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가볍게 - 인생에서 여유를 찾는 당신에게 건네는 말
정우성 지음 / 북플레저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날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열심히 땀 흘려 뛰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도 알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어 살갑게 대하기도 해야 하는데, 사는 게 워낙 힘들기도 하고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공연한 강박 때문에,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게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그(그녀)에 대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가능하면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서 같이 더 추억도 쌓아가고 알콩달콩 감정도 나눠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그녀)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혹은 데면데면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변할 사람 같았으면 벌써 변했습니다.(p22)" 아마 나 역시, 이렇게 돌아서 버린 상대의 상태를 벌써 알고 있었겠습니다. 그런데도 미련을 놓지 않는 건, 나 혼자 아직 감정을 유지 중인 게 억울하기도 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뻔한 현실에 애써 눈을 감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내가 추해집니다. 손해 보고 물러난다는 생각으로 질척거리면 본인만 더 추해집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헤어짐이 정답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답은 간단할수록 그게 정답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오해가 있으면 조속히 풀어야 합니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지거나, 관계는 관계대로 붕괴하고 나 자신의 마음에도 큰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도 "가벼운 오해라면 적극적인 해명으로 풀어야 한다(p50)"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그게 심각한 오해라면, 그래서 말 몇 마디로 간단히 풀기 어렵거나 반대로 불화가 더 크게 번질 가능성까지 있다면 어떨까요? 이럴 때에는 그냥 아무 말도 말고 상대에게 시간을 주라고 합니다. 상대도 (최소한의 말이 통하는 이라면) 내가 왜 침묵을 지키는지 생각을 해 볼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제가 참 각박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다툼이 생기면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려고만 했지, 그의 감정이 아물고 난 뒤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할 여유를 한 번이라도 줘 볼 생각을 했던가? 이런 배려를 벗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게 중학생 때였으니 삶이 참 메마르지 않았던가 하고 말입니다. p137을 보면 똑같은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애정 표현을 수시로 해 주라고 합니다(p86). 우리 한국인들은 구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의 소통 기술이 서툰 면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어도 내 주변에 날 진심으로 이해해 줄 사람이 하나도 안 남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랑한다는 진짜 내 감정을 제때 표현 못 해서 떠나간 이들을 두고 결국은 후회의 감정만 가득하다면 내 삶이 너무도 공허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사소한 것도 내가 아끼고 어루만지면 세상에 다시 없는 보석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원래 내가 다시 보기 힘든, 나에게 꼭 맞는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그 회한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대체 뭣 때문에 망설입니까.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 것 같은가요? 

사회 생활 하다 보면 내 생각을 딱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애매하게,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런데 매사가 이런 식이면 결국 누구한테도 신뢰를  못 쌓을 수 있습니다. 듣기는 싫어도 저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다, 이런 믿음이 어느 순간 세평의 대세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어 속담에 "정직이 최상의 책략"이라는 말이 있죠. 책략과 정직은 서로 전혀 맞지 않는 관계인데도 말입니다. 최고단수의 속임수, 처세술은 아예 속과 겉이 같은 일관된 솔직함이라는 게, 사실 경험이 많이 쌓이고 쌓여야 이를 수 있는 깨달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연속입니다. 석가모니는 사고(四苦) 중 하나로(어쩌면, 으뜸가는 괴로움으로) 태어남을 꼽았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무엇보다 큰 축복인데 그는 태어남이야말로 모든 고난의 시작이라고 갈파한 것입니다. 생이 그 시초점부터 괴로움이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이런저런 괴로움은 딱히 억울할 것도 한맺힐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좋은 날이 더 많지 않았냐고 저자는 말합니다. 불평불만으로 이 아깝고 유한한 생을 무익하게 채우기보다는 희망과 긍정으로 마음을 다듬고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소중한 생을 부여받은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한 세상 살다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