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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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이 구절이 인쇄되었습니다. "누구세요 당신?/점점 젊어져서 죄송합니다/나는 사과와 토마토의 탓이라고" p35에 나오는 <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의 일부입니다. 사람이건 그 무엇이건 노화와 죽음에의 수렴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늙어 가는 통에 혼자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산다면 그 역시도 좀 미안해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 탓을 좀 해야겠는데, "거울이라는 속성의 눈동자에서 무한하게 자라나는 과일" 때문이라는 거죠. 이어진 시인 답게 여기서도 또 눈동자가 나옵니다. 예전 일제강점기 이상 시인 때부터, 거울은 뭔가 무한의 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빛의 속성이 반사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떤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습니다(물론 과일도 사람한테 베어먹히면서 따로 에너지를 제공합니다만). 그래서 사과가 있던 자리에 내가 있고, 내가 있던 자리에 토마토가 있게 되는 무한 반사, 무한 생성의 과정이 멈추지 않습니다. 

"한 잔의 잠과 장미 한 잎을 교환하고/한 컷의 꿈과 얼굴을 바꾼다.(p30)" 꽃이 과연 웃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 제목에 나온 대로 나무가 웃지 않는 건 확실한 듯합니다. 다만 "소년의 표정"이라고는 합니다. 한 컷의 꿈, 꿈에서 실컷 웃었으면 꼭 현실에서 웃지 않아도 되며, 현실에선 누구나 바람에 견디느라 웃을 여유가 없습니다. p15의 시 <잠의 나뭇가지>에서 정작 잠이라는 단어는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통에 잔잔할 날이 없는 나무에게 잠 속의 달콤한 꿈이 없다면 그 피곤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잠이 달콤하기에 나무의 표정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 변함 없을 수 있습니다. 

2장의 제사는 "장미의 팔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이었다"입니다. 주어도 없고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과거형도 아니고 늘상의 습관처럼 저지른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p91에는 "팔 잘린 소음"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늙은 장미의 가시줄기는 장미 이전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p51)"는데, 한창 때의 장미꽃이 그 이전을 기억 못 한다면 또 그러려니 해도, 이제 남한테 상처 줄 일만 남은, 보기에도 그리 살갑지 못한 늙은 장미가 그렇다니 차라리 슬퍼집니다. "견고한 철조망의 모습으로 늙어가는", "장미 이후의 삶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이제 여름날 빙수처럼 사르르 녹지도 못하는 그녀가 안타깝습니다. 

소년은 앞에서 나무의 표정 같다고 했습니다. 소년의 손은 작고 맑아서 장미 가시를 쥐어도 피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p54), 사실 피가 안 난다고 했지 안 다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나이가 어리면 크게 다쳐도 회복이 빠를지 모르겠습니다. 장미꽃을 피우려면 가시의 통증이 터져야 한다고도 합니다(p54). 장미의 향기에 취한 소년의 가시들, 아까는 늙은 장미만 그 활력을 다하고 앙상하게 가시만 남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소년도 가시를 품긴 하나 봅니다. 누구의 가시든 철조망과 닮았습니다. 소년은 기어이 그림을 열고 들어가 아주 커다란 꽃이 되기도 합니다(p145).  

"꽃집은 프리지어를 좌판에 펼쳐 놓고 바람을 흥정합니다(p82)." 다른 작품에서는 사과 안에서 호수가 자라고 머무는 걸 봤는데, 이 작품(<질주하는 계절>)에서는 별사탕 안으로 우리가 들어갑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먹던 그 달달하고 희고 작은 별사탕이 맞습니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게 가능한가 봅니다. p108에는 <어항 속의 당신>이라는 시가 나오는데 나의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항 속의 "당신"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열심히 헤엄칩니다. 

유목은 어느 방향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한 곳에 머물지만 않으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꿈에서 사슴의 뿔은 그저 더운 곳으로만 몰려갑니다(p122). 바람이 불어서 이리저리 날려다녀도 괜찮으며, 꽁꽁 얼린 채라도 좋다(p130)고 합니다. 눈물을 먹고 붉은 혀를 토해도(p80) 알고보면 다 도깨비 나라의 사정이라고 생각하니 별 걱정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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