶으면 그때서야 내가 지는 게임임을 직감하고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을이 겪는 달콤한 패배감을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그리움은 그 나름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래서 작은 낌새만 풍겨도 그(녀)는 쪼르르 달려갈 채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꽃망울처럼 가볍지만 마음에 영원한 흔적을 남기며 다가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모든 생명체는 숨가빠합니다. 태양은 우리로부터 1억 6천만 km 떨어져 있는데도 지표에 미치는 위력이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메마른 대기 속에서도 훈풍은 불어오며, 에어컨의 인위적인 냉풍보다 우리의 땀을 더 시원하게 씻어 줍니다. 결과가 빤히 예상되는데도 우리는 바람에 감사하고, 지표 위를 번잡하게 오가는 작은 생명체로서의 한계도 새삼 절감합니다. 세상에 알고보면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나그네에게는 잠시 숨을 돌릴 길가의 벤치마저 기다립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면 현대 한국의 도시화, 목가 풍경, 산과 물의 자분한 세(勢)가 파노라마(p142)처럼 펼쳐집니다. 풍경을 지나고 나면 차 안에서 터미널과 쉼터를 마주칩니다. 터미널은 번잡하지만 시인은 놀랍게도 그로부터 매연의 독기가 아니라 고유의 향내를 맡습니다. 이는 사람의 냄새이며 동시에 친지와 동기 사이에 얽힌 추억의 자취입니다. 오랜만에 사람과 자연이 하나됨을 포근히 맛보게 된 시집을 만났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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